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서가 하는 일이 회사 장기 전략과 부합하지 않는 것 같다. 대대적인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누군가 우리 부서로 걸어 들어와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회사의 최고경영자(CEO)가 담당했다. 그러나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CEO 혼자서 모든 일을 감당하긴 어려워졌다. 회사 임원 가운데 한 명이 이런 일을 전담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등장한 직책이 바로 최고전략책임자(CSO)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크레이그 먼디 부회장, AIG의 브라이언 슈라이버 부사장, 소프트뱅크 모바일의 마쓰모토 테드 부사장, LG전자 박민석 부사장, NHN의 이해진 사장 등이 대표적인 CSO다.최근 들어 CSO라는 명함을 든 임원들이 늘어나는 첫 번째 이유는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업 구조 때문이다. 전반적인 사업 현황을 꿰뚫고 있는 CSO가 CEO 곁에 한 명쯤은 있어야 한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계화와 나날이 늘어가는 새로운 규제, 회사를 옥죄어 오는 혁신 요구 등도 CSO를 별도로 둬야 하는 이유다.CSO라는 직함에 ‘전략(Strategy)’이라는 말이 들어있긴 하지만 이들이 외진 사무실에서 홀로 장기 전략을 짜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기획 업무에서 잔뼈가 굵은 ‘스페셜리스트’ 또한 CSO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현장 경험이 풍부한 임원들이 이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 전략을 수립하는 것보다 이미 세워진 전략을 말단 부서까지 확산·전파시키고, 그 결과물을 다시 전략에 반영하는 임무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능력 있는 CSO는 어떤 자질을 가져야 할까.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최신호는 CSO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우선 CEO의 깊은 신뢰를 꼽았다. 이와 함께 그러한 신임을 회사 구성원들이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말발’이 먹힌다. CSO는 종종 회사 전반을 뜯어고치라는 명령을 받는다. 모든 일을 알아서 하라는 ‘백지 위임장’을 받기도 한다. 이 경우 CEO의 신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일에 추진력이 붙지 않는다. ‘두려움’에서든, ‘존경심’에서든 조직원들이 CSO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성과가 난다. CEO와의 개인적인 친분과 오랜 근무 경험 등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임무를 수월하게 진행하는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CSO의 두 번째 자질은 ‘멀티태스킹 능력’이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조사에 따르면 상당수 CSO가 10개 이상의 주요 업무에 간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 인수·합병(M&A)에서부터 경쟁 회사 분석, 시장 조사, 장기 전략 수립 등에 이르기까지 발을 담그지 않는 업무를 찾기가 오히려 어려울 정도다. 그래서 CSO는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각종 업무를 수시로 넘나들더라도 일의 속도에 변화가 없어야 한다.CSO는 또 ‘외골수’보다는 ‘팔방미인’이어야 한다. 한 부서에서 10년 이상 오랜 세월을 보낸 사람 가운데 CSO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마케팅, 기술 개발, 재정 등 여러 부서를 두루 거치며 거의 ‘만물박사’ 수준에 이른 사람이 CSO라는 감투를 써야 한다.회사 내 ‘스타플레이어’를 CSO에 임명하면 효과를 배가할 수 있다. 이미 실력을 검증받아 조직 내 반발이 적은 데다 앞으로 CEO에 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직원들의 충성도도 높아진다.CSO는 ‘생각’보다 ‘행동’에 능한 사람이어야 한다. 현장과 맞닿아 있는 실행 부서에 가장 신경을 쓰는 인물이 CSO에 적합하다. 컨설팅 업체 ‘하이드릭앤드스트러글스’의 크리슈난 라자고팔란은 “CEO는 전략을 세련되게 꾸미는 것보다 실천에 옮기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독재자 스타일은 곤란하다. 큰소리 없이 부하 직원들을 감화시키는 능력이 우선한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계급으로 밀어붙이는 CSO는 없느니만 못하다”며 “말단 사원에서부터 간부 직원까지 모든 직원과 원활하게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춰야만 CSO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장기나 단기 계획에 비해 관심을 덜 받는 ‘중기 계획’을 챙기는 꼼꼼함과 예상치 못한 리스크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유연함도 CSO가 겸비해야 할 덕목으로 꼽혔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