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몰렸던 강신호 회장 일방적 승리… 고소·공방 ‘진행 중’

시작도 하기 전에 김이 빠져버린 승부였다.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과 그의 아들인 강문석 수석무역 부회장(동아제약 이사)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동아제약 임시주총은 한때 강 부회장 측의 우호지분이 더 많은 것으로 점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강 부회장 측이 일찌감치 백기를 들면서 치열한 표 대결은 이뤄지지 않았다.지난 10월 31일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의 동아제약 본사 7층 강당에서 열린 임시주주총회는 강신호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김원배 대표이사 사회로 진행됐다. 강문석 부회장 측과 추천 이사 후보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몇몇 주주들이 “주가 부양에 힘써 달라”는 요구사항을 전달하기도 했으나 현 경영진을 반대하는 발언은 나오지 않았다. 강 부회장 측이 추천한 이사후보 5명 대부분이 80% 이상의 압도적인 반대로 선임이 부결됐고, 주주총회는 50분 만에 싱겁게 끝났다.이미 지난 3월 한 차례 대립을 겪은 양측은 당시 강신호 회장이 강 부회장의 의사를 받아들이면서 화해 무드가 조성됐다. 그 결과 강 부회장과 유충식 전 동아제약 부회장이 동아제약 이사로 선임됐다. 강 부회장이 추천한 이사 10명이 다 이사가 된 것은 아니지만 강 부회장이 동아제약 경영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일종의 ‘판정승’을 거둔 셈이었다.그러나 강 부회장이 경영에 참여하게 되면서 대립의 싹은 더 커졌다. 살림에 한 번 관여하게 되면 계속 거기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을까. 이번 대립 양상도 7월 2일 결의한 교환사채(EB: Exchangeable Bonds) 발행에 강 부회장이 반대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동아제약은 지난 4월 국세청으로부터 350억 원의 과징금을 받아 현금 유동성 확보가 필요한 상황에서 자사주 74만8440주(지분 7.58%)를 매각하고 이를 근거로 해외 교환사채를 발행하기로 했다. 총금액은 주당 9만8500원, 7980만 달러에 이르렀다.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교환사채는 의결권이 있다. 강 부회장이 반대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강신호 회장 측이 지분을 넓히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이라는 얘기다. 수석무역 측은 당시 “교환사채를 직접 발행해도 되고, 다른 자금조달 방법도 많은데 하필 조세회피 지역에 페이퍼컴퍼니(물리적 실체 없이 서류형태로만 존재하는 회사)를 세워 교환사채를 발행하는 것은 경영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판단했다. 해외 교환사채 발행사인 디피에이 리미티드(DPA Limited), 디피비 리미티드(DPB Limited)가 동아제약 측의 페이퍼컴퍼니라는 얘기다.이에 대해 김원배 동아제약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강 이사가 문제를 삼은 교환사채 발행은 현대자동차 등 다른 회사들도 진행한 적이 있는 일반화된 방식이다”며 “과거 A사의 경우 교환사채 발행 시 특수목적법인을 이용하지 않아 소송위기에 몰리기도 했다”고 반박했었다.강 부회장 측은 이에 대해 “A사는 자체신용도로 교환사채를 발행할 수 없었던 특수한 상황이었을 뿐”이라며 대응했다. 결국 강 부회장은 3일 뒤인 7월 5일 교환사채 발행에 대한 의결권 행사금지 가처분신청을 서울북부지방법원에 냈다. 이어 7월 16일에는 임시주주총회 개최를 요구했다.이 의결권 행사금지 가처분신청이 이번 갈등의 발단이 됐지만 마무리도 이 가처분신청으로 이루어졌다. 임시주총 6일 전인 10월 25일 가처분신청이 법원에서 기각되면서 전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이를 승부수로 삼으려던 강 부회장 측의 작전이 무산된 것이다.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분 7.85%를 보유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10월 22일 돌연 중립에서 동아제약 현 경영진 지지 쪽으로 입장을 바꾸면서 대세가 결정됐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측은 이에 대해 “현 경영진의 실적이 좋고 별다른 문제가 없기 때문에 지지한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이번 임시주총에서의 표 대결은 무산되었지만 문제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강 부회장이 동아제약 이사로서 이사회에 계속 참여할 테고, 이 때문에 동아제약 측이 이사 해임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도 뇌관으로 남아 있다.동아제약 측은 강 부회장이 동아제약 재직 시절 회삿돈을 횡령했고, 지위를 이용해 수석무역 주식을 시가보다 싸게 매입했다는 것 등을 이유로 10월 8일 횡령·배임 혐의로 형사고소 한 바 있다. 동아제약 측은 강 부회장을 고소한 것에 대해 아직 아무런 언급이 없는 상태다. 여차하면 이를 빌미로 이사회에서 밀어낼 가능성이 남아 있는 것이다.또 강 부회장이 재직시절 회삿돈 20억 원을 대출받으면서 채권자에게 납품권과 이사선임을 약속한 것이 드러나면서 이사 해임을 추진하기도 했다. 주총 후 동아제약 측은 “이와 관련된 사항은 향후 이사회에서 결정할 일”이라고 얘기했다.노동조합과 직원들이 ‘동아제약 발전위원회(동발위)’ 명의로 강 부회장을 고소한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동아제약 측은 “이 역시 ‘동발위’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대답했다. 동발위는 강 부회장이 자신들에 대해 ‘회사 측에 의해 동원된 직원들’이라고 얘기한 것에 반발해 10월 16일 용산경찰서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강 부회장은 임시주총 직전 백의종군의 뜻을 밝혔지만 자신들이 제기한 임시주주총회 개최 요구를 취소하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강 부회장 측은 “일정을 취소하고 이를 주주들에게 알리기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는 이유를 들었다. 강 부회장은 10월 26일 언론에 배포한 사과문에서 사외이사 후보 이준행 교수(서울여대 경제학과)에 대해 추천을 철회하겠다고 했으나 주총 당일까지도 이를 철회하지 않았다. 유독 이 교수에 대해서만 추천을 철회하지 않겠다고 한 데는 “경영권 대립과 상관없이 어느 편에서 보더라도 이사로서 적합한 인물”이라는 이유에서다. 이 교수는 10월 31일의 임시주총에서 22.47%의 찬성표를 받았는데, 다른 후보 3인이 10.88~11.57%에 그친 것에 비하면 거의 두 배 가량 표를 얻은 셈이다.이번 가처분신청과 임시주총은 강 부회장의 완패로 끝났지만 경영에 계속 참여하는 이상 사사건건 대립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자사주 매각처럼 강 회장 측이 우호지분을 늘리려는 시도와 강 부회장의 해임 추진 등 경영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변수다. 내년 3월 정기주총에서 임기가 만료된 이사 선임 때 다시 부딪칠 가능성도 남아 있다.4남 강정석 본부장 ‘선임’ 받아강신호 회장의 가족사는 동아제약 경영권 분쟁을 이해하는 배경이 된다. 강신호(81) 회장은 동아제약 창업주인 강중희 전 회장(작고)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자연스럽게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강신호 회장은 4남 4녀를 두었는데, 첫째·둘째 아들은 지난해 이혼한 부인 사이에서, 셋째·넷째 아들은 현재 함께 살고 있는 부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차남인 강문석(47) 동아제약 이사가 1997년 동아제약 대표이사를 맡으며 강 회장의 후계자로 지목되었으나 2004년 돌연 경영에서 손을 떼라는 강 회장의 지시를 받고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이후 4남인 강정석(44) 씨가 동아제약 영업본부장 겸 동아오츠카 대표를 맡으며 후계자로 인정받고 있다. 3남인 강우석(45) 전 라미화장품 대표는 동아제약 계열사였던 라미화장품이 경영부진으로 매각되면서 경영에서 손을 뗀 상태다.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