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추를 30여 년 전으로 돌려 미국의 대표적 사립 명문대인 프린스턴대의 1974년 캠퍼스로 가보자. 이 대학의 보수 학생단체인 CAP(The Concerned Alumni of Princeton)가 내건 대자보가 눈에 띈다. 그들은 “남녀공학제가 캠퍼스의 신비감과 끈끈한 동지애를 훼손하고 있다”고 한탄하며 “남녀공학은 매우 불행한 일임이 곧 입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린스턴대가 1969년부터 금녀의 벽을 깨고 남녀공학제를 실시한 것을 규탄하는 내용이었다.이제 시계추를 원위치로 돌려보자. 상황은 상전벽해처럼 변했다.미국 대학들은 여학생 수가 남학생보다 많은 ‘여초(女超) 현상’으로 고민에 빠졌다. 일부에선 남학생 지원자를 늘리기 위해 암암리에 남학생을 우대하는 정책을 펴는 대학도 나오고 있다.시사 주간지 타임 최신호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미국 대학 학부의 여학생 비율은 58%에 달해 남학생을 압도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향후 몇 년 안에 여학생 비율이 60%에 이를 전망이다.특히 흑인의 경우 성비 불균형이 더 심각한 실정이다. 여학생이 2 대 1 비율로 남학생을 압도하고 있다. 당시 CAP 회원들이 현재의 대학의 현실을 본다면 무릎을 꿇고 ‘고해성사’라도 해야 할 판이다.오하이오 주 케니언 칼리지(Kenyon College)의 입학 사정관인 제니퍼 델라헌티는 최근 뉴욕타임스에 ‘내가 입학을 거절한 모든 여학생들에게’라는 고해성사 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여초 현상 심화로 교육 방식의 전반적인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소위 ‘남학생 위기’에 대한 논쟁이 한창인 가운데 대학들은 신입생의 성비 균형을 맞추느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일부 대학들은 학교 안내 책자에서 여학생들이 좋아하는 파스텔 색상을 없애거나 남학생이 즐기는 엑스박스 게임 대회를 개최하는 등 남학생들을 유인하기 위한 방법도 동원하고 있다.학생이 60%를 차지하는 매사추세츠의 클라크대는 남학생들이 소수인 상황에 적응하는 것을 돕기 위해 ‘남성끼리 돕기’라는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이 학교의 잭슨 제러스키 학생처장은 “입학 비율뿐만 아니라 대학 내 클럽의 각종 회장과 단체장 등 상당수의 회장 자리도 여학생들이 독식하는 양상”이라며 “우리는 왜 남자들이 리더십 역할에서 점점 멀어져만 가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대학들은 여학생이 많은 대학을 남학생이 꺼리는 경향이 있는 점도 고민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남학생들을 입학 시 우선 배려하는 것으로 보이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에 따르면 윌리엄 앤드 메리 대학은 남학생 입학 허가율이 여학생보다 평균 12%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이 대학의 입학처장은 “여학생들도 캠퍼스 안에서 남학생을 많이 볼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우리 대학은 ‘메리(한국의 ‘영희’처럼 미국의 대표적인 여자 이름) 앤드 메리’가 아니라 ‘윌리엄 앤드 메리’ 대학”이라고 말했다.여학생이 한때 남학생만큼 못하다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했다면 지금은 여학생들이 너무 잘해서 거부당하고 있는 셈이다. 성비 격차 문제가 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불거지는 양상이다.대학의 여초 현상은 미국 사회의 ‘우먼 파워’를 알리는 전조라는 평가다.미국의 권력 서열 3위인 하원 의장 자리는 여성 의원인 낸시 펠로시가 차지하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흑인 여성으로서 행정부 권력 서열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버락 오바마와 함께 숨 가쁜 레이스를 벌이고 있는 민주당의 대선 주자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자리를 꿈꾸고 있다.대학 총장도 여성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파우스트 하버드대 총장을 비롯해 셜리 틸만 프린스턴대 총장, 루스 시먼스 브라운대 총장, 에이미 거트맨 펜실베이니아대 총장 등이 명문 대학의 지휘봉을 잡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년 전만 해도 미국 대학의 여성 총장 비율이 10%에 그쳤으나 최근엔 23%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유병연·한국경제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