“미국을 팔고 중국을 사라!”경이로운 수익률로 월가의 전설이 된 짐 로저스는 소문난 ‘중국주의자’다. 그는 “달러를 팔고 위안화를 사라, 자녀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라”고 세계를 향해 목청을 돋우고 있다. 그만큼 중국의 미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다는 것이다.짐 로저스의 생각은 베이징 상하이 홍콩 등 어느 대도시에서나 ‘옳은 말씀’으로 통한다. 이 때문인지 중국 증시를 대표하는 상하이종합지수, 홍콩 증시를 대표하는 항셍지수 등 거의 모든 지수들이 내리막에서 엉거주춤하고 있어도 중국 금융시장은 무덤덤한 얼굴이다. 특히 홍콩에서 만난 금융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조정은 앞으로 길어야 3~6개월”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시 꽃피는 봄날이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들이 가장 많이 입에 올리는 단어가 ‘불리시(Bullish: 낙관적인 상승세)’일 정도다. 아찔한 하락세를 겪은 지난 6개월은 거품 제거를 위한 건강한 조정기 정도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다.이는 중국 금융시장이 자신의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이기도 하다. 전통의 아시아 금융 허브 홍콩에다 상하이가 새로운 금융 중심지로 떠오르면서 ‘금융 대국 중국’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광둥성이 홍콩 접근성, 정보기술(IT) 인프라, 우수한 인력 자원 등을 바탕으로 ‘금융계 실리콘밸리’가 되겠다고 나서 열기를 더하는 중이다. 홍콩-마카오-광둥성을 단일 경제권으로 만드는 계획도 추진되고 있다.비록 싱가포르와 인도 등이 무서운 속도로 뒤쫓고 있지만 이 역시 그리 대수롭지 않게 보는 분위기다. 실제로 금융시장 규모, 지명도 등의 측면에서 중국과 홍콩 금융시장이 비교 우위라는 평이 많다.홍콩을 대표하는 마천루 빌딩들이 빼곡하게 솟아있는 금융 중심지 홍콩섬 센트럴. 웬만한 세계 금융 기업이 다 모인 이곳의 A급 빌딩 오피스 임대료는 금값이다. 한국식으로 계산하면 3.3㎡당 80만 원 정도로 200㎡ 정도의 오피스를 사용하려면 적어도 월 4800만 원을 내야 한다. 홍콩섬의 상징인 국제금융센터Ⅱ(Two IFC) 6개 층을 사용하고 있는 스위스 투자은행 UBS의 경우 월 임대료만으로 수십억 원을 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센트럴엔 비어 있는 오피스 빌딩이 거의 없다.요즘 홍콩에선 좋은 사무실만큼이나 좋은 인재를 구하기도 어렵다. 특히 중국과 세계 금융시장을 골고루 경험한 홍콩인 애널리스트와 이코노미스트의 몸값은 천정부지다. 인도 말레이시아 대만 등 주변 지역 금융 전문가 역시 찾는 곳이 많다. 그나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미국계 금융사들의 구인이 주춤하는 바람에 인재난이 덜하다고 할 정도다.이 같은 오피스 난과 인재 난은 홍콩의 ‘현재’를 말해 준다. 흔히 홍콩은 ‘전성기 지난 금융 허브’로 취급되지만 최근 홍콩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10여 년 전인 1995년, 홍콩의 금융회사 수는 400개 가까이에 달했다. 당시 국내에서도 수많은 금융회사들이 홍콩 지사를 차렸다. 지방 단자사, 지방은행까지 더해 줄잡아 30여 개 업체가 홍콩에서 영업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아시아 금융 위기가 닥치면서 금융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구조조정의 타격이 심했던 한국 금융사들도 서둘러 지사를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1997년 7월 중국 반환, 2003년 사스 등을 거치면서 홍콩의 국제 금융 도시 명성은 타격을 입었다.현재 홍콩에 진출해 있는 세계 금융회사 수는 280개로, 이 가운데 국내 업체는 20개 정도다. 과거에 비하면 30% 이상 줄어든 셈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국내 금융 기업을 포함해 세계 각국에서 새로운 금융사들이 다시금 홍콩으로 몰려들고 있다. 중국이 세계 금융시장의 뉴페이스로 떠오르면서 홍콩을 중국·아시아 본부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홍콩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국내 금융사들도 다시 홍콩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특히 증권사들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우리투자증권 등이 홍콩법인을 세우고 영업 중이다. 최근에는 대신증권 하나투자증권 등이 홍콩 진출을 결정했거나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미래에셋증권은 지난해 1월 홍콩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갔다. 중개, 인수, 투자은행(IB) 업무를 비롯해 올 하반기부터는 국내 펀드를 홍콩 시장에서 판매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소액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소매시장에 본격 진출하는 것이다. 이는 박현주 회장의 지론에 따른 사업으로, ‘금융 상품도 수출 상품으로 만들자’는 의지에서 나온 것이다. 이경영 미래에셋증권 홍콩법인장은 “미래에셋의 ‘글로벌 하우스’ 전략에 따라 다국적 애널리스트로 리서치 진용을 갖추고 있다”면서 “상하이는 IB 중심지로, 홍콩은 세계 금융시장을 아우르는 아시아 허브로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라고 밝혔다.미래에셋자산운용 역시 홍콩에 둥지를 틀고 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다. 지난 4월에는 홍콩 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펀드포럼’ 스폰서로 참가해 세계 유수 펀드 회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양준원 이사는 “홍콩 펀드 시장에서 세계 펀드들과 경쟁을 시작한다”면서 “60여 명의 인력 가운데 절반 이상이 펀드 전문 운용 인력”이라고 말했다.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1월 홍콩에 아시아 총괄 법인을 세우고 현재 증권과 자산운용 파트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홍콩을 기반으로 인도 말레이시아 대만 시장까지 커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동준 펀드매니저는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시장 투자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홍콩 경제는 2003년 사스를 기점으로 턴어라운드 기회를 만들었고, 다시 세계 금융 중심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있다. 실제로 2003년 3.2%에 그쳤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004년부터는 6~8%로 크게 성장했다.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지난 2월 영국의 시트오브런던 코퍼레이션이 발표한 세계 금융허브지수(GFCI)에서 홍콩은 런던 뉴욕에 이어 3위를 차지하며 아시아 금융 허브임을 입증했다. 싱가포르(4위)와 도쿄(9위)를 제친 것은 경영 환경, 시장 접근성 등이 세계 최상위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반면 서울은 세계 51위에 랭크돼 대조를 이뤘다.홍콩 금융시장의 특징은 금융 기법이 매우 다원적이라는 데 있다. 세계 유수 금융사들이 다양한 금융 기법을 선보이는 까닭에 최근의 증시 하락 국면에서도 별 흔들림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변동성이 큰 장에서는 공매도(short stock selling·‘없는 것을 판다’란 뜻으로 주식이나 채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 주문을 내는 것) 기법으로 대응하는 등 다양한 비즈니스가 상존한다.홍콩은 매력적인 IPO 시장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수많은 다국적 기업이 진출한 덕에 정보와 물류가 집중되고 무엇보다 탄탄한 금융 인프라가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홍콩 증시에서 첫 거래를 시작한 중국의 B2B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닷컴의 경우 131억2900만 홍콩 달러 모집에 무려 1조7940억 홍콩 달러가 몰리는 기록을 세웠다.이런 특징은 세계 경제 자유도 순위에서 잘 나타난다. 올 초 미국의 헤리티지 파운데이션이 발표한 세계 경제 자유도 순위에서 홍콩은 연속 14회 1위를 차지했다. 금융 투자 무역 재산권 자유도가 탁월하고 세율이 낮다는 게 높은 점수를 받았다.중국 반환 이후 홍콩은 그 면적이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중국 본토에서 이주하는 이가 늘어나면서 광둥성 쪽으로 주거지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홍콩-마카오-광둥성 단일 경제권 제안도 같은 맥락이다. 단순한 경제 통합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등 도시 전반의 통합이 거론되고 있다. 이 경우 거대 자유무역지역이 탄생, 중국에서 가장 강한 도시가 만들어질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하지만 평범한 투자자의 눈에 요즘의 중국 증시는 분홍빛보다는 잿빛에 가깝다. 중국 증시에 대한 비관론과 낙관론이 교차하고 있는 마당이라 반신반의하는 시각이 대부분이다.실제로 최근 1년여 사이 중국 증시는 세계 금융시장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롤러코스터식 등락을 보여줬다. 2007년 10월 15일 6000선을 돌파하며 세계 자본시장의 시선을 집중시켰던 상하이종합지수는 지난 4월 22일 장중 3000선이 붕괴되며 정확히 반 토막이 나고 말았다. 홍콩증권거래소(HKSE)에 상장된 종목 가운데 상위 33개의 우량 종목을 대상으로 산출하는 주가지수인 항셍지수 역시 지난해 10월 30일 3만1638로 최고점을 기록한 뒤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 지난 3월 1만9387의 저점을 찍었다. 중국 시장에 20조 원을 쏟아 부은 국내 펀드 투자자들로선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다.그러나 4월 말에 접어들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확실히 바닥을 쳤다’는 분석이 이어지면서 ‘매수’ 쪽으로 급선회하는 움직임마저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국내 중국 펀드가 자산의 대부분을 투자하는 홍콩H지수는 4월 들어 상승을 거듭하며 중국 펀드 수익률을 높이고 있다. 펀드 평가 업체 제로인에 따르면 중국 펀드는 최근 1개월 수익률이 평균 20.75%로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을 제치고 해외 펀드 1위를 차지했다.그렇다면 홍콩의 펀드매니저들의 의견은 어떨까. 양준원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 이사는 “최근의 중국 증시 하락은 거품이 제거되는 과정”이라면서 “단기적인 시장 변화에 흔들리지 말고 장기로 운용하라”고 말했다. 호이청 콴 미래에셋증권 홍콩법인 총괄 애널리스트 역시 “중국 경제의 중심이 내수와 투자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면서 ‘중국 시장의 견고한 펀더멘털’을 강조했다. “조정은 3~6개월 정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후 항셍지수는 2만5000선을 넘어 새로운 ‘스테이지’로 이동할 겁니다.”중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투자 펀드를 전문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알버트 응(Albert Ng)펀드매니저는 올 하반기 중국과 홍콩 증시 전망을 밝게 내다봤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가 진정되면 2~3분기를 기점으로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겠느냐는 낙관론이 골자다.그는 “홍콩 증시는 중국과 미국의 영향을 6 대 4 정도로 받고 있는데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중국의 성장성이 밝다”면서 특히 중국 내수 시장의 파워에 대해 강한 믿음을 내비쳤다.“‘리닝(스포츠 브랜드)’, ‘몽유(우유 브랜드)’ 같은 내수용 브랜드들의 실적이 무섭게 오르는 것을 보면 ‘아, 중국 내 소비가 살아있구나’라는 것을 느낍니다. 중국 경제 자체가 가진 펀더멘털이 견고하다는 이야기죠.”그는 국제 금융 허브로서 홍콩의 미래에 대해서도 밝은 전망을 내놨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송도를 비롯한 한국의 금융 허브 발전 가능성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홍콩은 자유로운 금융시장 시스템, 탄탄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중국과 함께 성장하고 있어요. 5~10년 후 홍콩은 ‘차이나 붐잉 이코노미’의 중심이 돼 있을 겁니다.”홍콩= 박수진 기자 sjpark@kbizweek.com 협찬= 미래에셋증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