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책상을 정리하다 오래 전에 사용하던 낡은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벌써 스산한 바람이 창문 틈으로 헐겁게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작은 무엇 하나도 생각의 단초가 되는 그런 계절이다. 난 이 낡은 수첩에 빼곡하게 적혀 있던 사람들 이름을 하나씩 하나씩 다시 들여다 보았다.알 듯 모를 듯 안개처럼 뿌연 이름들이 꽤 있었다. 그 기록의 바래짐은 다름 아닌 시간의 흐름이었다. 돌이켜 보니 언제부터인가 태어나는 이들을 바라보는 순간보다 인생의 뒤안길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보는 나이가 되었다.그 수첩에 적힌 지인들과 나의 친구들도 그리고 뿌연 이름의 사람들도 역시 아버지를 여의거나 부모님의 말년을 걱정하는 세대가 되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이제는 지천명의 나잇고개를 숨차게 넘어가고 있다.새삼 ‘아버지’라는 이름의 존재감이 생각의 연못 속에 돌처럼 던져졌다.사람이란 본시 태어나면 죽을 때까지 ‘사회생활’이란 걸 한다. 그리고 그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만나게 된다. 그 수많은 인연 중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아버지라는 존재는 사실 세상 모든 관계의 기본이 되는 ‘필연적’ 만남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그렇게 모든 사람, 특히 모든 남자들에게 있어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어린 시절의 그들에게 인생의 목표이자 이 세상의 모든 것으로 비쳐 진다. 성장을 해 나가면서 아버지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때론 경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나이가 더 들어가면 언젠가는 포용을 해야 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아버지는 결국 그렇게 애증과 사랑이 교차하는, 거부할 수 없는 존재로 다가온다.나 역시도 예외는 아니다. 내가 자랄 때만 해도 아버지라는 존재는 거의 절대적이었다. 그러다보니 ‘일방통행’인 인간관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세대는 아들과의 ‘쌍방통행’이 가능해진 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그렇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가족의 구성원 중 아버지라는 존재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아버지’의 존재감이 가족 속에서 크게 자리를 메우고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그 만큼 해야 할 일과 책임져야 할 일이 많다는 뜻일 게다. 아버지라는 존재의 어깨에는 여전히 막중하게 부여되고 있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아버지는 예수도, 부처도, 공자도 아니다. 전 생애에 걸쳐 완벽한 삶을 살 수는 없다. 막중한 책임을 진 아버지도 때론 실수와 잘못을 범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이 ‘아버지’에게 닥쳤을 때 가족이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사랑으로 풀어나가려는 분위기가 중요하다.이 분위기를 만드는 건 평소에 아버지가 ‘어떻게’ 가족에게 보여졌느냐가 관건이 된다. 해야 할 일과 책임져야 할 일을 이제껏 그 아버지가 잘 해왔느냐가 이때 나타난다. 평소에 그 아버지가 얼마나 부단한 노력을 해왔느냐 하는 것이다.나의 아버지도 완벽하지는 않다. 그리고 나 역시도 내 자식에게 그러할 것이다. 물론 다른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의 아버지는 그 막중한 그 무엇을 부단한 노력으로 버텨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당신의 가족을 반듯하게 지켜냈다.그리고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사실은 나의 아버지가 아직도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그건 나에게 축복이고 행복이다. 아버지는 이제 경영의 최전방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셨다. 하지만 여전히 아버지의 방 한구석에는 진군나팔과 지휘봉이 고스란히 모셔져 있다.죽은 제갈공명은 산 사마중달을 ‘존재감’ 하나로 물리쳤다. 그렇게 나에게 있어 아버지의 존재감은 ‘제갈공명’의 그것 이상으로 다가온다. 나에게 아버지란 인생의 선배이자 삶의 동반자다. 그리고 아직도 나에게 새로운 도전을 가능케 하는 힘의 원천이 되어주고 있다.글 / 김창식대한교과서 주식회사 대표이사. 1957년 서울 명륜동에서 태어났다. 1989년 일본 메이지대학 경영학과 졸업. 대한교과서 전무이사를 거쳐 2006년 11월 대표이사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