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달러 자산 가정 2006년 31만 가구… 미국 일본 이어 세계 5위

중국에 ‘부호 군단’이 뜨고 있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독일을 제치고 세계 3위에 오를 것으로 기대되는 중국의 1인당 GDP 순위는 몇 위일까. 중국의 지난해 1인당 GDP는 2010달러로 세계 129위다. 지난 2002년 1100달러로 처음으로 1000달러를 넘어선 중국의 1인당 GDP는 4년 만인 지난해 2000달러에 진입하는 등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인의 평균적인 부는 아직도 개도국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그러나 백만장자 숫자를 보면 중국의 순위는 다시 급상승한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최근 발표한 세계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서 100만 달러 이상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가정은 지난해 31만 가구로 세계 5위다. 전년보다 한 단계 더 오른 것으로 미국 일본 영국 독일 다음이다. 2001년 12만4000가구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덕분이다.중국 경제의 고성장에 힘입어 2011년엔 백만장자 가구 수가 60만9000가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중국에서 금융자산이 500만 달러를 넘는 가정도 2001년 1만4000가구에서 지난해 4만8000가구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 가구의 금융자산은 지난 5년간 연평균 23.4% 증가해 성장률 면에선 이미 전 세계 1위다. 같은 기간 세계 가구 금융자산의 평균 성장률 8.6%를 크게 뛰어넘는 수준이다.무서운 속도로 덩치를 불리고 있는 중국 부자 군단의 배경은 주식과 부동산이다. 지난해 130% 급등한데 이어 올해도 100% 이상 뛰어오른 중국 증시와 꺾일 줄 모르는 중국 부동산 시장이 부호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중국 유통 업계 부호 순위에서 3년간 1위를 지켜온 최대 가전 유통 업체인 궈메이의 황광위 회장을 제치고 쑤닝전기의 장진둥 회장이 올해 최고 부자 자리에 오른 것도 주식 덕분이다. 궈메이는 홍콩 증시에, 쑤닝전기는 상하이 증시에 상장돼 있다. 홍콩도 급등했지만 상하이 증시의 폭발적인 급등세가 부호 순위를 바꿔놓은 것이다. 경제참고보는 최근 중국의 부호 리스트를 살펴본 결과 자산이 가장 빠른 속도로 불어난 7명 모두 그들의 부가 증시와 연관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중국 기업이 세계 시가총액 상위권을 휩쓸고 있는 현상이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지난 5일 상하이 증시에 상장한 중국석유(페트로차이나)가 시총 1위 기업에 등극한 지 하루 만인 6일 세계 최대 B2B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는 홍콩 증시에 상장한 첫날 257억 달러의 시가총액을 기록함으로써 구글 e베이 야후 야후재팬에 이어 세계 온라인 업계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이미 세계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 중 중국 기업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중국인수(생명보험) 시가총액이 미국 AT&T를 추월해 전 세계 시가총액 10위로 올라서면서 중국 기업으로서는 세계 10위권에 진입한 5번째 상장사가 됐다. 중국석유 차이나모바일 공상은행 중국석화(시노펙)에 이은 것이다. 공상은행과 중국생명은 씨티그룹과 AIG를 제치고 세계 최대 금융 기업이 됐고 차이나모바일은 전 세계 1위 이동통신사로 부상했다. 중국에 밀린 미국은 엑손모빌과 GE 마이크로소프트 3개사만 10대 기업에 넣는데 그쳤다.하지만 중국 부호의 급팽창이 증시나 부동산 시장의 거품에 따른 일시적인 신기루라는 지적도 있다. 신기루가 사라지는 순간 부호들의 부도 날아갈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중국 부자들의 약진이 빈부 격차의 확대를 심화시킨다는 데 있다. BCG는 금융자산 100만 달러가 넘는 신흥 부자가정이 전체 중국 가정의 0.1%에 불과하지만 전국 금융자산의 41.4%를 점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500만 달러 이상의 금융자산을 소유한 가정들이 보유한 자산이 중국 전체 금융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01년 13.3%에서 지난해 21.1%로 급상승했다.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공산당 대회 업무 보고에서 “더욱 더 많은 군중이 재산성 수입을 가질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겠다”고 밝힌 것도 중국의 부자들의 산파역을 한 주식과 부동산 시장 성장의 과실을 일반 시민들에게도 공유시켜 중산층을 키우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게 중국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상푸린 증권감독위원회 주석은 “재산성 수입은 저축 주식 채권 등에 대한 투자 수익과 주택 및 토지 등 부동산의 매매 또는 임대 수입을 뜻한다”고 말해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했다. 경제참고보는 후 주석의 발언을 재산성 수입의 대중시대 서막이 오른 것으로 평가하기도 했다.특히 빈부 격차 확대는 후 주석이 국가 통치 이념으로 내세우고 있는 조화사회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만큼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 해법으로 후 주석은 재테크를 통한 부의 확대를 들고 나온 것이다. ‘있는 자의 부를 줄여 없는 자에게 나눠준다’는 하향 평준화식 접근보다는 ‘부를 만들 기회를 균등하게 함으로써 함께 잘살자’는 접근법은 실리를 추구하는 중국 특유의 실용주의를 엿보게 한다. 물론 재테크 시장 성장을 통한 중산층의 확대는 소비 진작을 중국 경제의 핵심 성장 엔진으로 장착하려는 중국 지도부의 의도와도 맥이 닿는다. 중국 경제는 투자와 수출 주도의 경제 성장을 해 왔지만 투자 과열과 해외 무역 마찰이 심화되면서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소비 주도형 경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전망은 밝다. 중국에서 금융자산이 10만~100만 달러 사이의 ‘여유 있는 중산층’도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BCG는 이들 중산층이 현재 325만 가구에서 2011년 640만 가구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물론 재테크 기회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부의 편중이 심화돼 빈부 격차가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중국에 부자 군단이 뜨면서 외국 기업의 비즈니스 기회도 확대된다는 것이다. 상하이에는 매년 부자들을 위한 명품 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다이아몬드로 치장한 350만 달러짜리 휴대폰은 이제 뉴스도 아니다. 중국의 명품 시장은 이미 지난 2004년 60억 달러에 달했고 매년 10~20% 성장해 오는 2015년이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명품 소비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 지 오래다. 중국인이 해외여행에서 소비로 지출한 돈도 이미 세계 1위로 발 빠른 외국 업체들은 중국인 관광객을 잡기 위한 마케팅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최근에는 중국 부자 군단을 겨냥한 프라이빗뱅킹(PB)이 신흥 비즈니스로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후 주석의 재산성 수입 확대 발언은 PB 시장의 급팽창을 예고한다. BCG는 중국이 이미 아시아에서 일본을 제외한 최대 재테크 시장으로 부상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중국 가구의 금융자산은 2조5000억 달러에 달한다.중국은행들이 PB 비즈니스에 속속 뛰어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에서 맨 먼저 PB 비즈니스를 개척한 곳은 중견 은행인 차오상은행이지만 이젠 중국 4대 국유 은행들까지 가세하기 시작했다. 중국은행은 올 3월 베이징과 상하이에 첫 번째 PB 지점을 열었다. 100만 달러 금융자산 보유 고객을 겨냥한 것이라는 게 은행 측의 설명이다. 건설은행도 상하이 베이징 항저우에서 300만 위안(1위안은 약 120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부자를 타깃으로 한 프리미엄 뱅킹 서비스를 시작했다.외국계 금융회사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중국에 PB 비즈니스를 개시한 씨티뱅크 스탠다드차타드 HSBC 등이 대표적이다. UBS도 공격적으로 PB 비즈니스에 나서고 있다. 중국내 6개 영업 지점에서 지난달 500만 위안 이상의 부자들을 위한 PB 영업을 시작했다.중국에서의 PB 비즈니스는 중국 부자들의 특성을 제대로 읽어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 증시 급등으로 현금보유가 줄긴 했지만 아직도 중국 부자들은 현금 보유 규모가 전체 자산의 60% 수준에 이른다. 미국과 유럽은 이 비중이 20~30%에 불과하다. 중국 부자들은 부동산 제조 유통 정보기술(IT) 업종의 기업인들이 대부분이고 투기성이 강한 편이어서 부동산과 금융시장 투자를 선호한다는 것도 관심을 둘 만하다.오광진·한국경제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