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중소기업은 겉에서 보면 한국의 중소기업과 비슷하다. 작은 공장에 종업원 30~40명 정도가 일하고 있으며 시설이 허름한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다른 게 몇 가지 있다.첫째, 한국의 중소기업은 가동률 저하에 신음하고 있다. 몇 년째 평균가동률이 70% 안팎에 머물고 있다. 공장마다 귀중한 설비 3대 중 1대에는 먼지가 쌓여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본의 중소기업은 다르다. 이들은 설비가 모자란다고 아우성이다. 일본 중소기업청의 이노우에 세이지로 과장보좌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내용을 보면 14분기(3년반) 연속 설비가 모자란다는 응답이 나왔다”며 “그만큼 경기가 좋다는 얘기”라고 설명한다.둘째, 한국의 중소기업은 생산직의 인력난은 지속되고 있지만 고학력자 수요는 별로 없는 편이다. 그러나 일본의 중소기업들은 고학력자를 뽑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양해진 중소기업진흥공단 일본사무소장은 “일본 중소기업의 최대 고민 중 하나가 대학졸업자 구인난”이라고 지적한다. 대기업들이 입도선매식으로 고학력자를 싹쓸이 해가고 있기 때문이다.셋째, 한국 중소기업의 주된 관심사는 국내시장에서 1등을 하느냐, 못하느냐이다. 반면 일본기업은 세계시장에서 1등을 하느냐, 못하느냐이다. 너트 생산업체인 하드록은 ‘잘 풀리지 않는 너트’로 고속전철 거대구조물용 너트시장을 급속도로 평정해가고 있다.일본미크로코팅은 나노를 뛰어넘는 옹스트롬(1000만분의 1mm)수준의 가공도로 역시 세계시장을 장악해가고 있다. 쇼와진공은 수정진동자용 진공설비의 세계시장에서 9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 중소기업은 세계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따지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긴다. 이들 가운데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업체들이 많다. 종업원 30~40명의 작은 중소기업 가운데서도 해당제품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50%가 넘는 업체들이 부지기수다.일본 중소기업은 왜 강한가. 일본의 중소업체는 모두 432만 개에 이른다. 전체 기업의 99.7%에 달한다.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은 2809만 명으로 전체 직장인 3955만 명의 71%에 해당한다.이는 299만개에 이르는 한국의 중소기업에 비해 업체수는 44%가 많고 종사자는 2.7배(한국의 중소기업 종사자는 1041만 명)에 이르는 것이다. 업체수와 종사자가 많은 것도 일본 중소기업이 강한 요인 중 하나다. 하지만 그것이 핵심은 아니다. 이들의 강점은 첫째, 연구개발에 목숨을 건다는 것이다. 아무리 경영이 힘들어도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줄이지 않는다. 쇼와진공이나 항공기 및 우주선 부품을 만드는 아오키, 반도체 포장 테이프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아테크트, 연마제 분야의 강자인 일본미크로코팅 등은 모두 기술개발로 승부를 거는 기업들이다.아오키의 아오키 도요히코 사장은 “연구개발에 졸업은 없다”고 말한다. 고객의 요구는 점점 더 급속히 변하기 때문에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선 연구개발밖에 없다는 것이다. 굶어 죽더라도 연구개발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둘째, 철저한 품질관리다. ‘모노즈쿠리’로 대표되는 혼이 담긴 제조기술은 일본 중소기업을 더욱 탄탄하게 만드는 핵심이다. 아테크트의 고타카 노리오 사장은 “모노즈쿠리는 오랜 시간 성실하게 좋은 제품을 만드는 기술이자 그 노력”이라며 “준비과정부터 마무리까지 철저하게 처리하는 태도가 강한 중소기업을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3현(現)주의를 바탕으로 한 가이젠(改善)활동은 모노즈쿠리의 핵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3현은 현장 현물 현실을 말한다. 때로는 이노베이션이 강력한 파워를 형성하기도 하지만 경영자부터 초급 직원에 이르기까지 전사적으로 펼치는 개선활동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엔진인 것이다.셋째, 오랜 업력의 한우물기업이 많다는 점이다. 이른바 가업승계형 기업들이다. 1400년 역사를 지닌 곤고구미뿐 아니라 일본에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기업이 수두룩하다.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중소기업이 거의 없는 한국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이들은 단지 역사만 오래된 게 아니다. 대부분 한우물을 판다. 이들이 가업승계를 통해 기술과 경영노하우를 축적하고, 땀 흘려 혁신에 나선 것이 오늘날 일본 중소기업의 토대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과자업체 스루가야는 역사가 550년이 넘었고, 침구업체 오사카니사카와는 450년, 초밥집 요시노는 16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일본 중소기업의 메카인 히가시오사카에는 100년이 넘은 제조중소기업이 수두룩하다.한때 일본이 10년 불황에 허덕이고 일본기업의 상징인 소니가 휘청거리자 한국은 언젠가부터 일본을 얕보는 풍조가 생겼다. 하지만 일본은 결코 그런 나라가 아니다.한국이 반도체나 LCD 휴대폰 등 주력제품을 수출하기 위해선 상당부분의 제조공정에 일본 기계가 있어야 한다. 부품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구조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래 150년에 이르는 산업화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반면 한국은 지난 1960년대 이후에야 겨우 산업화의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150년과 50년의 격차를 좁혀가고 있다곤 하지만 제조업에 관한한 여전히 일본은 세계 최강의 항공모함 전단이고, 한국은 몇 대의 구축함을 운영하는 수준인 것이다.이는 양국 간의 과학기술력 차이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난다. 일본의 전체 연구개발비는 연간 1320억 달러(2003년 기준)인데 비해 한국은 122억 달러에 불과하다. 10분의 1도 안 되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의 비율도 일본은 3.04%인데 비해 한국은 2.68%에 불과하다. 연구원수는 일본이 643만 명, 한국은 160만 명으로 인구 1만 명당 비율도 일본은 52명인데 비해 34명에 불과하다. 연간 특허출원건수는 일본이 43만7000여 건, 한국은 12만2000여 건에 머물고 있다. 과학기술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를 보면 일본은 19명인 반면 한국은 0이다. 일본과 한국의 격차는 너무 큰 것이다.‘극일’은 구호로 되는 게 아니다. 제조업의 튼튼한 뿌리를 이루고 있는 ‘작지만 강한 중소기업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이들의 경쟁력이 어디서 생겨나는지 그리고 이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를 찾아야만 진정으로 일본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도쿄·오사카(일본)=김낙훈 편집위원·오상훈 중소기업연구원 전문위원 / 후원=뉴브리지캐피탈nhk@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