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월 많은 글로벌 기업들은 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에 실리는 ‘세계에서 존경받는 기업(World’s Most Admired Companies)’ 명단을 기다린다. 다른 경쟁사들과 비교해 자사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가늠하고,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97년 시작된 이 조사를 직접 설계하고 실행하는 곳이 바로 글로벌 리서치 업체인 헤이그룹 인사이트다.윌리엄 워헤인 헤이그룹 인사이트 글로벌 총괄이사는 “초기에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하다 글로벌 기업으로 범위를 확대했다”며 “조사 기간만 4~5개월이 걸릴 만큼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존경받는 기업 순위는 실제로는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진다. 우선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을 1차 평가 대상으로 삼고 이들을 26개 업종으로 분류한 다음 각 기업 경영진, 이사, 애널리스트들에게 해당 업종 내 업체들을 평가하게 한다. 또 하나는 업종 구분 없이 평가자가 가장 ‘존경’하는 기업 10곳을 꼽도록 하는 것이다. 같은 업종 내 경쟁사들의 평가가 반영된 ‘업종 순위’가 좀 더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여론에 더 큰 주목을 받는 것은 후자 방식인 ‘올스타’ 순위다.지난 3월 발표된 올해 조사에서는 애플이 올스타 1위에 오르는 이변을 연출했다. 그동안 존경받는 기업 조사에서 1위를 거의 독차지해 온 GE를 밀어낸 것이다. 워헤인 이사는 “연구 결과 존경받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차이는 리더십의 질과 혁신에 대한 인식에서 나타난다”며 “애플은 이 두 가지 모두에서 뛰어나다”고 평가했다.“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을 비교해 보면 차이가 더 두드러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MS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파고에 성공적으로 적응했는지 의문을 갖고 있어요. 지난 4년 동안 MS의 순위는 3위에서 10위로 추락했어요. 반면, 애플은 아이팟과 아이폰, 아이터치 등 혁신적인 제품을 성공시키면서 계속 순위가 올라가고 있어요.”워헤인 이사는 가장 중요한 것은 경영진의 리더십이라고 강조한다. 어떤 기업이든 아이디어는 많지만 이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구현해내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구성원들이 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명료한 전략을 제시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주는데 리더십의 진정한 역할이 있다”고 말했다.올해 순위는 국내에도 큰 파장을 불렀다. 올스타 순위에 든 한국 기업이 한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34위에 올랐던 삼성전자도 50위권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포스코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한화 등 6곳이 업종 순위의 상위 그룹에 진입한 게 그나마 위안이 됐다.“한국 기업들은 산업화 시대에 맞는 구조를 갖고 있어요. 조직에 대한 강한 자부심, 성과주의 등은 새로운 혁신, 새로운 접근 방식을 만들어내는 데는 걸림돌이 될 수 있지요. 무엇보다 인력 개발에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해요. 직원들에게 혁신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주어야 합니다. 업무량이 많다 보면 새로운 방식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조차 없게 되지요.”글로벌 시대에는 기존의 중앙통제식 리더십이 아니라 민주적 리더십이 요구되기도 한다. 전 세계 직원들이 중요한 의사 결정이 필요할 때마다 본사 고위 경영진의 결정이 내려오길 기다려야만 하는 조직은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모든 구성원이 미래를 위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낼 수 있는 문화를 갖춰야 한다.워헤인 이사는 삼성그룹 문제에 대해 “최근 상황을 잘 알고 있다”며 “기업 조직이 큰 변동을 겪는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개방성과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라고 조언했다.약력: 1967년 미국 시카고 출생. 90년 시카고대 정치학과 졸업. 95년 시카고대 MBA. 미국 Society of Human Resources Management 멤버. 2006년 헤이그룹 인사이트 글로벌 총괄이사(현).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