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드는 뉴욕증시 바닥론

‘뉴욕 증시 바닥론’이 솔솔 피어오르고 있다. 물론 아직은 소수의 목소리다. 이른 감도 있다. 경기 침체(recession)를 알리는 각종 경제지표가 잇따라 발표되는 것을 보면 성급하다는 느낌도 든다.그렇지만 바닥론은 월가의 밑바닥에서부터 세를 얻어 가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최근 뉴욕 증시의 하방경직성이 강화되면서 바닥론에 수긍하는 ‘민심’이 커지고 있다. 금융 위기가 정점을 지났다는 일부의 분석과 경기가 하반기에 회복될 것이란 전망은 뉴욕 증시로 대기 자금을 끌어 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아직은 불확실성이 너무 많다. 언제 또다시 증시를 위협할 대형 변수가 나타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다. 특히 이번 경기 침체는 그 어느 때보다 길고 힘들 것이란 전망이 많은 걸 감안하면 뉴욕 증시가 바닥을 쳤다고 속단하는 건 어리석은 일일 수 있다.변수는 역시 금융주가 쥐고 있다. 다름 아닌 금융 위기가 수그러드느냐 여부다. 만일 금융주가 더 이상의 대형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뉴욕 증시의 바닥론은 정설로 굳어질 수 있다. 이와 함께 경기 침체를 야기한 근인인 주택 경기도 변수다. 주택 경기가 바닥은 아니더라도 급속한 위축세만 면할 경우 부담은 한결 덜어질 수 있다.작년 8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파문이 터졌을 때부터 금융주는 뉴욕 증시에서 ‘골칫덩어리’ 그 자체였다. 신용 위기를 초래해 투자 심리를 억누르는 주역임은 물론 엄청난 손실로 기업 전체의 이익을 깎아내리는 장본인이 바로 금융주다. 작년 4분기 미 500대 기업의 순이익은 전년 동기에 비해 20% 감소했다. 그러나 금융주를 제외한 기업의 순이익은 오히려 6% 증가했다. 금융주의 손실이 전체 이미지를 갉아먹고 있다는 얘기가 가능하다.금융주 고전의 핵심은 광범위한 말로 금융 위기다. 서브프라임 초기 발생한 신용 경색은 신용 위기로 발전했고, 이어 금융 산업 전체가 흔들리는 금융 위기로 한 단계 비화됐다. 신용 위기가 단지 돈이 돌지 않는 유동성 위기라면 금융 위기는 손실의 과대 지급 불능 상태에 빠지는 금융회사가 생기는 파산 위험이다. 그만큼 파장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금융 위기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금융회사들이 작년 4분기부터 엄청난 손실을 내고 있어서다. 씨티그룹과 메릴린치는 각각 100억 달러에 육박하는 분기 손실을 냈다. 골드만삭스만 선방했을 뿐 나머지 투자은행들도 이익 감소에 시달렸다. 베어스턴스도 85년 역사상 처음으로 8억7000만 달러라는 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서브프라임 관련 손실만 금융권 전체로 1800억 달러를 넘었다. 더욱이 앞으로도 수천억 달러의 손실을 더 감수해야 한다는 분석이 잇따르면서 금융 위기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커져갔다.이런 불안감 속에서 터져나온 게 베어스턴스 사태다. 미 5위의 투자은행이 유동성 위기에 휘말리더니만 곧바로 회사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내몰리면서 금융 위기 공포는 정점으로 치달았다. 그런데 베어스턴스가 JP모건체이스로 매각되는 것으로 결론나면서 금융 위기에 대한 불안감은 급속히 사그라지는 분위기다. 금융 위기를 방치하지 않겠다는 미 행정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강력한 의지가 확인된 데다 FRB의 적극적인 조치로 비은행 금융회사마저 적어도 유동성 위기는 모면할 수 있는 길이 열린 덕분이다.여기에 골드만삭스 리먼브러더스 등 투자은행들의 지난 1분기 실적이 예상을 웃돌아 금융회사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악순환은 그친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낳고 있다. 특히 이들 회사의 서브프라임 관련 손실액이 예상을 밑돌면서 서브프라임의 소나기는 지난 것 아니냐는 분석이 금융 위기설을 완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이러다 보니 미 투자은행 ‘펑크지겔’의 리처드 보브는 “베어스턴스 사태를 계기로 금융 위기는 이제 끝났다”며 “지금은 1990년 이후 처음으로 금융주를 헐값에 사들일 수 있는 시기”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보브는 지난 2006년 금융 위기론을 거론하면 금융주 매도를 권고한 사람이라 특히 눈길을 끌었다. 이제 베어스턴스 같은 대형 금융회사가 흔들리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인 만큼 위기는 한풀 꺾였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그렇지만 ‘금융 위기는 끝났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도 상당하다. 아니 우세하다. 골드만삭스는 서브프라임 관련 미 금융회사의 손실이 4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실현된 손실이 1800억 달러 정도이니 앞으로도 2000억 달러 이상을 더 손해 봐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곧 금융 위기가 아직 정점에 이르지 않았다는 얘기도 된다. 오펜하이머도 “서브프라임 손실 등으로 올 한 해 미 금융회사의 순이익이 큰 폭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놔 ‘금융주 대망론’이 시기상조임을 분명히 했다.또 대형 금융회사의 도산 가능성은 엷어졌다고 해도 헤지 펀드 등이 연쇄 도산할 가능성은 여전한 만큼 금융 위기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주장도 상당하다.끝모르 게 추락하던 뉴욕 증시는 베어스턴스 사태가 해결된 지난 3월 20일을 기점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호재에는 강하게 반응하는 반면 악재에는 반응 강도가 약해진 것. 그러다 보니 하방경직성이 생겼고 미 국채 등 안전 자산에만 몰려들던 자금도 증시 주변에 빠르게 포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나타난 것이 ‘뉴욕 증시 바닥론’이다.뉴욕 증시 바닥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1차적으로 앞에서 살펴봤듯이 금융 위기가 정점을 지났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뉴욕 증시를 괴롭히던 금융주에 서서히 서광이 비치는 만큼 주가가 급등하지는 않더라도 급락은 면할 것이란 주장이다. 경기 침체 기조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지만 이는 어차피 예상됐던 것이며 주가는 경기를 3~6개월 선반영하고 있다는 점도 근거로 작용한다. 미 경기가 올 1, 2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뒤 하반기부터 서서히 회복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주가는 2분기부터 상승세를 시도할 것이란 전망이다.경기 침체의 근인인 주택 경기의 추락이 진정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도 뉴욕 증시 바닥론을 뒷받침하는 한 논거다. 지난 2월 중 기존 주택 매매 실적은 7개월 만에 처음 상승세로 돌아섰다. 매매 중간 가격이 월간 기준 사상 최대인 8.2%나 하락한 것이 매기를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비록 압류 주택이 급증해 값싼 매물이 쏟아진 것이 요인이고 2월 중 신규 주택 판매 실적은 감소세를 기록했지만 끝없이 추락하던 주택 경기에 변화의 조짐이 생긴 것만은 분명하다.이런 전망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증시 주변 여건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달러화 약세 추세는 주춤거리고 있다. 원자재값 뜀박질도 둔화됐다. 국채에서도 돈이 빠져나가면서 국채 수익률은 상승세(채권값 하락세)를 타고 있다. 유럽과 신흥시장에서 미국 부동산 시장으로 돈이 유입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그렇지만 아직은 뉴욕 증시 바닥론은 성급하다는 주장이 많다. 당장은 경기 침체가 문제다. 경기 침체는 갈수록 확연하다. 소비자신뢰지수는 5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 내구재 주문은 1, 2월 연속 감소했다. 제조업이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이다. 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에 따르면 지난 1월 중 평균 집값은 11.7%나 하락해 사상 최대의 하락폭을 기록했다.여기에 금융 위기와 신용 위기도 다시 불거지는 분위기다. 신용 평가사인 피치는 미 4위의 채권 보증 업체인 FGIC의 신용 등급을 AA에서 BBB로 6단계나 떨어뜨렸다. 채권 보증 업체의 부실화 문제가 다시 불거지면 신용 위기는 심화되고 이는 다시 금융 위기로 연결될 공산이 크다. 더욱이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 등은 “이번 경기 침체가 그 어느 때보다 길고 힘들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어 하반기부터 경기가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뉴욕 증시가 하방경직성을 보이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대형 악재가 다시 불거질 경우 뉴욕 증시는 언제든지 다시 무너질 공산이 크다는 주장이 우세하다.하영춘·한국경제 뉴욕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