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통일의 위업을 이룬 진시황. 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주변 6개국을 정복하는 데는 전차 바퀴, 화살, 창 등 무기를 표준화한 것이 주효했다. 도로도 바퀴 폭에 맞춰 통일했다. 주변국에 비해 발 빠르게 무기를 교체할 수 있었고 이동 또한 용이했다. 물론 전투 효율이 배가됐다.1904년 미국 볼티모어 시내 중심가에서 발생한 화재는 현대 사회에서 표준화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사례였다. 모자란 소방차를 이웃 도시에서 구해 왔다. 그러나 구해 온 차량의 호스와 시내 소화전 간 연결 부위 규격이 달라 무용지물이었다. 초기 진화가 가능했던 불길이 대화재로 번지고 큰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로 이어졌다.지난 10월 일반인의 무관심 속에 ‘세계 표준의 날’이 지나갔다. 표준은 전쟁터와 참사 현장을 떠나 우리 일상과도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회적 손실을 막아 주기 때문이다.도시마다 교통 신호체계가 다르다고 생각해 보라. 그 결과는 교통 혼잡은 물론 대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다. 국제적인 신호체계 통일이 이뤄졌기 때문에 우리는 처음 방문하는 외국의 낯선 도시에서도 큰 불편 없이 운전을 할 수 있는 것이다.지난 1999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화성 탐사를 위해 쏘아 올린 1억2500만 달러짜리 탐사선은 미터법을 쓴 엔지니어팀과 영미식 야드법을 쓴 팀 간의 계산 착오로 화성에 안착도 못해보고 폭발했다. 이처럼 도량형의 경우 표준이 통일되지 않으면 혼란이 가중되고, 그에 따라 큰 손실을 입게 된다.그렇다면 언제나 한 가지로만 통일된 표준을 써야 할까. 시장 상황과 소비자 사용 환경에 따라 다수의 표준이 존재하는 것도 흔히 발견된다. 이 같은 현상은 특히 정보기술(IT) 시장에서 두드러진다.디지털 이미지 저장 방식이 대표적이다. 우리가 디지털 카메라 촬영 등을 통해 자주 접하는 JPG 파일 형식은 국제 표준이다. 마찬가지로 또 다른 이미지 저장 방식인 PNG 파일 역시 국제 표준이다. 하나로 통일하면 편할 것을 왜 여러 가지 표준이 존재할까. 단일 표준으로는 시장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소비자는 사용 환경과 용도에 맞게 표준을 선택해 활용하는 것이다. 만약 어느 한쪽의 단일 표준만 강요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사회적 손실을 초래하게 된다.초고속인터넷의 경우도 케이블 방식과 ADSL 방식으로 나뉘어 서비스되고 있다. 이는 사용자 입장에서 자기에게 가장 적합한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 편익을 증대시킨다.최근 국내외 기구에서는 디지털 문서의 표준화가 한참 다뤄지고 있다. 디지털 문서는 정보를 교환하는 주된 수단이 됐다. 문서 형식은 여러 애플리케이션과 플랫폼에 공유될 때 상호간 의사소통이 원활해진다. 문서는 또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도구다. 과거 문서가 현재의 환경에 알맞게 구현되기 위해서라도 디지털 문서에는 표준이 필요하다.그러나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문서에도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가 있다. 앰뷸런스가 거리를 청소하는 데 적합하지 않고 제설차가 교외 통근자를 직장으로 수송하는 데 유용하지 않듯이 오늘날 소프트웨어 사용 현실에서는 다양한 소프트웨어 응용 프로그램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여러 개의 파일 형식이 존재한다.단일 표준으로는 결코 충족시킬 수 없는 시장의 현실이다. 이 때문에 표준의 선택은 정부와 공급자 입장에서 단일화할 것이 아니고 사용자 입장을 반영해 용도에 맞게 골라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순리라는 지적이다.표준의 존립 이유는 사회적 손실 방지다. 그러나 시장 현실을 외면한 표준 체계는 오히려 사회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이미 지나갔어도 뒤늦게나마 ‘세계 표준의 날’의 의미를 새삼 되새겨 보는 이유다.유재성한국마이크로소프트 사장약력: 1960년생. 88년 한양대 전자공학과 졸업. 87년 LG전자 해외영업 PC부문. 94년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입사. 2004년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일반고객사업부 전무. 2005년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대표이사 사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