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공경하지 않고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은 머리에 뿔이 난 사람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나는 정작 나이 드신 내 아버지가 내 삶 중심에서 밀려나 계신 것을 미처 몰랐다.소백산 골짜기 작은 시골마을. 동네 앞으로는 맑고 깊은 남한강이 흐르고 뒤로는 나지막한 동산 위 종탑과 작고 오래된 예배당이 있는 그런 마을에서 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어릴 적 아버지를 생각하면 아버지는 나에게 있어 삶의 기둥이셨다. 몸에 종기가 나면 입으로 상처 고름을 빨아서 치료하는 의사 선생님이셨다. 밤이면 호롱불 아래에서 회초리를 든 무서운 선생님이셨고, 밭일로 쟁기질을 할 때면 황소처럼 억척스러운 농부셨으며, 새벽이면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그런 아버지셨다. 그렇게 아버지는 나의 삶의 기둥이셨다.그런데 학교 진학을 위해 그 작은 시골 마을을 떠난 이후 아버지는 나의 주변에 나타나신 적이 없다.집안의 장남인 내가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할 때도 졸업식장에 오시지 않으셨고, 박사학위를 받는 그날도 아버지는 나타나지 않으셨다.훗날 그 이유를 여쭤보니 못 배우고 못난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자식의 앞날에 누가 될까봐 나타나지 않으셨다고 했다.그러고 보니 그 옛날 시골 초등학교 운동회 때 교문 밖 멀리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한 적이 있다. 나는 그때의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당신이 못났다는 생각에 자신의 모습에 대해 아들이 창피해 할까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아버지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미어 오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존재다.나는 실버산업 학문을 연구하고 있다. 고령화 사회에 들어선 우리나라의 아버지들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연령대의 노인 문제를 접할 기회도 많다. 자식에게 버림받고 사회로부터 소외돼 외로움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시는 어르신들을 자주 본다.지금 우리 사회는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로 인해 윤리적 정서에 큰 변화를 맞고 있다. 65세 이상의 인구가 436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0%에 육박하고 있다.하지만 저출산으로 어린 자녀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짐에 따라 어르신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가정에 대한 소중함이 희미해진 동시에 어른에 대한 관심과 공경심도 메말라 가고 있다.부끄럽지만 사실 나는 그동안 이러한 일들이 나와 관계없는 남의 얘기로만 알고 있었다. 어른을 공경하지 않고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은 머리에 뿔이 난 사람인 줄만 알았다.나는 고령화로 인해 나타나는 이 세상의 많은 노인에 대한 문제를 나 혼자 짊어지고 가는 것처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정작 나이 드신 내 아버지가 내 삶 중심에서 밀려나 계신 것을 미처 몰랐다.사회와 가정으로부터 소외되어 외로워서 고통스러워하고, 병약해서 걷기조차 힘들어 하시는 그런 어르신들이 내 아버지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동안 아버지는 얼마나 나에게 서운해 하셨을까 생각하니 한없이 죄스럽기만 하다.언젠가 아버지가 나에게 읽어주신 고시조가 생각난다.“내 청춘 누구 주고 뉘 백발 가져 온고/백발이 오가는 길 알았던들/막을 것을 알고도 못 막는 길이니 그를 설워 하노라.한손에 가시 쥐고 또 한손에 막대잡고/늙은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돌이켜 보면 아버지께서도 나와 같은 젊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때가 엊그제라고 생각하실 텐데 늙어감에 대한 안타까움이 얼마나 크셨으면 그 시조를 나에게 읽어줬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인생의 무게감이 밀려온다.늦은 감은 있지만 나의 삶의 기둥이셨던 아버지를 위해 자식 된 도리를 생각해 본다. ‘어버이를 공경함은 으뜸가는 자연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그런 인륜의 기본도 지키지 못하는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다. 조만간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삼겹살과 막걸리를 사들고 고향에라도 다녀와야겠다.“아버지, 그동안 이 말을 못했습니다. 정말 고맙고 사랑합니다.”1963년생으로 한성디지털대 실버산업학과 교수다. 미래와 경제 공동대표, 국민희망운동 사이버위원장, 한국법치행정학회 총무이사 등을 맡는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조경훈·한성디지털대학교 실버산업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