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한국·인도 유학생 유치 안간힘… 인력 부족 해결 위해 팔 걷어
요즘 일본 기업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인재 확보’다.일본 기업들은 인구 감소와 단카이(團塊·베이비붐) 세대의 대량 퇴직으로 인력난에 직면해 있다. 일본은 출산율 저하로 작년 약 1억2800만 명이었던 인구가 2025년 1억2100만 명, 2050년엔 1억 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올해부터는 단카이로 불리는 베이비붐 세대(1947∼49년생)가 본격적으로 정년퇴직을 맞는다. 경기가 회복되면서 인력 수요가 늘고 있는데 일할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일본 정부는 현재 6600만 명인 노동인구가 2030년엔 1000만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정보기술(IT) 기업들의 인력난은 이미 심각한 상태다. 일본정보서비스산업협회가 최근 일본의 주요 IT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84%가 기술 인력난을 호소했다. 버블(거품) 경제 붕괴 후 대학도, 기업도 모두 IT 인력 양성에 소홀했던 탓이다. 앞으로 5년간 일본의 IT 기술 인력은 15만 명 정도가 부족할 것이란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이에 따라 일본 기업들은 외국 인재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타깃은 주로 중국 한국 인도 동남아 출신들이다. 아시아계들이어서 문화적 유사성이 있는 데다 상대적으로 싼 인건비로 활용할 수 있는 인재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인력난이 심각한 IT 분야의 우수 인력이 풍부하다는 점도 이들 나라가 매력적인 이유다. 기업들의 외국 인재 유치엔 일본 정부와 대학도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실제 NEC와 후지쯔 등 일본의 대형 전기·전자 업체들은 앞으로 3년간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국적의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 1만 명 이상을 고용하기로 했다. NEC는 외국 인력 채용을 현재보다 2배로, 후지쯔는 3배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다.인재 파견 회사인 파소나테크의 나가노 도루 이사는 “국내에서 필요 인력을 구하지 못해 외국 인력을 찾는 기업들이 많다”며 “올 여름부터 중국 다롄 등 동북부 지역에서 이공계 대학 졸업생을 모집해 자동차 전기 업체 등에 파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내년부터 인도의 이공계 대학 졸업자도 모집할 계획이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즘 일본에선 외국인 유학생 취업 박람회가 유행이다. 지난달 한 취업 알선 회사가 도쿄 시내 이케부쿠로에서 개최한 외국인 유학생 취업 박람회에는 하루 동안에만 3200여 명의 외국인 학생들이 찾아 문전성시를 이뤘다. 마쓰시타전기 등 42개 일본 기업이 참가한 이 박람회에 온 학생들은 주로 중국 한국 인도 등의 유학생들이다. 행사 주최 회사 관계자는 “최근 1~2년 사이엔 외국인 유학생 취업 박람회만 열면 장사가 된다”며 “우수한 외국 유학생을 확보하려는 일본 기업들이 늘면서 유학생들의 호응도 뜨겁다”고 말했다.역으로 한국 중국 등에선 일본 IT 기업에 취업하는 붐이 일고 있다. 한국의 경우 지난해 산업인력공단을 통해 일본에 취업한 IT 인력은 500명이 넘는다. 다른 경로까지 합치면 2003년 이후 일본에 취업한 IT 인력은 수천 명으로 추산된다. 일본 경제산업부 관계자는 “지난 2003년 한국 정부와 IT 자격 상호 인증 양해각서를 체결해 한국의 자격증을 일본에서도 인정해 주고 있다”며 “일본 기업들이 한국의 우수한 IT 인력을 자유롭게 채용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일본 내 외국인 수도 급속히 늘고 있다.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2005년 전체 인구의 1.57%인 201만1000명에 달했다. 1990년 88만6000명에 불과했으나 15년 만에 2배 이상으로 증가한 것이다. 국제결혼도 크게 늘어 2004년 전체 결혼 건수의 5.5%를 차지했다. 일본 전체 인구가 감소 추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수치다.기업들의 외국 인력 채용이 늘면서 일본 내 외국인 타운도 증가 추세다.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 본사와 주요 공장이 있는 도요타시 인근의 호미가오카에는 주민 9000여 명 중 절반이 넘는 5000여 명의 브라질인이 살고 있다. 도요타 공장에서 채용한 브라질 근로자들이 모여 살면서 아예 브라질 타운이 돼버린 것. 도쿄의 에도가와구에도 인도인 1000명이 모여 사는 인디아 타운이 최근 생겼다. 대부분 일본의 IT 벤처기업에서 일하는 인도인들이다. 이곳에 사는 인도인은 2000년 240여 명에 불과했지만 6년 동안 4배 이상 늘었다.외국 인력 유치에 열심인 건 기업뿐만 아니다. 일본 정부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일찌감치 외국인 연수생 제도를 도입해 저임금 외국 인력을 활용했던 일본은 최근 우수 외국 인재 유치에 열성이다. 전문 기술을 갖고 있거나 박사 학위자 등 고학력 외국 인력에 대해선 일본 체류 기간을 종전 3년에서 5년 정도로 연장시키는 것을 강구 중이다. 또 대학의 9월 학기제 도입을 촉진해 우수 외국 유학생을 유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일본의 외국 인력 활용은 1990년대부터 본격화됐다. 1960∼70년대 고도 성장기를 거친 일본은 1980년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인력난이 극심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1990년 ‘외국인 연수제도’와 1993년 ‘기능실습제도’를 잇따라 도입했다. 이 제도들은 지난 1994년 한국에서 시행된 외국인 산업연수생 제도의 모델이 됐다.일본의 외국인 연수제도는 중소기업들이 연수생을 상근 직원 수의 5% 내에서 고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연수생들은 입국 전 일본어와 연수 제도 등에 대해 4개월 이상 교육을 받아야 한다. 연수 기간은 1년 이내다.외국인 연수생 선발은 △해외 진출 현지법인이나 합병기업, 해외 거래처 기업 △상공회의소 중소기업조합 등 중소기업 단체 △국제연수협력기구(JITCO) 등이 맡고 있다. 일본은 매년 4만5000~5만 명 정도의 외국인 연수생을 입국시키고 있다. 외국인 기능실습제도는 숙련된 연수생을 좀 더 활용하기 위한 제도다. 외국인 연수생이 해당 기업 대표자의 동의 아래 JITCO 주관의 기능평가검정시험에 합격하면 체류 기간을 최대 3년까지 연장해 주는 것이다.일본 정부는 우수 인재의 경우 입국과 정착 영주를 촉진하는 정책을 지난해 마련했다. 해당자가 입국 기준에 다소 못 미치더라도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갖고 있다면 입국을 허가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또 최대 체류 기간 3년이 지났더라도 고급 인재라고 판단되면 장기 체류를 허가할 수 있도록 했다.미래의 산업 인력인 외국인 유학생 유치 노력도 각별하다. 일본 정부는 대학에 9월 학기제를 권장하고 있다. 일본 대학의 학기가 4월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9월 학기제인 미국 유럽 등으로부터의 유학생 유치나 학생 교류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 일본 정부는 우선 국공립 대학을 중심으로 9월 학기제 도입을 늘리고 사립대학도 9월 학기제를 도입하는 대학에 대해선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해외 인재 유치엔 일본 대학도 열심이다. 올해로 개교 125주년을 맞은 사학 명문 와세다대학은 외국 인재를 많이 유치해 글로벌 대학으로 발돋움하겠다고 최근 선언했다. 인재 유치 등을 통한 국제화에 실패하면 국내외 명문대학과의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 학교는 앞으로 5년간 8000명의 유학생을 유치하고 현재 54개국 294개 학교와 맺고 있는 교환학생 제도를 350개로 늘려 국제 교류를 활성화할 예정이다. 기숙사도 다섯 배로 늘려 캠퍼스 생활 자체를 국제화해 ‘열린 학교’를 통해 글로벌 인재를 키우겠다는 목표다.도쿄대도 외국의 고급 두뇌를 유치하기 위해 내년부터 대학원 박사과정 연구자 상당수에게 수업료를 면제해 주기로 최근 결정했다. 현재 도쿄대 박사과정 연구자는 약 6000명이다. 이 중 일본학술진흥회 등에서 경제적 지원을 받는 연구자는 2100명으로, 도쿄대는 휴학생을 제외한 나머지 3000명의 절반 이상에게 연간 총액 52만8000엔(약 417만 원)의 수업료에 버금가는 지원을 하기로 했다세계적인 두뇌 확보를 위해 도쿄대가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세계적인 대학은 인재 유치를 위해 박사과정 학생들에게 생활비도 지원해 주고 있다.차병석·한국경제 도쿄특파원 chabs@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