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비지트’

낯선 이스라엘 영화 한 편이 찾아온다. 작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하고 세계 유수의 영화제를 돌며 20개 이상의 트로피를 들어올린 ‘밴드 비지트’는 정겨운 웃음 속에 우리 시대의 ‘화해’를 그려낸다.해체될지도 모를 위기에 놓인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경찰 악단이 이스라엘 어느 지방도시의 초청을 받아 이스라엘에 도착한다. 그들은 아랍문화센터의 개관 축하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쳐 분위기를 반전시켜 볼 요량이다. 하지만 공항에는 악단을 반겨주는 사람 한 명 없고 스스로 목적지로 찾아가야 할 신세가 된다. 그런데 한 멤버의 실수로 목적지의 영어 발음을 착각해 엉뚱한 마을에 내리고 만다. 이미 버스는 끊긴 상태, 어쩔 수 없이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이 대목에서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집트는 1979년 아랍권 국가 중에서는 최초로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했지만 이후에도 잦은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마치 한국과 일본처럼 오랜 기간 살얼음 같은 평화 상태가 계속돼 온 것이다. 데뷔작 ‘밴드 비지트’를 통해 혜성처럼 등장한 에란 콜리린 감독도 “어렸을 적 TV 앞에 가족이 모여 이집트 영화를 보는 건 지극히 평범한 풍경이었다. 국력의 절반을 이집트와의 전쟁으로 소비하면서 TV에서 이집트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는 게 무척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말한다.그런 미묘한 정치적 상황을 따뜻한 유머로 감싸 안고 있는 ‘밴드 비지트’는 바로 가브리엘 살바토레 감독의 ‘지중해(1991)’처럼 서로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만나 이루는 멋진 화음이다. 악단이 도착한 마을의 레스토랑 주인 ‘디나’를 연기한 로니트 엘카베츠와 보수적이면서도 은근히 매력적인 악단장 ‘투픽’을 연기한 새슨 가바이는 각각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배우라는 점에서도 영화는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낯선 곳에서 제3의 언어인 영어로 더듬더듬 대화를 나누고 이집트의 전설과도 같은 가수 움 쿨톰에 대한 추억에 젖으며, 또 슬그머니 연애의 감정이 싹트면서 영화는 관객을 자연스레 미소 짓게 만든다. 악단의 이야기인 만큼 엉뚱한 상황 속에서도 어김없이 들려오는 음악 또한 매력적이다. 특히 롤러스케이트장에서 들려오는 음악은 우리로서도 향수에 젖을 만하다.준서(이천희 분)와 미연(한지혜 분)은 사귄 지 2000일을 앞둔 연인이다. 오래된 연인이 그렇듯 준서 역시 미연이 점점 부담스럽다. 그래서 미연과 잠시 떨어져 있을 요량으로 남극기지로 파견될 연구팀에 신청하고, 조금씩 미연과 헤어질 준비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미연은 준서에게 줄 선물을 산 후 자전거를 타고 빗속을 달리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잠에 빠진 준서에게 미연은 여전한 모습으로 찾아와 2000일 기념일이 언제인지 알려준다. 하지만 그녀의 사고 소식을 접한 준서는 아침에 만난 미연의 모습을 떠올리며 아연실색한다.전편의 꼬마 소녀 앤디(브라이아나 에비건 분), 어느덧 열여섯 살이 된 그녀의 유일한 즐거움은 최고의 클럽 ‘그루브’에서 춤 실력을 뽐내는 일이다. 그루브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체이스(로버트 호프먼 분)도 그녀의 춤을 잊지 못한다. 앤디는 집으로부터 독립을 꿈꾸고, 오빠 타일러는 엘리트 예술학교 ‘메릴랜드’의 오디션 합격을 조건으로 건다. 오디션에서 앤디는 뜻하지 않게 체이스를 심사위원으로 만나고 그의 진심 어린 격려로 조금씩 자신의 꿈과 자유, 사랑을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체이스의 여인 소피가 등장하면서 적응이 쉽지만은 않다.파리의 대형 출판사 편집장 주디스(카렝 비야 분)는 어느 날 아버지가 남긴 유물 상자를 전해 받고 전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서 혼란에 빠진다. 이때 줄리앙(에릭 카라바카 분)이 소설가의 꿈을 안고 주디스를 찾아온다. 아버지의 일로 충격에 휩싸인 주디스에게 그는 안중에도 없다. 하지만 두 사람은 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되고, 줄리앙은 그런 주디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유물 상자 안의 자료들을 가지고 몰래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늘어가는 원고의 두께만큼이나 두 사람의 사랑은 깊어간다.주성철·씨네21 기자 kinoey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