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은 참 변화무쌍하다. 어제의 논바닥이 신도시로 바뀌는가 하면, 수십 년 찬밥 신세가 어느 날 갑자기 보물단지로 거듭나곤 한다. 요즘 서울의 다세대·연립주택이 그렇다. 흔히 ‘빌라’라고 불리며 투자 가치 낮은 부동산으로 홀대받던 게 엊그제인데, 어느새 팔자가 확 바뀌었다. 찾는 사람이 많아도 매물이 없으니 말 그대로 ‘몸값 수직 상승’이다. 선입견을 벗고 눈을 크게 뜬 다음 ‘빌라’를 다시 볼 때다.가을 부동산 시장은 대선이라는 빅 이벤트를 목전에 두고 전형적인 ‘정중동(靜中動)’ 상태다. 부동산 정책 방향의 대전환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 때문인지 거래 시장은 전반적으로 한산한 편이다.부동산114가 10월 셋째 주 주택 시장을 조사했더니 서울 아파트 값은 마이너스 0.02%의 하락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분양가 상한제 시행으로 매수 관망세가 심화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기존 아파트뿐만 아니라 신규 입주 아파트, 분양 시장으로까지 관망세가 퍼지면서 거래 침체가 더욱 극심해진 것으로 분석된다. 설상가상으로, 처음 선보인 반값 아파트가 실패로 돌아가 시장을 더욱 위축시키고 말았다. 그야말로 아파트 시장엔 ‘정적’이 감돌고 있는 셈이다.반면 재개발 시장 안팎과 경매시장에선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뉴타운 등 굵직한 호재가 있는 재개발 관련 부동산과 소액 투자자가 많이 찾는 경매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하다. 겉으로 보기엔 부동산 시장 전체가 잠잠하게 가라앉은 듯 보이지만, 두 분야만큼은 뚜껑 아래서 부글부글 끓는 형국이다.재개발과 경매가 주목받는 것은 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기존 아파트 대신 1억 원 안팎의 비교적 소액인 여유 자금으로 부동산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저평가 매물, 미래 가치 높은 매물을 비교적 낮은 가격에 골라잡을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요즘 움직이는 건 재개발 관련 부동산과 경매 뿐’이라는 말이 돌 정도다.특이한 점은 이 모든 열기의 중심에 다세대·연립주택이 있다는 사실이다. ‘빌라’로 통칭되는 다세대·연립주택은 재개발 시장과 경매시장에서 최고 인기 종목으로 급부상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환금성이 떨어진다며 가장 투자 가치 낮은 부동산으로 싸잡아 분류되곤 했지만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과거 빌라를 애물단지 취급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후회막급일 만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우선 재개발 관련 시장으로 가보자. 서울 강북 재개발 시장에서 다세대·연립주택은 주인공이나 다름없다. 특히 규모가 작을수록 인기가 높다. 적은 투자금으로 사두었다가 향후 새 아파트 입주권을 확보하려는 수요가 몰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최근 1~2년 사이 가격이 크게 뛰었다.한강변 재개발 구역인 성동구 옥수동 일대 다세대주택의 경우 3.3㎡당 가격이 4000만 원을 호가하고 있다. 옥수동 미래공인 대표는 “안전하게 재개발 지분 투자를 하려는 이들이 다세대·연립주택을 선호한다”면서 “10평 안팎의 소형 매물이 최고 강세”라고 밝혔다.서대문구 홍은동 일대 재개발 예정지도 올 들어 가격이 훌쩍 뛰어 올랐다. 1년 전만 해도 3.3㎡당 1000만 원선이던 다세대주택 매물이 최근엔 1400만~1500만 원선으로 상승했다. 홍은동 대화공인 대표는 “재개발 사업이 진척되면서 수요가 늘어나고 있지만 매물이 부족하다”면서 “조합원 자격을 확보하는 데 문제가 없는 다세대 주택이나 연립주택이 특히 인기”라고 말했다.이 같은 현상은 서울 전역의 재개발 예정지는 물론 뉴타운, 재정비촉진지구, 균형발전촉진지구 등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들 지역의 투자 1순위는 예외 없이 10평 안팎의 다세대·연립주택이다. 전세나 월세를 안고 매입할 경우 투자금 절감 효과도 있어 선호도가 높다.이뿐만 아니라 재개발 구역 주변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후광 효과를 기대하는 수요가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재개발 구역 내부 투자와 다른 것은 ‘시세 차익’을 중시한다는 점이다.요즘 서울 은평구 신사동, 응암동 일대의 부동산중개업소는 때 아닌 문전성시를 맞고 있다. 다세대·연립주택의 매입을 원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매물난 조짐마저 엿보일 정도다. 신사동 M부동산중개 관계자는 “계약 직전에 집주인이 매물을 거둬들이는 일도 있다”고 전했다.은평구에선 내년 가재울뉴타운과 응암동 일대 재개발 구역의 이주가 겹치면서 줄잡아 1만 가구의 대이동이 예정돼 있다. 투자자들은 이들을 겨냥, 미리 다세대·연립주택 매물을 확보하기 위해 부산하게 움직이는 중이다. 보통 재개발에 따른 이주자들은 기존 거주지에서 가깝고 교통망이 잘 갖춰진 곳을 선호하기 때문에 은평구 신사동, 증산동, 응암동, 대조동 등지가 ‘가치 상승주’ 물망에 올라 있다. 신영균 부동산프라자 대표는 “1억 원 이상의 이주비를 받고 이동하는 수요들이 주변 다세대·연립주택 가격을 밀어 올릴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 때문에 9월 이후 다세대·연립주택 매물이 자취를 감추고 가격도 뚜렷한 상승세인 것”이라고 설명했다.경매시장에선 보다 뚜렷한 움직임을 엿볼 수 있다. 올해 경매시장의 키워드는 ‘빌라’라고 할 정도다. 이영진 디지털태인 이사는 “불과 2년 전만 해도 넘쳐날 정도로 물량이 쏟아져 나와도 투자자들이 외면하기 일쑤였지만 올해 들어선 상황이 역전됐다”고 밝혔다.실제로 올해 경매시장 통계는 다세대주택과 연립주택이 휩쓸고 있다.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다세대·연립주택의 경매 물건이 크게 줄어들고, 입찰 경쟁률이 치열하며, 낙찰가율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 먼저 경매 물건 수의 경우 2005년 11만3000여 건에서 지난해 7만5000건으로 현저하게 줄더니 올해는 그 반도 되지 않는 3만2000여 건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만큼 자산 건전성이 양호하게 바뀌면서 경매에 부쳐지는 빈도가 줄었고 경매시장에서 물건 소진 속도도 무척 빨라졌다는 의미다.다세대·연립주택의 인기는 입찰 경쟁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서울 경기 인천지역의 9월 다세대·연립주택의 경매 입찰 경쟁률은 8.1 대 1로 종목별 최고를 기록했다. 아파트(6.79 대 1)는 물론 토지(2.56 대 1), 업무시설(4.72 대 1)을 2~4배 멀찌감치 따돌렸다.낙찰률과 낙찰가율도 고공 행진 중이다. 서울 수도권 9월 평균 낙찰률은 36.75%에 그쳤지만 다세대·연립주택은 오히려 8월보다 2.33%가 올라 61.02%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낙찰가율도 올라 올해 전국 아파트 평균 낙찰가율은 85.01%로 전년 대비 1.31% 상승한 반면, 다세대·연립주택은 97.44%로 전년 대비 16.96% 상승했다. 서울 경기지역은 이보다 훨씬 높아서 9월의 경우 108.01%를 기록했다. 이는 경매 사상 최고의 평균 낙찰가율이다.실제로 최근 경매에 부쳐진 서울 마포구 망원동 대지 16.5㎡, 건물 38.7㎡ 규모의 다세대주택은 42명이 입찰에 나선 끝에 감정가 7500만 원보다 3000만 원이 많은 1억660만 원(낙찰가율 142.1%)에 낙찰됐다. 또 강북구 미아동 43.65㎡의 연립주택은 16명이 응찰해 최초 감정가 7000만 원보다 4000여만 원이 넘는 1억1579만 원(낙찰가율 165%)에 낙찰됐다.다세대·연립주택이 인기를 끄는 것은 부동산 시장 환경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우선 아파트 값 상승과 대출 규제 영향이 크다. 정현조 부동산J테크 팀장은 “서울 지역 웬만한 아파트 가격이 3.3㎡당 2000만 원에 육박하는 반면 재개발 예정지나 예정지 주변 다세대·연립주택은 1000만 원대에서 매입이 가능한 곳이 많다”면서 “뉴타운(재정비촉진지구)으로 지정되기 전, 가격이 저평가됐을 때 소액으로 선점하려는 수요가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다른 부동산 종목에 비해 ‘싸다’는 점이 가장 큰 인기 요인이라는 것이다.비교적 대출 규제에서 자유로워 매입 조건이 좋다는 점도 수요 증가에 한몫하고 있다. 이영진 이사는 “다세대·연립주택은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에서 벗어나 있어서 대출 받기가 비교적 쉽다”면서 “투기 지역에 적용되는 동일 차주 중복 대출 규제에서도 제외된다”고 밝혔다.최근엔 금융권에서 다세대·연립주택의 담보 비율을 올려 잡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과거엔 감정가의 50%를 밑돌았지만 최근엔 제1금융권에서도 60%선으로 올려 잡는 추세다.특히 경매로 뉴타운 등 광역 재개발 지역의 다세대·연립주택을 매입할 경우엔 장점이 많다. 현재 뉴타운, 재정비지구 내 19.8㎡(옛 6평) 이상을 거래할 때는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경매로 낙찰 받으면 면제 받을 수 있다.몇 년 사이 다세대·연립주택의 공급 물량이 크게 줄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서울지역 다세대·다가구주택 건설 실적은 2002년 10만여 가구에 달했지만, 주차장 설치 기준 강화와 용적률 하향 조정에 따라 2004년부터는 연간 1만 가구 선으로 급감한 상태다. 이에 따라 싱글족, 신혼부부 등 늘어나는 수요에 공급이 따르지 못해 ‘몸 값’이 저절로 오르는 상황이다.다세대·연립주택의 인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가격 면으로나 미래 가치 면에서 이를 능가하는 종목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영진 이사는 “대선 이후 아파트에 대한 규제가 완화돼 아파트 시장이 되살아나면 왕좌가 바뀌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다세대·연립주택이 경매시장 톱을 차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영균 부동산프라자 대표도 “재정비촉진지구 추가 예정지 등을 겨냥한 다세대·연립주택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면서 “호재가 뚜렷한 개발지 안팎에선 당분간 가격이 강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돋보기 다세대·연립주택 고르는 법호재 따라 움직여야 ‘애물단지’ 피한다다세대주택과 헷갈리기 쉬운 것이 다가구주택이다. 다세대주택과 다가구주택은 겉모습이 유사하지만 등기부등본은 확연히 다르다. 다가구는 집 한 채로 보고 소유주가 1명이지만, 다세대는 각각의 가구마다 소유주가 따로 있다. 재개발 구역에서 성행하다 금지된 ‘지분 쪼개기’는 다가구주택을 다세대로 분리, 소유주를 늘리고 아파트 입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흔히 ‘빌라’로 불리는 다세대·연립주택은 해당 지역의 재개발 계획 등 뚜렷한 호재가 없으면 가격이 아무리 싸다 하더라도 매입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최근엔 강북 뉴타운 등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가 동시에 진행돼 가치가 급상승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애물단지가 되기 십상이다. 특히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 상당수 도시에는 여전히 다세대·연립주택이 과잉 공급 상태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 경우 아파트보다 환금성이 떨어지고 가격 상승이 더디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대출이 집행된 집을 살 때는 명의변경에 유의해야 한다. 매수자가 인수한 대출금을 모두 갚는다 하더라도 포괄 근저당권이 설정된 경우에는 매도자가 다른 채무를 갚기 전까지 근저당이 말소되지 않는다. 만일 매도자가 다른 채무를 연체한다면 집이 경매로 넘어갈 수도 있다. 따라서 주택 거래와 함께 해당 금융사를 방문, 금융사 동의 아래 명의 변경을 해 두는 게 안전하다.취재 = 박수진 기자 sjpark@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