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기업인의 정치 진출에 대해 꺼리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작고한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직접 대통령 선거에 나섰다 패배의 눈물을 삼킨 것이 그 단적인 예다. 기업인은 정치인의 ‘밥’이었지 동반자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러나 대선 자금 수사 파동을 겪으며 기업과 정치인의 관계는 과거에 비해 깨끗해지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정치 분야보다 경제 분야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오히려 정치인들이 경제인들을 알아서 모셔야 하는 분위기다.2002년 대선에서 중도 하차한 정몽준 의원에게 대권 경쟁은 물 건너간 것처럼 보였지만 최근 총선에서 인기를 모으면서 차기 대선 주자로 벌써부터 거론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비록 이번 선거에서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김호연 빙그레 회장은 “기업가 출신이 우대받는 분위기가 됐다”며 출마의 변을 밝히기도 했다.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기업인은 정몽준 의원을 제외하고 모두 초선임을 보면 변화된 환경을 체감할 수 있다. 그 이전까지와는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동시에 이번 18대 국회는 이들 기업인 출신이 과연 정치도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시험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기업인뿐만 아니라 경제 관료 출신도 여야를 막론하고 대거 국회에 입성했다. 한나라당은 공천 물갈이를 하면서 새로운 피들을 기업인 출신들로부터 받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한 통합민주당은 실무형 인재를 기존 관료 그룹에서부터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통합민주당에서는 경제 전문가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당선자가 대부분 관료 출신이다.기업인 출신은 생소한 정치 무대에서 시험받아야 하는 입장이지만 관료 출신은 이미 정부 정책을 다루면서 실무에서 잔뼈가 굵은 것이 특징이다. 고위 관료를 끝으로 공직을 접고 정치권으로 진출하는 것은 법조계 출신과 더불어 정치인이 되는 수순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당장 이명박 정부가 쏟아내는 갑작스러운 정책 현안들을 검증하는 데 있어서 경제 관료 출신들이 가장 제격으로 꼽힌다.특히 집권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이 ‘MB 노믹스’의 전도사 역할을 자처한다고 하면 야당 의원들은 MB 노믹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맞서는 형국이 예상된다. 경제 전문가들답게 이 과정에서 치열한 논리 대결이 기대되고 있다.일례로 똑같이 ‘중소기업 살리기’를 내세우는 두 의원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을 지낸 허범도(한나라당, 경남 양산) 당선자는 행정고시 합격 후 상공부를 거친 전직 관료이고 중소기업중앙회장 출신의 김용구(자유선진당, 비례대표) 당선자는 (주)신동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두 당선자 모두 자신의 경험을 살려 중소기업 살리기에 주력할 뜻을 내비쳤다. 허 당선자는 “중소기업의 가장 큰 문제는 대기업에 물건을 납품할 때 원가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고 김 당선자 역시 “중소기업의 가장 큰 애로 사항은 ‘판로(販路)’로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수익을 내지 못하고 이로 인해 연구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없어지고, 이는 경쟁력을 상실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며 경험에서 우러난 문제들을 지적하고 있다.그러나 김 당선자는 “현재 이명박 정부가 기업 살리기를 하고 있다지만 대기업 위주의 정책이지 중소기업은 뒷전”이라며 현 정부에 대한 질타를 아끼지 않았다.창조한국당의 문국현 당선자도 “중소기업을 살려야 나라가 살고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대명제에서는 이명박 대통령과 비슷한 입장인 것 같지만 향후 각론에서 어떤 방식으로 대립각을 세울지 주목된다.경제 전문가 리스트를 쭉 살펴보면 통합민주당에는 기업인 출신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음을 감지할 수 있다. 2000년 전후로 386 세대가 주축이 된 벤처 열풍이 사라지면서 친야 성향의 기업가들이 차츰 설 자리를 잃어간 것도 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그나마 명맥을 이은 정국교(통합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자는 H&T 대표로서 주가 조작 논란에 휩싸여 있다.국회에 입성한 경제 전문가들은 저마다 자신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상임위원회를 염두에 두고 있다. 기업인 출신들은 주로 지식경제위원회와 국토해양위원회를 원했고 학계 출신들은 지식경제위원회를, 경제관료 출신들은 지식경제위원회와 예결산특별위원회를 지망하고 있다.경제의 정의는 일반적으로는 제한된 자원을 가장 유효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인적 및 물적 자원을 배분하는 과정을 뜻한다. 실증경제학이냐 규범경제학이냐 등 계보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그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경제적·사회적 문제를 적절히 찾아내는 것이 경제학이다. ‘경제전문가’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와 바람은 더 이상 비생산적인 정치를 그만두고 생산적인 ‘경제’를 하라는 것이다.‘경제 살리기’를 지지한 국민들은 이들 국회의원들이 기존의 정치를 한 단계 성숙·발전시키기를 바라고 있다. 치고받고 싸우는 이전투구식 정치가 아니라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정치, 기존과는 다른 모습의 정치를 바라는 기대를 이들 국회의원들이 채워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