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티 EX35

한국의 자동차 디자인이 밋밋해진 데는 이유가 있다. ‘내 가족을 위한 제2의 쉼터’로서 자동차는 넓은 뒷좌석을 비롯한 넉넉한 실내,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는 트렁크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디자인을 일부 포기한 면이 없지 않다. 뒷좌석 승객을 배려하지 않는 3도어나 트렁크가 없는 해치백이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그렇지만 사람을 많이 태울 일이 없는 젊은 직장인이 늘어나고 있고, 특히 구매력을 갖춘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다양한 콘셉트의 자동차 수요가 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인피니티가 1월 24일 내놓은 EX35는 이런 새로움에 대한 욕구를 단번에 충족시켜 줄만한 진보적인 자동차다. 마치 SF 영화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디자인과 편의 사양은 기존의 자동차를 한 단계 뛰어넘으며 미래의 자동차에 한 발 다가간 느낌이다. 특히 기계와 친하지 않은 여성 운전자를 배려한 각종 편의 사양이 돋보인다.EX35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360도 어라운드 뷰 모니터다. 전후좌우에 장착된 4대의 카메라에 잡힌 영상을 차량 주위에 절묘하게 매치해 마치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영상을 만들어내는 장치다. 자동차의 편의 장치들 중에는 이름만 거창하고 실제 사용되지 않는 것들도 많지만 이 장치는 주차할 때마다 그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다. 변속기를 후진 위치에 놓자 자동으로 모니터에 나타난다.주차장에 그려 놓은 구획선 안에 내 차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한눈에 보이기 때문에 주차할 때마다 앞뒤로 여러 번 왕복할 필요 없이 한 번에 주차할 수 있다. 그것도 구획선 정중앙에 정확하게. 주차의 달인이라고 할지라도 이 장치의 편리한 매력을 거부할 수 없을 것 같다. 자동차의 다양한 용도가 있겠지만 주차하는 것을 즐기는 사용자는 그다지 없을 것이다. 인피니티는 자동차 사용자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 정확히 꿰뚫어 보았고 인간의 수고를 덜어주는 미래의 자동차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카메라는 라디에이터 그릴 중앙, 좌우 사이드미러, 트렁크 도어에 달려 있다. 초광각 렌즈를 사용했기 때문에 거의 180도에 가까운 시야가 잡히는 반면 영상이 왜곡되지만 이 오차를 보정해 이어 붙임으로써 부감(위에서 수직으로 내려다봄) 화면을 볼 수 있게 되는 원리다. 주자창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 도로에서 자동차를 최대한 인도 쪽에 바짝 붙여 정차할 때도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다.다만 카메라의 수평 위치보다 높은 장애물은 확인이 불가능해 주의가 필요하다. 차량 매뉴얼에도 대형 트럭의 높은 적재함과 충돌할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적혀 있다. 시속 10km 이상에서는 안전을 위해 어라운드 뷰 화면이 꺼지도록 되어 있다.외부 디자인에서도 미래 지향적인 느낌이 묻어난다. 리어램프의 모양은 마치 외계인 상상도에 나오는 퀭한 눈을 닮은 듯 보인다. 옆모습은 세단과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의 중간 형태를 가진 CUV(크로스오버 유틸리티 차량)로 약간 높은 차체의 특징을 잘 살린 곡선의 디자인이 인상적이다.EX35과의 첫만남은 웰컴 라이팅 시스템(welcome lighting system)으로부터 시작된다. 스마트키를 지닌 채 다가가면 1m 앞에서 사이드미러에 장착된 라이트와 실내등, 브레이크 페달 부위의 라이트가 켜진다. 어두운 곳에서도 쉽게 타고 내릴 수 있도록 한 기능이다. 스마트키를 주머니에서 꺼낼 필요 없이 운전석 도어 핸들의 버튼을 누르면 잠김 장치가 풀린다. 차에 오른 뒤 시동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시트, 스티어링 휠이 이동하면서 운전하기 편한 자세로 세팅된다. 반대로 시동을 끈 뒤 운전석 문을 열면 스티어링 휠, 시트가 내리기 편한 상태가 된다. 이 기능이 성가시다고 느껴지면 통합 정보 시스템에서 꺼버릴 수도 있다.시승차는 스티어링 휠, 대시보드, 시트가 온통 뽀얀 베이지색으로 마감돼 있었다. 여성들이 좋아하는 ‘공주풍’의 카페에 앉은 느낌이다. 약간 작은 듯한 스티어링 휠에서는 가죽의 차가운 감촉이 전해진다. 좌석은 그리 넓다고 느껴질 정도는 아니다. 키가 큰 사람은 다리가 불편할 수 있을 것 같다. EX35의 전폭(좌우 너비)은 1800mm로 현대자동차 아반떼(1775mm)와 쏘나타(1830mm)의 중간 정도다. 그러나 현대자동차가 실내 공간을 더 넓게 설계하는 것을 감안하면 체감 넓이는 아반떼보다 조금 넓은 수준이다.디자인을 위해 실내 공간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했다는 것은 뒷좌석의 좁은 레그룸에서 실감할 수 있다. C필러를 많이 기울이다 보니 뒷좌석 승객의 머리가 천장에 닿을까봐 시트 위치가 앞쪽으로 쏠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단점은 각종 편의 사양으로 극복하고 있다.뒷좌석은 트렁크에 위치한 버튼으로 접거나 펼 수 있다. CUV의 장점으로 뒷좌석을 접어 적재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이를 접고 펴는 것이 여성들에게 버거울 수도 있음을 고려한 것이다. 또 유아용 시트를 걸 수 있는 고정 앵커가 시트 내부에 설치돼 있고 ISOFIX(자동차 내에 어린이 안전 장구를 설치하는데 있어서의 국제기준) 시트가 설치 가능하게 설계돼 있다. 차량 매뉴얼에서도 유아용 시트 장착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컵 홀더가 2층으로 설계돼 짧은 컵을 쓸 때는 윗부분만, 긴 컵을 쓸 때는 바닥을 접어 사용할 수 있다. 한 TV CF에서 영화배우 문근영이 “이 차는 주유구가 없나 봐요”라는 말한 적이 있었는데 이 차에는 정말로 실내에 주유구 버튼이 따로 없다. 푸시 방식으로 외부에서 열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차량 잠김 상태에서는 외부에서 열리지 않는다. 별 것 아니지만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부분들이다.부드러운 곡선의 디자인에 걸맞게 주행 성능은 부드러움에 맞춰져 있다. 출발, 가속, 브레이크 등이 모두 부드럽다. 물론 가속 때의 부드러움은 강한 엔진 성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미국의 유력한 자동차 전문 조사 기관인 워즈(Ward’s)가 선정하는 ‘세계 10대 엔진’에 14년 동안 매년 선정되고 있는 VQ엔진 시리즈의 3.5리터 24밸브 VQ35HR엔진을 탑재했다. 최고 출력 302마력, 최대 토크 34.8kg·m으로 국내 도로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부족함이 없는 파워다. 현대자동차가 제네시스의 미국 판매용은 4.6리터 엔진을 얹었지만 내수용은 3.3리터, 3.8리터를 내놓은 것을 보면 국내에서는 3.5리터 수준으로 충분함을 짐작할 수 있다.CUV답게 사륜구동 방식을 채용했다. 닛산의 지능형 사륜구동 시스템인 ‘ATTESA E-TS’ 시스템은 평상시엔 구동력을 후륜에 100% 유지하다가 도로 상황에 따라 전·후륜 사이의 균형을 50 대 50까지 배분해 후륜구동의 주행 성능과 사륜구동의 안정감을 동시에 제공한다.오디오는 인피니티가 ‘달리는 시어터(극장)’라고 자랑하는 보스(Bose) 시스템이 장착됐다. 기존의 서라운드 대신 사운드가 전방에서 후방으로 흐르도록 설계해 콘서트홀에서 들을 수 있는 라이브 음악의 느낌을 재현했다. MP3/WMA 재생이 가능한 6CD 체인저를 장착했다.긴급한 제동을 감지해 약하게 밟은 브레이크에 강한 제동력을 부여하는 브레이크 어시스트(Brake Assist)를 비롯해 운전석 및 보조석 에어백, 사이드 에어백, 커튼 에어백, 사륜 ABS 브레이크, 액티브 헤드레스트, VDC, TCS 등 안전장치를 기본 사양으로 채택했다. 가격은 5470만 원.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