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디자이너 이종명

오크, 체리, 월넛. 우리나라 집안에 놓여 있는 가구의 색깔은 대부분 이 세 가지 안에서 맴돈다. 여기에 기껏해야 유행에 따라 하얀색이 추가되는 정도다. 이종명(43) 디자이너는 갈색 계열에, 나무 느낌이 나야 가구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화려한 색감과 다양한 재질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이종명 디자인스튜디오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문을 경계로 순식간에 공기의 움직임이 변한 것만 같았다. 가구 디자이너 이종명 씨와 그의 아내는 탁자에 마주 앉아 샹들리에처럼 생긴 조명 갓에 일일이 비즈(실내 장식이나 액세서리에 사용하는 작은 구슬)를 달고 있었다. 바깥의 세상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고 몇 시간이고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쉽게 작업한 작품은 쓰는 사람도 쉽게 다루게 되지요. 좋은 것,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만들려면 어렵게 해야 해요. 그래서 힘들지만 이렇게 합니다.”걸리는 시간이나 들이는 공력이 상당해 보여서 왜 손이 덜 가는 디자인을 하지 않느냐고 묻자 이종명 디자이너는 가는 철사에 비즈를 꿰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무심하게 대답했다. 디자이너로서 그의 디자인은 어느 날 머리에서 튀어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며칠에 걸쳐 몸으로 내놓은 것이기도 하다.사실 보는 사람이 조급해서 그렇지, 당사자는 더딘 과정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가끔씩 탁자에서 물러나 작품이 되어가는 모양을 살피고 다시 작업에 착수하는 과정이 내내 반복됐다.편의상 가구 디자이너로 부르고는 있지만 그가 하고 있는 작업은 매우 다양하다. 가구 조명 그림 오브제 등 말 그대로 인테리어에 해당하는 모든 것에 손을 대고 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만 가지’를 다 한다. 가구를 비롯한 그의 작품들은 20년 동안 꾸준히 팔려나가는 ‘스테디셀러’다. 굳이 소비자들에게 맞추려 애쓰지 않아도 그와 코드가 맞는 이들이 알아서 찾아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다.“학부와 대학원 시절, 학교 앞 조그만 작업실에서 가구를 만들던 시절부터 전시회에 작품을 내면 사람들이 내 가구를 사갔어요. 겉으로 뚜렷한 공통점을 찾기는 힘들지만 제 가구를 찾는 사람들은 모두 마음이 따뜻하고 예쁜 것 같다고 생각하곤 했지요.”따뜻하고 예쁘다는 것은 ‘이종명 가구’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이기도 하다. 갖고 싶은 가구라면서 인터넷 블로그에 포스팅해 놓은 네티즌들의 글들을 봐도 동화 속에 나오는 가구 같다는 감상이 많다. 실제로 보기에는 색감이 화려하기는 해도 아기자기한 느낌만 드는 것이 아니다. 갓 만들어 놓아도, 오래 쓰고 보아도 적당히 손때 묻은 듯한 칠이 돋보인다.“만만하고 촌스럽고 정감 있는 콘셉트예요. 튼튼하고 쓰기 좋아야 하고요. 너무 고급스럽고 번드르르해서 ‘상처 나면 어떡하나’라며 쓰는 사람 마음이 불편해서는 안 돼요. 주문 제작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아주 상세한 부분까지 주문자의 요구 사항을 반영할 수 있고요.”‘가구는 갈색 계통의 나무 재질로 만들어졌다’는 편견만 버려도 충분히 예쁜 가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의 설명을 듣고 보니 철판, 동판, 종이, 비닐, 헌 가구 등 우리 주변에는 가구의 소재가 널려 있는 셈이다. 안으로 품고 있는 생각을 밖으로 못 풀어내서 답답할 때는 있어도 고정관념이나 타인의 시선 안에 갇히는 일은 없는 법이다.“머릿속에 있는 건 전부 해봐요. 스스로의 기대치에 도달할 때까지 집중해서 하고요.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만큼은 부지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 최고가 되는 게 당연하다고 봐요.”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기가 쉽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부러울 수도 있는 얘기다. 그렇지만 작업의 완성도 외에는 별 다른 욕심이 없어 보이는 그도 골치를 썩는 일이 적잖이 있다고 한다. 바로 디자인스튜디오를 경영하는 일이다. 가구 제작을 함께하는 열여섯 명의 직원들과 더불어 먹고 사는 일이 녹록하지 않은 까닭이다.현재 이종명 디자인스튜디오에서 만들고 있는 작품은 서울 과천 익산 군산 동탄 등에서 만날 수 있다. 온전히 개인의 이름으로 이룬 것으로는 드문 성과물로 평가받는다. 스타일 면에서도 천편일률적인 가구 시장에 ‘이종명 유’의 가구들이 생겨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어쨌든 잘 이끌어서 여기까지 온 것이 분명하다.그는 아주 어릴 적부터 가구를 좋아했다고 한다. 가구에 대한 애착은 육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것에서 비롯됐다. 일가붙이가 많은 집이라 지방에서 올라온 친척들도 부대껴 사는 통에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싶다는 바람이 강렬했다.“내 방이 생기면 그 안에 무엇을 넣을까 항상 고민하고, 거리의 가구점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어요. 관심에다 잘 그리고 만드는 재주까지 합쳐져서 일찍부터 진로를 결정했지요. 중고등학교 때 미술반 활동을 하고 입시학원 장학생을 거쳐 미대에 진학했어요. 아버지가 미술을 많이 반대하셨는데 결국엔 하고 싶은 대로 가구 디자이너가 됐습니다.”그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게 된 이후에는 별다른 굴곡이 없었다. 객관적으로 순탄했는지, 주관적으로 마음을 비운 덕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말이다. 디자인 쪽으로 일관된 궤적을 그려 온 그에게 우리나라의 도시 계획이나 문화 수준이 눈에 거슬리지 않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따끔한 충고가 돌아왔다.“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라는 타이틀에 맞는 문화 선진국은 분명 아니지요. 하지만 디자인 감각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보고 느끼는 경험에 따라 문화적인 차이가 나는 것이니까요. 도시 계획이나 디자인과 관련된 분야에서 일하시는 공무원들이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프로 의식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그는 누구나 자기 마음에 들고 본능에 충실한 행위를 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괜스레 타고난 미적 감각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에 따르면 디자인에서는 선천적인 능력보다 후천적인 경험이 중요하다. 꼭 가구가 아니더라도 일상 속 문화적 경험을 새롭게 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주변을 채워 보는 것도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무것도 보지 않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고 여기고 있어요. 저도 전시를 보러 다니고 여행도 많이 합니다. 나하고 잘 맞지만 내게는 없는 부분을 볼 수 있어야 창조를 할 수 있겠지요. 무엇보다 새로운 경험에서 자신의 것을 재구성해 내는 능력이 중요합니다.”김희연 객원기자 foolfo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