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상수원 보호 같은 공익(公益)을 앞세운 명분은 거부하기 힘들다. 토지 이용에 중첩적 제한을 받고 있는 경기 북부가 대표적이다. 개발과 발전에 제약을 받고 있어 주민들의 불만도 높다. 공익과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에 대한 적절한 균형점을 찾기 위해 어떻게 보상하면 좋을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그런데 정부는 2단계 국토균형발전정책안에서 원래 기준으로는 정체 지역으로 분류되던 팔당댐 지역의 양평과 가평을 경기도에 소재한다는 이유로 부산과 같은 ‘성장 지역’으로, 또 남양주시와 여주군을 서울의 강남구와 같은 ‘발전 지역’으로 분류했다.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돼 토지 이용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는 동두천, 연천, 포천 등 ‘성장 지역’으로 분류했다. 이는 균형 발전을 위한 정부의 재정 투자에서 이 지역들을 지속적으로 차별하겠다는 뜻이다.특정 지역의 낙후가 공익을 내세운 중첩적인 토지 이용의 규제와 관련이 있고 또 규제에 대해 일일이 보상하기 어렵다면, 당연히 세금을 재원으로 한 정부의 재정 투자에서 우선적으로 이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균형 발전 계획은 이 점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규제로 인해 보는 피해를 보상하고도 그 이익이 더 크지 않다면 공익은 경제적 합리성을 상실한다. 이런 경우 공익을 내세운 규제는 사실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특정 집단의 희생을 강요하는 ‘강제’로 그 성격이 둔갑하고 만다. 특히 토지 이용에 대한 규제는 보상을 하지 않으므로 그 강제성이 오히려 토지 수용에 비해 더 두드러지게 된다.보상하지 않는 ‘강제’는 강제를 당하는 측으로부터 강한 불만을 낳는다. 아직 표면화되지 않은 것은 이를 분출할 통로를 찾지 못하고 있어서일 뿐이다. 그래서 규제에 대한 적절한 보상은 규제에 필연적으로 부수되는 갈등을 줄인다. 이런 희생의 강요는 도덕적으로도 옳지 않다.그래서 균형 발전 정책은 경기 북부 지역처럼 그 지역의 낙후가 공익을 명분으로 한 재산권의 제약이 한 원인이 되었던 지역에 우선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단계 국토균형발전안은 이와는 정반대되는 방향이다. 이 정책이 대한민국 정부가 똑같이 세금을 내는 우리나라의 국민을 사는 지역에 따라 차별함으로써 만인의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정의의 원칙을 위배하고 있기 때문이다.정의의 여신이 장님인 것은 바로 그 정의의 여신 앞에 판결을 받기 위해 나선 사람이 누구인지, 권력자인지 아닌지, 혹은 부자인지 아닌지, 아예 알 필요가 없어야 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정의의 원칙은 세금으로 충당될 정부의 균형 발전을 위한 지원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돼야 한다. 지역의 균형 발전을 위한 지원이 최소한의 정의의 원칙에 부합하려면, 정의의 여신 앞에 선 사람이 경기도 사람인지 아니면 강원도 사람인지가 재정 지원의 규모를 정하는 데 전혀 참고가 되지 말아야 한다.우리가 합법적으로 세금을 거두고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부를 만든 것은 무엇보다 정부로 하여금 우리의 재산권을 외국이나 타인의 침해로부터 보호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재산권에 중첩된 규제를 하고, 이에 대해 보상을 해줄 방안을 강구하지는 못할망정 그것도 모자라 균형 발전을 추구한다면서 낙후 지역들에 대한 재정 지원을 차별하려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 아닐까.지난 30년간 군사분계선 인근의 군사보호지역 주민은 국방을 위해, 그리고 팔당지역 7개 시·군 180만 주민은 삶의 터전을 양보하며 2300만 수도권 주민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희생해 왔다. 그들이 ‘이런 차별이 어디 있느냐’며 분개할 때 정부는 무엇이라고 답하려는지 알 수 없다. 2단계 국가균형발전안은 정의의 여신을 진노케 할 만한 안이다. 전면적으로 폐기하고 정의의 법에 맞도록 다시 수정돼야 한다.특히 그렇지 않아도 규제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주민들을 분노케 하고 갈등을 만들어 내고 있다. 갈등 속의 사회에서는 경제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규제로 인해 피해를 본 지역을 배제할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김이석경기개발연구원 초빙연구위원kimyisok@gri.re.k약력: 1960년생. 83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98년 뉴욕대(뉴욕시) 경제학 박사. 2007년 경기개발연구원 초빙연구위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