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고령화로 고객 해마다 줄어… 눈높이 높이고 해외판로 개척에도 박차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딱 1시간 북쪽으로 올라가면 군마현 다카사키시에 도착한다. 현재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의 출신지이자 지역구다. 다카사키역 앞 대로변에 아담한 2층 건물, 밖에서 보면 선물 가게 같아 보이는 이곳이 최근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는 캐릭터 관련 벤처기업인 혼야라도다.혼야라도는 최근 침체에 직면한 일본 캐릭터 산업의 등대 같은 회사다. 기존 캐릭터 비즈니스에서 탈피해 캐릭터를 이용한 아이디어 기획 상품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1989년 창업한 이 회사는 최근 2~3년간 급성장했다. 지난 2003 회계연도(2003년 10월~2004년 9월) 5억4073만 엔(약 43억 원)이었던 매출은 2004년 8억6765억 엔, 2005년 16억4914억 엔 등으로 매년 거의 두배씩 불었다. 가파른 성장의 배경엔 이 회사의 독특한 전략이 숨어 있다.처음부터 아이들이 아니라 시장이 커지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의 어른을 공략 대상으로 삼았고,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획 상품을 쏟아냈다.이 회사는 최근 한국 중국 등 해외 시장으로도 눈을 돌려 제2의 도약을 위한 글로벌화를 준비 중이다.저출산 인구 감소로 시장이 축소되고 있는 일본 캐릭터 산업이 재기를 위해 꿈틀거리고 있다. 성인 시장 글로벌화 등을 돌파구로 ‘캐릭터 왕국 일본’의 부활을 꿈꾸는 기업들이 하나 둘 늘고 있는 것이다.현재 일본의 캐릭터 시장은 내리막을 걷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캐릭터 산업 추이를 가늠할 수 있는 만화와 완구 시장 규모만 봐도 알 수 있다.지난해 일본내 만화 판매 실적은 전년에 비해 4% 감소한 4810억 엔(약 3조8000억 원)을 기록했다. 5년 연속 하락세다. 1995년 13억4000만 권이 팔려 정점에 올랐던 만화 잡지 판매는 작년 7억4500만 권으로 절반 가까이 추락했다. 완구 시장은 지난해 6400억 엔으로 전년보다 6.3% 줄었다. 지난 2004년 이후 3년 연속 감소 추세다.만화와 완구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데는 몇가지 요인이 있다. 근본 원인은 저출산 고령화다. 어린이 인구가 줄고, 노인 인구가 늘면서 캐릭터 완구 등의 소비층이 급격히 얇아지고 있다. 일본의 14세 이하 인구 비율은 1950년 35.4%에서 지난해 13.6%로 급락했다.그나마 줄고 있는 어린이도 이젠 완구나 캐릭터보다는 휴대전화와 비디오게임 등에 빠져 있다. 실제 가정용 게임기 시장은 지난해 6799억 엔으로 전년 대비 37% 팽창했다.만화 캐릭터 전문가인 수전 네이피어 미국 터프츠대 교수는 “일본 청소년들이 첨단 휴대전화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며 “지하철에서 만화 책장을 넘기던 학생들이 이젠 휴대전화를 코앞에 갖다 대고 엄지손가락으로 e메일과 웹사이트를 검색하거나 영화를 감상하고 있다”고 말했다.이 같은 악조건을 타개하기 위해 일본 캐릭터 관련 업체들이 구사하고 있는 전략은 세 가지다. 우선 성인 시장을 겨냥하는 것. 인구구조의 고령화에 걸맞게 타깃 시장의 연령대를 높인다는 얘기다. 20~30대의 젊은 직장 여성들을 상대로 한 캐릭터 관련 상품 개발을 늘리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어릴 적 만화 캐릭터 등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면서 구매력 있는 직장 여성들을 공략한다는 전략이다.둘째, 캐릭터 적용 상품을 확장하는 것이다. 종전의 캐릭터는 완구나 문구 등에만 적용해 왔다. 그러나 타깃 시장을 성인으로 올리면서 가정용품 침구류 패션 상품으로까지 캐릭터 이용 상품의 영역을 늘려 나가고 있다. 지난 6월 도쿄 빅사이트에서 열린 ‘도쿄 완구쇼 2007’에선 성인들을 겨냥한 고가 상품 등이 눈길을 끌었다. 이들 상품은 폭발적인 히트를 하긴 어렵지만 단가가 높다는 점에서 고부가가치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마지막으로 글로벌화다. 축소되고 있는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 시장으로 적극 진출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 유럽 아시아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거나 현지 캐릭터 완구 업체 등과 제휴, 판로를 개척하는 일본 기업들이 늘고 있다.일본은 원래 캐릭터를 포함한 문화 콘텐츠 강국이다. 일본디지털콘텐츠협회에 따르면 일본의 문화 콘텐츠 산업 규모는 2005년 기준 1040억 달러로 세계 시장 점유율 7.8%를 차지했었다. 미국(5535억 달러, 41.7%)에 이어 2위였다. 한국(296억 달러, 2.2%)에 비하면 4배 가까이 컸다.캐릭터만 봐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 어린이들이 열광하는 포케몬 도라에몽 세일러문 등은 모두 일본 캐릭터들이다. 특히 일본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캐릭터인 ‘헬로 키티’는 세계적으로도 5위 안에 드는 캐릭터다. 일본의 산리오사가 키티로 벌어들인 수입은 연간 5억 달러. 라이선스를 얻은 40여 개국 기업의 매출까지 합치면 매년 수십억 달러를 번다. 관련 상품이 2만여 종이고, 관련 테마파크가 일본에만 두 개가 있다.저출산 고령화라는 난관을 맞아 새로운 전략을 펼치고 있는 일본의 캐릭터·완구 기업들이 ‘캐릭터 왕국’의 재건에 성공할지 주목된다.“단카이 주니어 세대에게 꼭 소중한 물건을 만들고 싶다.”일본에서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캐릭터 관련 벤처기업인 혼야라도의 후지나가 다츠미 사장은 ‘회사의 콘셉트’를 이렇게 정의했다. 그는 “혼야라도는 캐릭터를 개발해 만화로 히트시키고, 그 캐릭터 라이선스를 팔아 돈을 버는 전통적인 캐릭터 회사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환경에 살아남을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캐릭터 회사가 혼야라도의 지향점이란 얘기다. 다음은 일문일답.혼라야도는 최근 2~3년 사이 급성장했는데, 비결은.“크게 3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특색 있는 제품을 기획해내는 상품 개발력이다. 둘째는 가격 전략이다. 생산 비용 등을 최대한 줄여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한 게 주효했다. 마지막으로 노동집약적인 면에 의존하지 않은 게 성공 요인이라고 생각한다.”혼라야도는 어떤 캐릭터 업체라고 정의할 수 있나.“전통적인 캐릭터 업체와는 다르다. 물론 캐릭터를 이용해 제품을 만들긴 하지만 캐릭터를 갖고 라이선스 사업 등을 하는 건 아니다. 기존의 캐릭터 업체와는 지향점이 다르다.”그러면 무슨 회사라고 해야 하나.“딱히 업종을 분류하기가 어렵다. 우린 슬리퍼도 만들고, 입욕제도 만든다. 완구를 만들 때도 있다. 그렇다고 우리 회사가 완구 업체나 슬리퍼 회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굳이 정의하자면 마음과 몸의 건강을 위한 새 상품을 만드는 회사라고나 할까.”‘소중한 물건’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예컨대 우린 슬리퍼를 만들어도 아이디어를 짜내 건강에 좋은 새로운 개념의 슬리퍼를 만든다. 슬리퍼를 판다기보다는 슬리퍼를 통해 건강을 판다는 게 더 맞는 말이다.”캐릭터 관련 업체가 고객 타깃을 성인에 맞추고 있는 것도 특이한데.“일본의 인구구조를 보면 태평양 전쟁 직후인 1946년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團塊)와 그들의 2세인 단카이 주니어의 시장이 크다. 그래서 처음부터 시장 규모가 큰 단카이 주니어 시장을 겨냥했다. 단카이 주니어는 현재 연령으로 30세 전후의 젊은 층이다.”단카이 주니어 세대의 특징은.“물건에 대한 집착이 별로 없다. 단카이 세대인 부모들이 자식에게 물건을 사주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구매력이 단카이 세대보다 훨씬 크다.”현재 신상품 개발 인력은.“전체 20명 직원 중 4명이 상품 개발에 전념하고 있다.”한국 시장에도 이미 진출한 것으로 아는데, 해외 시장 진출 전략은.“나마케다로라는 캐릭터로 3년 전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비교적 높은 매출 신장률을 보이고 있다. 홍콩 대만 중국 등에도 진출했다. 아직 해외 진출은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성패를 얘기하긴 어렵다. 더욱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할 것이다. ”차병석·한국경제 도쿄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