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유재성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사장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2006년부터 ‘소프트웨어 생태계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다국적기업이 나서 국내 중소 벤처기업의 성장과 세계시장 진출을 적극 지원해 주는 ‘글로벌 상생 모델’로 시작 때부터 화제를 모았다. 이미 국내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 34곳이 MS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마케팅 노하우, 기술 지원을 발판 삼아 해외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특히 올해 들어 주목할 만한 성공 사례가 속속 탄생하고 있다. 유재성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사장은 “국내 중소업체들이 마이크로소프트(MS)라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게임과 로봇 등 한국이 강점을 가진 다른 분야로 대상을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한국 소프트웨어 생태계 프로젝트(Korea Software Ecosystem Project·KSEP)’에는 국내 정보기술(IT) 업계의 발전을 위해 건전한 생태계 기반 조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업계와 학계, 정부의 목소리가 반영돼 있습니다. 한국 경제와 사회에 공헌할 수 있고, 또 MS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다가 ‘소프트웨어 생태계’에 주목하게 된 것이지요. 2005년 IT 전문가와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 관계자, 정부 관계자 6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어요. 이때 한국 소프트웨어 기업이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에서도 성공을 거두려면 생태계 조성을 통한 다각적인 지원과 IT 인력 양성이 절실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꽃가루를 나르는 꿀벌이 없으면 인류도 4년 안에 사라진다고 해요. 그만큼 구성원 하나하나가 생태계를 유지하는데 아주 중요하지요. MS가 아무리 좋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고 해도 하드웨어가 받쳐주지 않거나, 개발된 기술을 활용해 다른 업체들이 응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글로벌 리서치 회사인 IDC의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한국MS가 1달러 매출을 올리면 국내 협력업체가 창출하는 가치는 13달러라고 해요. 10배 이상의 기여 효과를 내는 것이지요. 이는 다른 산업 분야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글로벌 네트워크가 약한 한국 중소기업은 다국적 기업의 기술력과 마케팅, 네트워크를 활용해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전략을 펴는 것이 훨씬 유리합니다.거인의 뒤쪽을 열심히 걷어찬다고 난쟁이가 더 멀리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 전략이지요. 국수주의적인 태도로 비즈니스에 접근하면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아요. 오히려 열린 마음으로 비즈니스 파트너를 선택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윈-윈’ 하는 결과를 거둘 수 있어요. 요즘 들어 외국계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외국계 기업도 한국에 투자하고, 한국인을 고용하며, 한국 사회를 위해 공헌하는 ‘한국 기업’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한국MS가 KSEP를 진행하면서 글로벌 상생이라는 화두를 던진 것도 한국 기업들과 동반 성장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음을 열면 글로벌 기업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해요.KSEP는 한국MS와 정부, 대기업, IT 중소기업이 함께 참여해 기술 공유와 파트너십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도록 선순환 고리를 형성하는 상생 프로그램이지요. 소규모 IT 벤처가 가진 혁신 기술을 상생 커넥션으로 키우기 위해 정부는 정책과 자금을 통해 지원하고, 국내 대기업은 이를 활용한 제품을 통해 시장을 형성합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MS의 이노베이션센터가 정부와 벤처기업, 국내 대기업을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하는 것이죠. 최종적으로는 해외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는 IT 벤처를 키워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MS가 가진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국내 IT 벤처의 해외시장 진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봐요.한국은 하드웨어와 인터넷에서는 이미 세계적인 IT 강국입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산업만큼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어요. 이제는 소프트웨어 산업 같은 지식 집약 산업을 키우는데 집중해야 할 때지요. 특히 소프트웨어의 핵심 가치가 지식재산에서 비롯된다는 걸 무시하는 현실도 안타까워요. 지난해 국내 소프트웨어의 불법 복제율은 45%에 달했어요. 피해 규모를 금액으로 따지면 4400억 원에 이릅니다. 이런 현실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의욕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어요. 스타 산업으로서의 기반이 약한 것도 문제죠. 직업 수명이 짧고 근무 환경과 대우가 열악해 고급 기술자를 찾기 어려워요.물론 희망은 있다고 봅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고, MS같은 글로벌 기업의 네트워크를 잘 이용한다면 충분히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어요. 소프트웨어 산업은 기본적으로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는 분야지요. 연구개발 투자를 하고, 제품 출시하고, 여기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다시 연구개발이 이뤄져야 해요. 한국은 내수 시장이 작기 때문에 이러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 어려운 환경이지요. 또 선택과 집중도 잘 안 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역량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어요. ‘글로벌 상생’이 큰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지요.1기 14개 업체, 2기 20개 업체 등 모두 34개 중소 IT 벤처가 KSEP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중 성공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어요. 이지씨앤씨는 인터넷TV(IPTV) 토털 솔루션과 셋톱박스, 인터넷 방송 솔루션, 네트워크 카메라 감시 방송 솔루션을 개발하는 곳이죠. 이 업체는 최근 KT, 그리고 일본 MPTech와 3자 간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어요. 앞으로 전 세계 호텔 65만 객실에 셋톱박스와 LCD TV를 설치해 주문형비디오(VOD), 방송 서비스 등을 제공하게 됩니다.최근 IT 트렌드가 워낙 빠르게 변하고 있지요. 그러다 보니 새로운 아이디어와 신기술을 무기로 급부상한 기업들이 많아 나타나고 있어요. 이런 기업과 비교해 초창기부터 PC의 역사와 더불어 성장해 온 MS가 공룡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고 봐요. 오랜 세월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아 왔기 때문에 이런 오해를 받는다고 생각하지요.(웃음) 이런 외부의 시각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MS는 혁신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어요.올해는 국내 협력 업체와 장기적인 성장 로드맵을 그려가는 해입니다. 특히 글로벌 상생 프로젝트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확대해 나갈 생각이지요. 오는 5월 개최하는 ‘이노베이션 데이’도 그 일환이에요. 이 행사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 가능한 국내 협력 업체들의 사례를 알리고 MS연구소가 갖고 있는 신기술도 소개합니다. 또 MS가 소유하고 있지만 사용하고 있지 않은 특허들을 국내 업체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긴밀히 협조해 나갈 겁니다.1960년 경남 합천 출생. 88년 한양대 전자공학과 졸업. 87년 LG전자 해외영업 PC부문. 94년 한국MS 입사. 2004년 한국MS 일반고객사업부 전무. 2005년 한국MS 대표이사 사장(현).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