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 미보다 구체적 사물로 다뤄야’…제자 양성도 ‘적극적’

‘알마 마르소(ALMA MARCEAU)’는 프랑스 파리 센 강의 알마 다리와 마르소 거리가 만나는 지점의 이름이다. 10년 전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목숨을 달리한 곳이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한국에서 알마 마르소란 꽃을 팔고 플라워 디자인을 가르치는 꽃집의 이름이다. 꽃을 디자인하는 남자, 알마 마르소의 김종욱(36) 원장을 만났다.알마 마르소 본점은 청담동 명품거리 뒤쪽에 있다. 당대 트렌드의 중심가에서 꽃을 다루고 있는 김 원장이지만, 플라워 디자인에 대한 견해를 ‘조근조근’ 풀어내는 모습이 그저 꽃만 아는 순박한 농부를 보는 듯하다. 본격적으로 꽃을 접한 지 20년이 된 그는 20년 전에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단계를 밟아서 오늘날 최고의 플라워 디자이너로 자리 매김하게 됐다.“남자는 모름지기 기술을 가져야 한다는 부모님을 둔 지방의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부모님 뜻에 따라 큰형은 기계와 관련된 기술을 배웠고요. 그 이후로 아들 넷 중에 한 명 정도는 꽃꽂이를 해도 괜찮다는 분위기였습니다. 특히 어머니가 꽃을 좋아하셔서 적극적으로 추천하셨죠.”부모의 말에는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착한 아들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꽃꽂이를 배웠고 졸업 후 스무 살에는 바로 자신의 꽃집을 차렸다. 당시만 해도 여성들이 집안에서 취미 삼아 하는 동양식 꽃꽂이만을 배울 수 있었고, 꽃집에서는 디자인이라는 개념 없이 단순히 다발을 포장해서 팔았다. 디자인은 꽃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예쁜 포장지를 사용하는 정도로만 인식되던 시절이다.“한창 나이의 젊은이가 일찍부터 자기 가게를 차려서 꽃만 포장하고 있으려니 무료하기도 하고 내면의 에너지를 밖으로 발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꽃을 만지면서 유일하게 슬럼프에 빠졌던 시기입니다.”변화를 원하는 그에게는 혼자서 해외에서 나온 잡지나 관련 책들을 구해 읽으며 아이디어를 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보여준 플라워 디자인은 파격적인 것이었고,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특급호텔에 입사해 웨딩이나 연회의 꽃을 담당하기도 했지만 한정된 꽃으로 정해진 디자인을 하는 일에 한계를 느꼈다.“특급호텔이라고 하면 플라워 업계를 선도하는 곳이었거든요. 플라워 디자이너들이 많아진 지금도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고요. 그런 곳에서도 답답함을 느꼈고 더 높은 수준의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1999년에 결혼하면서 영국에 유학을 가기로 결정했어요.”그러나 말이 유학이었지 부부가 생활할 정도로 돈이 많다거나 준비가 제대로 돼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살림 차리는 비용보다 외국 가는 돈이 더 저렴하겠다는 핑계로 아내를 설득하고 책에서 본 광고만을 들고 런던에 있는 콘스탄스 스프라이 플라워 스쿨을 찾아갔다. 콘스탄스 스프라이 플라워 스쿨은 유럽에서도 알아주는 자연주의 계열의 정통 디자인을 가르치는 학교다.“프랑스의 플라워디자인은 형식주의적인 측면이 강하고, 네덜란드는 산술적인 느낌을 주고, 독일은 조형미를 강조한 초자연주의가 특징이에요. 그때는 그런 경향을 전혀 몰랐죠. 우연히 찾아간 곳이 어쩌다 보니 엄격한 자연주의를 고수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학교였던 겁니다. 현대적이고 예술적인 디자인을 기대하고 갔다가 자연에 손을 대지 않은 듯한 풍성한 느낌에 깜짝 놀랐죠.”학교를 선택한 것은 우연이기는 했지만, 지금은 매우 감사하고 있다. 어떤 디자인을 하더라도 기본이 되는 뿌리를 가지게 됐다는 생각 때문이다. 김 원장은 정식 교육을 마친 후에 프랑스 독일 벨기에 이탈리아 스위스를 돌아다니며 각국의 스타일과 교수법에 대해 탐구했다. 유럽에서 공부하는 동안 크게 달라진 점은 꽃에 대한 태도다. 그는 10년 넘게 꽃을 보면서도 꽃이란 파는 것이지 스스로 즐기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한다.한국에 다시 돌아온 김 원장은 서울 역삼동 테헤란로에 꽃집을 차렸다. 그가 해외에서 배워 온 플라워 디자인은 한국 사람들에게 낯선 충격이었다. 특히 그가 배워 온 영국의 자연주의풍은 평범한 꽃만 봐오던 사람들이 소화하기에 어려운 스타일이었다. 그는 프랑스적인 형식미를 가미해 조금씩 고객들을 길들이기 시작했다.“장미꽃에 안개꽃을 찾는 손님이 왔다가 그냥 가기도 하고요. 가격을 보고는 웬 꽃이 그렇게 비싸냐고 하면서 돌아가기도 했지요. 어떻게든 제가 맞췄죠. 처음에는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팔기도 하고 손님의 취향과 절충할 수 있을 만한 디자인을 제시했어요. 그 대신 한 번 두 번 더 오게 될 때는 제가 원하는 수준에 오르게 됐지요.”김 원장은 개인의 취향은 물론이요, 기업의 풍토도 바꿔 놓았다. 기업체가 임직원 선물과 외부 행사용으로 소비하는 꽃의 양은 엄청나다. 그런데 우리 기업들이 원하는 꽃은 무조건 크고 화려한 것이라고 한다. 이왕 하는 선물인데 꽃이며 보내는 사람의 이름을 새긴 리본이 눈에 확 띄기를 원하는 것이다.“고정적으로 거래하는 한 대기업을 완전히 바꾸는 데 성공했어요. 꽃다발이나 바구니의 크기가 작아도 아름다운 선물이 될 수 있도록 하고, 크고 흉한 리본 대신 함께 보내는 작은 카드를 이용하도록 했습니다.”그는 플라워 디자이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꽃을 디자인하는 법, 플라워 비즈니스, 디자인 교수법 등 세 가지를 가르치고 있다.알마 마르소가 청담동과 용산의 직영점 외에 분당 수원 청주 부산 등에 체인을 낸 지금은 무엇보다 빨리 수제자를 키우는 것이 김 원장의 소망이다. 그동안 500여 명 정도의 제자들을 길러냈고 개중에 믿을 만한 제자들에게는 알마마르소라는 이름을 사용하도록 허락해 줬다.“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에게 무언가를 물려주는 데 인색한 것이 한국의 문화입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다 비워서 남을 키워 놓아야 다시 채워야겠다는 노력도 하게 되지요. 내가 크기 위해서라도 남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가 제자를 판단하는 기준은 단 한 가지, 성실성이다. 예술 분야에서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답지 않은 기준이어서 조금 놀랐다. 재차 물어 보아도 재능보다는 성실성이 중요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재능만 있는 친구들은 오래 견디지 못하더라고요. 자기가 본 작은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고 금방 뛰쳐나가요. 재능은 노력을 통해 채울 수 있는 부분이지만 타고난 성실성은 누군가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김 원장은 기본을 강조한다. 강의 첫 시간에도 ‘꽃은 생식기관’이라는 점부터 가르친다. 플라워 디자인은 보기에 아름다운 대상인 꽃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작업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살아 있는 꽃, 구체적인 사물로서 생식기관이라는 특징을 가진 자연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가 플라워 디자인의 기본이 된다.그 다음은 당연히 꽃에 대한 애정이다. 스쳐 지나가면서도 다발 속의 단 한 송이 꽃이 물에 닿지 못해 시들어가고 있는 것이 그의 눈에만 들어온다. 그럴 때만큼은 평소 부드러운 그도 꽃이 시들고 있는데 밥이 넘어가느냐며 학생들을 꾸짖곤 한다.“자연에서 죽어가는 식물들은 싹에서 시작해 꽃을 피우고 낙엽으로 아름답게 사라지잖아요. 인위적으로 죽음을 맞이해 시드는 꽃은 추하지요. 어쩔 수 없이 그 전에 이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연을 보고 있으면, 사람의 인생과 자연의 섭리를 떠올리게 돼 한없이 겸손해집니다.”약력: 1971년생. 1987년 동양 꽃꽂이 입문. 1996 연세대 사회교육원 플라워 전시회 금상 수상. 1999년 영국 콘스탄스 스프라이 플라워 스쿨(Constance Spry Flower School) 졸업. 2005년 알마 마르소 개점.김희연 객원기자 foolfo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