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전철 밟는 후쿠다 日총리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의 인기가 계속 떨어지고 있다.그는 작년 9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뒤를 이어 취임할 때까지만 해도 지지율이 60%에 달했다. 그러나 6개월 뒤 그의 지지율은 30%선으로 떨어졌다. 정확히 반 토막 났다.그가 뭘 잘못했느냐고 묻는다면 딱 꼬집어 말할 건 별로 없다. 부정을 저질렀거나 정책 실패로 국민들에게 피해를 준 것도 없다. 그렇다고 딱히 잘한 것도 없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나름대로 조용히 국정을 운영해 왔지만 일본 국민들에게 “참 잘했다”고 칭찬을 받을 만한 일도 하지 못했다.그런 와중에 최근 발생한 일본은행 총재 공백 사태는 후쿠다 총리의 ‘부실한 정치력’을 여실히 드러냈다. 긴가민가하던 국민들이 ‘역시 안되겠다’고 마음먹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일본 총리에게 지지율 30%선은 ‘죽음의 선’이다. 직전의 아베 전 총리도 무기력한 모습 속에서 1년을 버텼지만 지지율 30%선에 도달하자 더 이상 견디지 못했다. 1998년 하시모토 전 총리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일본 정치에서 총리 지지율 30%선은 도로의 중앙선과 같은 의미다. 넘어서면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일본 정가는 후쿠다 총리가 언제 손을 들고 나올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30% 지지율로는 야당의 중의원 해산 후·총선거 실시 압박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다. 후쿠다 총리도 아베 전 총리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 3월 21~23일 전국 유권자 86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후쿠다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31%를 기록했다. 두 달 전 조사 당시 40%에 비해 9%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반면 비(非)지지율은 54%로 6%포인트 상승했다. 내각 비지지율이 50%를 넘은 것은 6개월 전인 작년 9월 후쿠다 내각 출범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 참패 이후 아베 전 총리의 비지지율과 비슷한 수준이기도 하다.후쿠다 총리의 지지율이 급락한 것은 후쿠이 도시히코 일본은행 전 총재의 후임 인선을 둘러싼 여야 간 대립과 휘발유세 폐지와 관련된 여야 간 대치 등이 주요 원인이란 게 니혼게이자이의 분석이다. 이번 조사에서도 일본은행 총재 공석에 대한 책임은 ‘정부·여당에 있다’는 응답이 41%로 ‘야당에 있다’는 대답(27%)을 웃돌았다.요미우리신문이 지난 3월 15~16일 유권자 178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도 후쿠다 내각 지지율은 33.9%였다. 정권 출범 직후인 지난해 10월 59.1%의 절반 수준으로 급락한 것이다. 후쿠다 총리 내각 출범 6개월 실적에 대해 ‘평가한다’는 답변은 34%에 그쳤다. ‘평가하지 않는다’는 응답(64%)의 절반 수준이다.‘후쿠다 내각이 앞으로 얼마나 더 존속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4명 중 1명꼴인 25.3%가 ‘가능한 한 일찍 그만둬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1년 내 22.7% △6개월 내 18.6% △2~3년 내 14.4% △가능한 한 오래가 14.4%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그렇다고 야당에 대한 신뢰가 높게 나타난 것도 아니다. 제1야당인 민주당 오자와 이치로 대표의 정국 운영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은 65%로 긍정적인 응답(29.4%)을 크게 앞섰다.‘현직 의원 중 총리로 적합한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에는 아소 다로 전 자민당 간사장이 21.2%로 가장 높았다. 일각에서 다시 떠오르고 있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16.1%로 아소 전 간사장보다 낮았다. 3위에는 오자와 민주당 대표(5.3%)가 올랐고 후쿠다 총리는 4%에 머물렀다.◇ 지난 3월 19일 밤 도쿄역 앞 니혼바시 건너편에 있는 일본은행 현관에선 후쿠이 도시히코 총재의 환송식이 열렸다. 직원들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뒤 차에 오르는 후쿠이 총재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대과 없이 5년 임기를 잘 마친 후쿠이 총재를 배웅하는 자리이지만 직원들 표정도 어두웠다. 그가 떠난 자리에 앉을 후임 총재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 총재는 3월 20일부터 공식적으로 ‘공석’중이다. 일본 정부가 잇따라 총재 후보 2명을 지명했지만 모두 참의원(상원 격)에서 야당 반대로 무산됐다. 일본은행 총재가 빈자리가 되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일본은행 총재 공백 사태의 1차적 책임은 누가 뭐래도 임명권자인 후쿠다 총리에게 있다. 야당이 반대할 걸 뻔히 알면서도 재무성 출신 후보를 두 명이나 잇따라 지명했다. 야당은 일찌감치 ‘금융과 재정 정책의 분리’를 명분으로 재무성 출신은 “절대 안 된다”고 못박은 터였다. 그런데도 후쿠다 총리는 밀어붙였다. ‘기세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심산과 야당의 반대로 일은 총재 공석 사태가 발생하면 책임을 야당 쪽으로 돌릴 수 있다는 꼼수가 작용했다.물론 민주당 등 야당의 책임이 없는 건 아니다. 야당의 잇단 일은 총재 임명안 반대를 순수하게 보는 시각도 많지 않다. 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 교수는 “중앙은행 총재는 재무성 출신 여부보다 필요한 자질을 충분히 갖췄느냐를 따지는 게 중요하다”며 “야당이 정부안을 계속 반대해 부결한 것은 후쿠다 정권 흔들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결국 일은 총재 공백 사태는 정치력도 없이 꼼수만 부린 후쿠다 총리와 정권 투쟁에만 매달린 야당 등 3류 정치권의 합작품인 셈이다. 가뜩이나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한 때 일은 총재 공백을 맞은 도쿄 시장은 침울했다. 한 증권사 이코노미스트는 “여야 합의로 중앙은행 총재 하나 뽑지 못하는 일본의 정치 현실이 창피하다”며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런 나라에 과연 투자를 하겠느냐”고 탄식했다.시장은 일은 총재 공석 자체가 아니라 총재 공백을 초래한 일본의 정치에 더 비관했던 것이다. 그 같은 비관은 후쿠다 총리에 대한 총체적 실망과 원망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셈이다.◇ 후쿠다 총리의 인기 하락을 보면 아베 전 총리의 몰락을 다시 보는 느낌이다. 아베 전 총리는 2006년 9월 고이즈미 전 총리의 뒤를 이어 화려하게 일본 정치 무대에 부상했다. 그러나 만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 퇴진했다.당시 그의 사퇴 이유는 총리직을 걸고 관철을 약속했던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의 연장이 어렵게 된데 따른 것이었다.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은 인도양에서 미군 등 다국적군 함대에 일본의 해상자위대가 급유 지원 등을 할 수 있는 근거법이다. 미·일 동맹의 상징이었다. 이런 테러대책법의 연장과 관련해 민주당과의 절충을 위해 아베 전 총리는 오자와 대표와의 당 대표 회담을 제안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하자 사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다시 말해 뭔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잘하지 못해서 물러난 셈이다. 지금 후쿠다 총리가 처한 상황과 다를 바 없다.당시 자민당 안팎의 상황도 아베 총리가 더 이상 정권을 유지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아베 정권의 2기 내각 출범 1주일만에 엔도 다케히코 전 농수산상이 국고 부정 수령 문제로 퇴진한데 이어 다른 각료들도 잇따라 정치 자금 수지보고서 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당초 아베 총리가 밝혔던 개혁이나 인적 쇄신이란 명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졌다.결정타가 된 것은 역시 지지율이었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 아베 총리 내각에 대한 지지도는 ‘죽음의 선’인 30%를 육박했다. 취임 당시 65%의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당당하게 출범했지만 2006년 말 48%로 낮아진 데다 연금 기록 분실 사태 등을 거치며 작년 여름 지지율은 30%대로 곤두박질쳤다. 그 같은 낮은 지지율이 ‘7·29 참의원 선거’의 참패와 중도 퇴진으로 이어졌던 것이다.미쿠리야 다카시 도쿄대 정치학과 교수는 “참의원의 과반수 의석을 야당이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후쿠다 총리는 민주당 등 야당과의 대타협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그 같은 정치적 리더십을 보여주지 않는 한 후쿠다 총리 역시 아베 전 총리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차병석·한국경제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