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TV(IPTV) 혁명

미국 드라마 마니아인 이성재(37) 씨는 수년간 사용했던 케이블 TV를 지난달 해지하고 KT ‘메가TV’를 신청했다. 그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미국 드라마를 보기 위해 인터넷 P2P 사이트에서 내려 받거나 매주 케이블 TV 방영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왔던 그는 메가TV를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시리즈를 하루에 2~3편씩 보고 있다.얼마 전부터 골프를 시작한 이강선(34) 씨는 골프 연습장이 아닌 집에서 골프 연습을 한다. 하나TV가 제공하는 골프 강좌를 활용하는 것. 골프 강좌는 골프의 기초부터 기술까지 영상으로 보면서 배울 수 있고 다시 보고 싶은 장면은 몇 번이고 볼 수 있다. 이 씨는 자녀를 위한 어린이 프로그램과 영어 강좌 등 교육용 동영상도 볼 수 있기 때문에 하나TV 사용에 만족하고 있다.지난해 12월 28일 국회에 상정된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안(IPTV법)’이 본회의에 상정돼 통과됨에 따라 올해부터 본격적인 인터넷 TV(IPTV)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TV(IPTV: Internet Protocol Television)는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해 시청자에게 TV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인터넷을 이용하기 때문에 주문형 비디오(VOD) 및 게임, 웹서핑도 가능하다.기존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인터넷 TV 전용 셋톱박스만 설치하면 바로 이용할 수 있다. TV는 기존에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사용해도 된다. 이용료는 업체마다 다르지만 한 달에 1만 원 이내로 저렴한 편이다. 업계에서 인터넷 TV에 주목하는 이유는 기존 TV 시청 환경 및 관련 업계를 재편할 수 있는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 년째 공중파 방송사들이 주도하고 있는 TV 시장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기능을 제공하며 일반 소비자들이 이용하기에 편리하고 간단하다.인터넷 TV의 핵심 기능은 VOD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드라마, 스포츠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채널 안내만 존재하며 방송 시간은 따로 없다. 반복, 탐색 등 DVD가 제공하는 기능도 사용할 수 있다. 방송사 스케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는 사용자 중심 서비스라는 점이 장점이다.장르별로 구분된 채널에 들어가 프로그램 설명을 보면서 마음에 드는 콘텐츠를 선택하면 되기 때문에 어린이나 고연령자도 조작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성인 채널 등 일부 채널은 인증번호를 눌러야 감상할 수 있어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케이블 TV보다 편리하다. 오락 기능뿐만 아니라 취업, 자격증, 재테크, 외국어 학습, 어린이 교육 채널 등 전문 채널도 서비스해 체계적인 교육 환경을 제공한다.노래방 기능 및 게임 기능은 인터넷 TV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부가 서비스다. 실제 노래방과 같은 화면과 최신곡을 제공하며 마이크만 있으면 노래방 분위기를 낼 수 있다. 게임의 경우 리모컨으로 조작이 가능한 퍼즐이나 단순한 액션 게임이 주를 이룬다. 뉴스, 날씨 등 실시간 정보를 볼 수도 있다. 현재에는 단순한 일방향 서비스만이 제공되고 있지만 각 업체들은 인터넷 TV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다양한 기능을 준비 중이다.인터넷 TV는 공중파 방송국 및 케이블 TV 사업자 등 기존 방송 시장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집단으로부터 극심한 반대를 받아왔다. 인터넷 TV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광고 수익이 줄어들고 자신들의 입지가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우선 드라마, 영화 등 콘텐츠 제작 업체들은 방송국을 통하지 않고 인터넷 TV를 통해 콘텐츠를 유통할 수 있게 된다. 방송국을 통하지 않고 히트 드라마나 영화가 유통될 수 있는 것이다. 극장도 마찬가지다. 기존 영화 배급은 극장 개봉, DVD 출시, TV 순으로 진행됐지만 인터넷 TV는 콘텐츠에 따른 자체 과금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터넷 TV를 개봉관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용은 인터넷 TV 사용료와 합산돼 청구된다. 실제 미국에서는 일부 영화들이 인터넷 TV를 통해 극장과 동시에 개봉하는 등 콘텐츠 유통 시장 변화가 일고 있다.인기 채널과 채널 사이에 끼워 넣어 소비자들의 시선을 잡던 홈쇼핑 업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인터넷 TV는 쇼핑이라는 카테고리를 한쪽에 분류해 놓아 구매 의사가 없는 소비자들의 충동 구매를 사전에 방지한다. 자신이 원하는 수만 개 콘텐츠 중 시간을 내서 홈쇼핑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사용자는 케이블 TV보다 줄어들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홈쇼핑 업체들은 인터넷 TV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찾고 있다.각 지역별로 구분돼 있던 케이블 TV 사업자들 역시 인터넷 TV 시대에 그 비중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케이블 TV 업체들은 100개 이상 채널을 제공하는 디지털케이블 방송사업을 진행하며 VOD 서비스도 부가적으로 제공하지만 VOD 서비스를 기본으로 제공하는 인터넷 TV에 비해 경쟁력이 낮다. 또 KT, 하나로통신 등 대기업이 바잉 파워를 앞세워 킬러 콘텐츠를 들여올 경우에도 케이블 TV 사업자들은 밀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케이블 TV 사업자들이 기존 입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인터넷 TV 수준의 콘텐츠를 확보해 VOD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트리플 플레이 서비스(Triple Play Service)는 초고속 인터넷, 인터넷 전화(VOIP), 인터넷 TV 3가지 서비스를 한 번에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이 중 인터넷 TV는 트리플 플레이 서비스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 견해다. 초고속 인터넷과 인터넷 전화는 속도와 통화 품질 등 차별화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만 인터넷 TV는 어떤 콘텐츠를 제공하느냐에 따라 확실히 경쟁력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인터넷 TV 업체들은 콘텐츠 확보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메이저리그 경기 중계권을 따기 위해 공중파 방송사들이 경쟁을 벌인 것처럼 인기 드라마나 영화, 스포츠 등 킬러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예상된다.인터넷 TV가 가지고 있는 단점도 물론 있다. 아직 지상파 실시간 방송을 볼 수 없으며 지상파에서 확대되고 있는 고화질(HD) 콘텐츠를 일부만 제공하고 있다. 이 문제는 초고속 인터넷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 외에도 셋톱박스, 콘텐츠 업체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가 엮여 있다.인터넷 TV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긴 했지만 세부 사항과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과 공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터넷 TV는 TV가 등장했을 때만큼 큰 파급효과를 가져 올 것이며, 아주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제 드라마를 보기 위해 퇴근시간을 맞출 필요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형근·디지털타임스 기자 brupr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