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구 한국씨티은행 행장

하영구 행장은…1953년 전남 광양 출생. 76년 서울대 무역학과 졸업. 81년 미국 노스웨스턴대 MBA. 81년 씨티은행 기획부 심사역. 86년 씨티은행 한국자금담당 총괄이사. 87년 씨티은행 서울지점 한국투자금융그룹대표. 97년 씨티은행 아시아·라틴아메리카 지역본부 임원. 98년 씨티은행 서울지점 한국소비자금융그룹 대표. 2001년 한미은행 행장. 2004년 한국씨티은행 행장(현).“이제 목표는 통합이 아니라 성장입니다.” 지난 1월 28일 서울 다동 한국씨티은행 본점에서 만난 하영구(55) 행장의 목소리에선 강한 자신감이 묻어났다. 하 행장은 지난해 초 연임에 성공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며 ‘성장’을 새로운 화두로 제시해 일찌감치 공격 경영을 예고했다. 2004년 한미은행과 씨티은행의 합병 이후 두 은행을 통합하는 ‘기초공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전통적인 예금과 대출 업무 중심인 국내 은행들과 달리 외환과 파생상품, 투자 상품, 그리고 투자자 중심의 영업 등에 두루 강점을 지닌 한국씨티은행의 질주는 놀라웠다. 이 은행은 지난해 순이익이 40% 이상 증가했다. 한경비즈니스와 한국신용평가정보가 실시한 ‘2007 외국계 100대 기업’ 조사에서도 순위가 급상승하며 종합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아직은 시작일 뿐이다. 하 행장은 “금융 빅뱅은 씨티은행에는 오히려 성장의 기회”라며 “특히 올해는 신용카드 부문의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 행장은 2001년 한미은행장을 시작으로 8년째 은행장으로 활약하는 은행권 최장수 최고경영자(CEO)다. 새 정부에서 신설될 금융위원회의 첫 위원장 후보로도 꼽힌다. 최근 떠돌고 있는 ‘매각설’부터 물었다.100% 추측 기사에 불과합니다. 제가 연초 미국 출장을 다녀온 걸 지분 매각이나, 2차 구조조정과 연관 짓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 씨티그룹의 해외 사업 분야를 점검하고 전략을 짜기 위해 매년 연초 열리는 정례회의에 다녀온 것이지요. 사내 e메일을 통해 직원들에게도 근거 없는 루머에 동요하지 말 것을 당부했어요. 이번에 가서 씨티그룹 최고경영진이 신속하게 자본 확충을 완료하는 등 여러 현안을 잘 관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지요. 최근 씨티그룹의 일시적 부진은 극히 제한된 비즈니스 영역의 특정 문제에서 기인한 것일 뿐입니다.우선 한국씨티은행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없습니다. 최근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도 세계 경제의 ‘커플링(동조화)’,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 이 문제는 금융과 산업을 나눠 봐야 해요. 적어도 금융 부문은 디커플링이 있을 수 없어요. 투자자의 글로벌화와 금융시장의 선제 반응 성향, 그리고 모든 정보가 투명해지고 전달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져 거의 즉각적으로 영향을 받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산업의 펀더멘털인데, 이쪽은 어느 정도 영향은 받겠지만 제한적일 거라고 봐요. 세계 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졌고 우리나라 무역 구조를 봐도 대미 수출 의존도가 과거에 비해 훨씬 낮아요.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1% 안팎 떨어져 산업 자체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봅니다. 미국은 1990년대 초에도 남미 문제와 저축대부조합 파산으로 심각한 금융 위기를 한차례 겪었어요.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손실 금액이나, 금융권 자본금 대비 손실 규모를 비교해 보면 지금은 그때의 3분의 1 정도로 충분히 극복 가능한 상황입니다.미국과 한국은 시장 구조에 굉장한 차이가 있어요. 미국은 처음 대출을 해준 곳과 이를 모아 구조화한 곳, 또 여기에 투자한 곳이 모두 달라요. 그러다 보니 중간에 모럴 해저드 가능성이 높지요. 담보인정비율(LTV)도 80%, 심지어는 100%가 넘는 경우도 많아요. 반면, 우리는 현재 LTV가 50% 정도로 낮고 적정한 시점에 총부채상환비율(DIT) 규제를 도입했어요. 또 미국과 달리 처음 대출을 해준 금융회사가 채권을 거의 대부분 갖고 있지요.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가 광범위하게 확산된 원인 중 하나는 구조화가 안고 있는 취약점이에요. 구조화하는 과정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뿐만 아니라 우량 대출 등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섞어서 ‘레이팅’을 하지요. 그러다 보니 한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면 전체 덩어리가 모두 부실로 간주돼 유동성 문제를 일으킵니다. 우린 이런 리스크가 없지요. 지방 미분양 아파트나 프로젝트 파이낸싱 부문을 많이 걱정하는데 궁극적으로는 금융권에 부담을 줄 수 있지만 전체 규모는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내부적으로 지난해부터 통합이라는 말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통합이라는 기초공사는 어느 정도 끝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지요. 통합 시너지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지난해 실적에 잘 녹아들어 있어요.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전년 대비 40% 이상 순이익이 증가했어요. 특히 순이익이 많이 늘어난 부문은 외환과 파생상품, 투자 상품, 국내기관 투자가와 해외 투자자들의 투자 관련된 수수료 수입이지요. 대개 은행 시장의 점유율은 지점 수와 비례하는데, 대출과 예금은 현재 지점 수 수준에 머무르고 있지만 우리의 차별화된 부문은 10~2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어요.최근 금융 분야가 빠르게 글로벌화되고 있고 투자자 시장이 금융시장의 새로운 축으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한국씨티은행은 이런 흐름에 잘 맞는 글로벌한 네트워크와 글로벌한 상품을 갖추고 있어요. 그리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차별화지요. 과거 신용카드 시장 초기에 세계적인 외국계 카드사들이 국내에 진출했는데, 지금은 이들의 이름조차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 정도죠. 결국 차별화에 실패한 겁니다. 국내 시장에서 철수한 외국계 할인점들은 또 다른 측면에서 차별화에 실패한 사례지요. 차별화를 하긴 했지만 국내 소비자들의 기호와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 성공한 방식을 그대로 가져온 겁니다. 글로벌한 장점을 살리면서도 ‘로컬라이제이션’의 시각이 필요해요. 그런 점에서 한국씨티은행은 성공적인 차별화를 이뤘다고 봅니다.궁극적으로는 은행과 증권, 보험, 소비자 금융을 아우르는 종합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갈 겁니다. 자통법 시행은 국내 자본시장의 확대와 발전에 상당한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합니다. 씨티그룹은 이를 좋은 기회로 보지요. 자통법을 통해 육성하려고 하는 투자은행 분야에 강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많은 사람들은 한국에 씨티은행만 들어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국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과 소비자 금융을 하는 한국씨티그룹캐피탈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어요. 글로벌마켓증권은 지난해 두산인프라코어의 밥캣 인수, 유진그룹의 하이마트 인수 등을 맡으며 인수·합병(M&A) 주간사 순위 1위를 차지했지요.씨티그룹의 기본적인 원칙은 경쟁사에 대해 코멘트를 하지 않는 겁니다.(웃음) 아무래도 글로벌 은행에 비해 규모가 작은 것은 분명하고 대출에 의존하는 수익 구조를 탈피해 영업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금융 분야에서 글로벌화가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조금 아쉬운 부분이에요. 글로벌 금융 인력도 더 많이 배출돼야 합니다. 또 하나는 규모도 규모지만 기업 가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해요. 향후 중국계 은행이 M&A에 본격적으로 팔을 걷고 나서기 시작하면 파괴력이 엄청날 겁니다. 현재 중국계 은행의 순자산 가치 대비 시가총액이 4배까지 가는데, 이건 증자를 통해 M&A 자금을 손쉽게 조달할 수 있다는 걸 뜻해요. 반면, 국내 은행들의 순자산가치 대비 시가총액 비율은 1.2~3.5배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요. 새로운 수익원 개발 등을 통해 기업 가치를 높여야 M&A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지요.기본적인 전략 방향은 시너지 창출 확대입니다. 최근 투자자 고객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어요. 은행은 예금과 대출 고객, 증권사는 투자자 고객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한다는 구분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아요. 물론 브로커리지는 여전히 증권사가 하지만 은행도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품들을 많이 갖고 있어요. 글로벌 네트워크와 상품을 통해 기업 고객은 물론 기관투자가와 개인투자자 시장을 계속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은행 통합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위축됐던 신용카드 부문도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 예전 수준으로 시장점유율을 회복하려고 합니다.대담 = 김상헌 취재편집부장정리=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