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IGM) 협상스쿨 원장
전성철(58) 세계경영연구원(IGM) 협상스쿨 원장만큼 다채로운 이력을 지닌 인물도 드물다. 1980년대 미국 뉴욕의 손꼽히는 대형 로펌에서 유일한 동양인 파트너로 큰 성공을 거뒀다. 1991년 귀국해서는 국제변호사로 맹활약하다 김영삼 정부 때 청와대 정책비서관을 맡기도 했다. 그 후 TV 프로그램 진행자로, 정치인으로, 경영대학원장으로, 부총장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그런 그가 오랫동안 품어온 꿈은 다름아닌 ‘협상스쿨’이다. 20여 년 전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할 때 수천만 달러가 왔다 갔다 하는 국제 협상에서 아마추어적인 대응으로 번번이 깨지는 한국 기업들을 보며 갖게 된 생각이다. 지난 2005년 1월 IGM 협상스쿨을 설립해 그 꿈을 이룬 전 원장은 “협상만큼 돈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기술은 없다”며 “기업 최고경영자(CEO)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협상 교육을 받아야 진정한 협상 강국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이론과 실전을 결합했다는 게 IGM 협상스쿨의 가장 큰 강점이지요. 그동안 다양한 형태의 협상 관련 교육 프로그램이 여럿 생겼지만 이론과 실전을 겸비한 곳은 아직 드물어요. 대학 교수가 주축이 된 곳은 실전에 약하고, 변호사들이 하는 곳은 이론이 부족해요. 저는 국제변호사로 풍부한 협상 경험을 갖고 있어요. 이론 쪽은 협상이론가인 미국 샌디에이고 주립대 정동일 교수의 도움을 받았지요. 게다가 세계 톱 협상스쿨을 벤치마킹해 한국인에 맞는 실전적인 지침들을 만들어 냈어요.지난 7월 중국 베이징에서 LG전자 현지 임원들을 모아놓고 협상 교육을 했어요. LG그룹은 이미 10년 전부터 그룹 연수원인 인화원에 협상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곳이에요. 그런 상황에서 LG전자가 인화원이 아니라 IGM에 임원 협상 교육을 맡겼다는 건 상당히 파격적인 일이지요. 처음 LG전자는 임원 20명만 보내 교육을 받게 했어요. 시험 삼아 해본 거죠. 그런데 평가가 좋으니까 전체 임원으로 교육 대상을 확대했고, 중국 현지 교육으로까지 이어진 거죠.모의 협상 장면을 비디오로 촬영해 함께 보면서 장단점을 지적해 줍니다. IGM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방법이죠. 전 세계 협상스쿨에 가보면 모의 협상을 하고 나서 서로 느낌을 이야기해요. 하지만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협상의 원칙들이 몸에 체화되기 어려워요. 이론적으로 ‘이렇게 하라’는 걸 듣는 것과 실제 자기 모습을 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죠.가장 유명한 하버드 협상스쿨에 견줘도 경쟁력에서 뒤지지 않는다고 봐요. 실제 대기업 임원들 중에 하버드 협상스쿨을 갔다 온 분들도 IGM이 훨씬 낫다고 합니다. 그쪽은 강당에 300명씩 앉혀 놓고 강의를 합니다.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되는 거죠. 또 미국식 협상스쿨은 잡다하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는데, 그것을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죠. 협상은 통찰의 문제입니다. 단순히 테크닉의 문제가 아닌 거죠. 이건 굉장히 중요한 사고의 전환이에요. 이걸 깨닫는 순간 협상력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요. 다른 협상스쿨은 모두 협상의 테크닉을 가르치지만 IGM은 통찰을 얻도록 해줍니다.서점에 가면 협상에 관한 책이 80권쯤 됩니다. 그런데도 협상에 대해 아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협상의 테크닉만 알려주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으면 기법이나 테크닉이 끼어들 틈이 없어요. 이를테면 연애는 나의 온 인격을 갖고 하는 겁니다. 거기서 기법이나 테크닉을 생각하면 오히려 일을 망치고 말죠. 협상도 서로가 신뢰에 도달하는 과정이에요. 그런 점에서는 연애하고 같아요. 기법이나 테크닉이 실제로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이지요.테크닉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대한 통찰을 정리해 놓은 겁니다. 그것들을 단순화한 것이죠. 그래서 협상에 대해 10계명만 기억하고 다른 건 전부 잊으라고 말해요. 10계명만 반복해 체화하면 되는 거죠. 협상하는 모습을 보면 아마추어인지 프로인지 금방 알 수 있어요. 아마추어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만 이야기해요. 하지만 프로는 상대에 도움이 되는 걸 이야기합니다. ‘당신이 내 요구를 들어주면 당신에게 이런 도움이 된다’는 식이죠.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어요. 이런 게 바로 인간의 마음에 대한 통찰이지요. 바로 이런 통찰에서 진짜 협상력이 나옵니다.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은 2가지에요. 첫째는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리고 두 번째가 자신의 ‘포지션’을 이야기하기 전에 질문을 하는 겁니다. 상대가 10만 원을 원하는데 나는 8만 원 밖에 줄 수 없는 입장일 때, 그걸 무턱대고 밝혀버리면 10만 원과 8만 원이라는 숫자의 싸움밖에 안돼요. 결과가 뻔한 거죠. 그래서 협상의 제1조는 질문을 하라는 겁니다. 어떻게 10만 원이 나왔나 묻는 거죠. 그러면 원가와 적정 마진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런데 단골이나 추가 계약이 예상될 때는 대부분 할인을 해줘요. 이런 식으로 질문으로 시작해 협상의 실마리를 풀어나갈 수 있어요. 그런데 많은 CEO들이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타협이 어려운 것이죠.1980년대 중반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하면서 한국 기업들이 협상하는 모습을 지켜볼 기회가 많았어요. 너무나 실망스러웠지요. 도저히 외국 기업의 협상 상대가 되지 못했어요. 그때만 해도 달러가 무척 귀할 때인데, 말 한마디에 수십만 달러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협상스쿨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다 세종대 경영대학장과 부총장으로 일하면서 기업 대상 경영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됐고, 2002년 민간 경영 교육기관인 IGM을 설립해 직접 나서게 됐어요. 몇 년 동안 준비를 거쳐 2005년 협상스쿨도 문을 열었지요.협상 테이블에 나가보면 미국은 전부 어려서부터 협상을 배운 사람들이 나오지요. 하버드 협상스쿨에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고등학교 교사에서부터 소방대원, 유치원 보모, 세일즈맨까지 아주 다양해요.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까지 협상을 배울 정도면 국제 협상에 나오는 공무원들은 협상에 통달한 사람들이라고 봐야 해요. 협상을 배운 사람과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사람이 마주 앉으면 결과는 거의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요. 또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순환 보직제로 자리가 계속 바뀝니다. 협상 경험이나 전문성을 쌓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죠.우리 역사 속에서도 뛰어난 협상가들이 많이 있어요. 거란족을 담판으로 물리친 고려시대 서희 장군이 대표적 사례죠. 그는 자신의 제안이 상대에게 어떤 혜택을 주는지 꿰뚫고 있어요. 협상의 본질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거죠. 협상법을 동양적 접근법과 서양적 접근법으로 나누는 게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동양은 인간관계적 측면을 무척 중시하고, 서로 솔직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죠. 그게 가장 큰 차이에요. 하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면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죠. 쉽게 말해 동양은 ‘워밍업 피리어드’가 필요한 거죠.프로그램을 좀 더 전문화하려고 해요. ‘구매협상 과정’과 ‘판매협상 과정’을 연말에 시작할 계획이지요. 교육 시간도 지금은 16시간 과정 기본인데, 앞으로는 4시간, 8시간, 24시간 등으로 다양화할 필요가 있어요. 공무원 대상 협상 교육도 내년부터 실시할 예정이에요. 약력: 1949년 대구 출생. 73년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83년 미 미네소타대, 법학 박사. 뉴욕 로펌 리드&프리스트 파트너. 91년 김&장법률사무소 국제변호사. 95년 대통령비서실 정책 비서관. 98년 MBC ‘경제매거진’ 진행자. 2000년 세종대 경영대학원장. 2001년 세종대 부총장. 2003년 세계경영연구원(IGM) 이사장(현). 2005년 IGM 협상스쿨 원장(현).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