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같은 금요일 저녁, 직장인 A 씨는 마음 맞는 동료들과 함께 오늘 밤을 불사르기로 했다. 1차는 저녁 식사도 할 겸 회사 근처 맛있는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많이 먹고 마셨다. 2차는 호프집. 역시나 자주 가던 익숙한 가게로 들어갔고 괴팍한 김 부장과 거래처 박 사장을 안주로 꽃 피운 ‘뒷담화’는 늦게까지 이어졌다. 3차는 단란주점으로 향했다. 정신없이 소리치고 노래 부르며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4차는 다시 술이다. 입가심으로 맥주를 한잔하고 금요일 밤을 마무리했다. 집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A 씨는 뭔가 개운치 못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 신나게 놀았지만 즐겁지 않았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A 씨가 보낸 금요일 밤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부분의 대한민국 직장 남성들의 레퍼토리와 일치한다. 대다수의 남성들은 만나면 마땅히 할 일이 없다는 이유로 술을 마신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관심의 폭을 조금만 더 넓히고 더 부지런해진다면 즐겁고 근사한 시간을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하고 어떻게 놀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가장 좋은 방법은 여성들에게 배우는 것이다. 우선 여성들과 함께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자. 데이트의 주도권을 언제나 자신이 쥐고 있는 남성이라면 하루는 여성들이 원하는 것들로만 채워 보자.대다수의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은 정말 다양한 취향의 놀이 문화를 즐기고 있다. 영화, 출판, 뮤지컬, 각종 공연 등의 판매 수익은 항상 남자보다 여성의 비중이 많으며 식당, 카페 등의 주고객층은 여성이다. 이는 이 모든 것들이 여성들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단지 남성들이 모르고 있거나 무심하기 때문이다.요즘 파티 문화의 발달로 이곳저곳에서 셀 수 없이 많은 파티들이 열리고 있다. 아는 사람끼리 만나는 사교 파티도 나쁘지 않지만 최근 열리는 브랜드들의 런칭 행사 파티는 제대로 기획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이 모이는 파티일지라도 눈과 귀와 입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좋은 예로 지난 10월 20일 열린 아우디 최초의 초고성능 미드십 슈퍼 스포츠카 ‘아우디 R8’의 런칭 행사가 잠원 지구 한강 시민 공원 변에 있는 ‘프라디아’라는 곳에서 열렸다. 남성들에게 자동차를 주제로 하는 파티보다 더 관심 가는 파티가 또 있을까.이번 행사는 신나고 스펙터클한 빅밴드의 공연과 고급스러운 하얏트 호텔의 케이터링 서비스, 돔 페리뇽 같은 고급 샴페인 등 파티의 모든 것을 즐길 수 있었던 대규모 선상 파티로 행사 후에도 입소문이 자자했다. 이런 경우, 억대를 호가하는 자동차를 사라고 강요하는 파티로 보기보다는 자신이 이런 파티를 어떻게 즐기느냐에 따라 최고의 파티가 될 수도 있고 최악의 파티가 될 수도 있다. 스포츠카를 하나의 사치품이 아닌 미술관의 작품으로 여긴다면 말이다. 그러면 가질 수 없다는 박탈감에서 오는 좌절감 대신 자동차의 가치와 아름다움이 마치 미술관에서 위대한 작품을 감상하는 것처럼 당신의 오감을 만족시킬 것이고 그 자리에 간 자신이 즐거울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태도는 자본주의 사회를 즐겁게 살아나가는 하나의 지혜일지도 모른다.이런 행사를 더욱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바로 드레스 코드를 잘 지키는 센스다. 드레스 코드를 하나의 제약으로 바라보며 귀찮게 여기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드레스 코드를 준비해 보자. 드레스 코드를 갖추며 파티를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당신이 바로 그날의 주인공이며 주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이미 당신은 그 행사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이제 전시회가 지루하다는 고정관념은 버리는 것이 좋다. 아마도 인사동 쌈지길은 많은 독자들이 이미 가보았을 것이다. 걷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고 볼거리가 많기로 유명하다. 근처 오픈 갤러리도 한번 둘러보고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차 한 잔 하고 나면 왠지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최근 전시 문화의 모습이다. 어려운 작품 앞에서 의미를 찾아내려 끙끙대기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며 참여할 수 있는 작품들을 즐겨보자. 최근 전시 문화는 친구, 연인, 가족들과 함께하는 휴식의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남자들이여, 이제 미술관에서 놀 준비를 하라.이러한 추세에 맞게 최근 소규모 갤러리나 개인 갤러리가 놀이 문화로 강세다. 특히 청담동 부근 갤러리와 인사동, 삼청동 주변 갤러리가 눈길을 끈다. 청담동에서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이 만든 명품 의자를 컬렉터들에게 소개하는 전시 ‘내 첫 번째 의자(My First chair)’전이 열렸던 ‘서미 앤 투스(Seomi & Tuus)’나 샤갈과 앤디 워홀의 작품을 배경으로 고급스러운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오름 갤러리’를 추천한다. 그 외 사진 전문 화랑 ‘갤러리 뤼미에르’나 젊은 작가의 발굴 및 홍보를 목적으로 최근 문을 연 ‘갤러리 엠’ 등 소규모이지만 감각이 앞서있는 갤러리들이 많이 있다. 한남동에 있는 리움박물관 역시 세계적인 수준의 작품과 한국 최고의 그림들에 흠뻑 취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다.인사동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갤러리 라메르’, ‘조형 갤러리’, ‘갤러리 상’ 등 수많은 갤러리들이 눈에 띈다. 이들은 좀 더 대중적이고 친숙한 느낌의 갤러리들로 전통과 현대가 묘하게 혼합돼 있는 인사동 길의 분위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인사동에서 삼청동으로 발길을 돌리면 좀 더 다양한 갤러리들을 접할 수 있다. 삼청동의 국제 갤러리는 1982년부터 ‘데미안 허스트’, ‘장 미셸 바스키아’ 등 굵직굵직한 전시를 진행해 왔던 대표적인 갤러리다. 화려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외관으로도 유명하다. 1970년 현대화랑이란 이름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전통의 갤러리 현대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현대 미술 전시를 주로 다루는 아트선재센터나 금호 미술관도 삼청동의 대표 갤러리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교외에 있는 갤러리로 눈을 돌려보자. 이제는 명소가 된 예술가 마을 헤이리나 과천에 위치한 과천현대미술관은 가족들과 함께 즐기기 좋은 곳이다.이렇게 쉽게 접할 수 있는 갤러리에서 어렵다고 느껴왔던 예술을 그야말로 윈도 쇼핑하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즐겨보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충만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최근 방영된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휴일에 늦게까지 자고 하루 종일 TV를 보며 뒹굴던 직장인과 일찍 일어나 운동하고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직장인의 피로 해소도를 비교한 적이 있다. 결과는 후자의 승리다. 피곤하다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몸을 축 늘어져 있는 것은 피로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진정한 휴식은 몸과 머리와 가슴이 같이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하지만 절대로 여가를 즐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갖지 말자. 그토록 기다리던 휴일을 스스로가 정한 타이트한 계획으로 억누르는 것 또한 미련한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말 제대로 놀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자신만의 놀이 문화를 개발해야 한다.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쉬운 일이다. 자신이 가장 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 하루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 그저 여유롭게 길을 걷는 것 등으로 우리 남자들은 충분히 쉴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어릴 적 든든한 점심을 먹고 기분 좋게 누워 있으면 어김없이 나를 부르던 옆집 친구의 목소리가 생각난다. ‘친구야~ 놀자~.’ 그 당시 우리는 매일 같이 만나면서도 매일 새로운 놀이를 찾아냈고 매일 즐거웠다. 마땅히 갈 데가 없다고, 마땅히 할 일이 없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찾아내고 만들어 내면 됐으니까. 어른이 된 우리는 그때보다 더 넓은 활동 영역과 더 많은 자유를 가지고 있다. 열린 사고로 즐거움을 찾아내고 만들어내자. 얼마나 신나게 노는가는 주머니 사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려 있다.황의건·(주)오피스에이치 대표이사 h@office-h.com1994년 호주 매커리대 졸업. 95~96년 닥터마틴·스톰 마케팅. 2001년 홍보대행사 오피스에이치 설립. 각종 패션지 지큐·앙앙·바자 등에 칼럼 기고. 저서에 샴페인 에세이 〈250,000,000버블 by 샴페인맨〉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