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프라임 파문도 옛일…불확실성 굳힌 것이 오히려 호재

미국 경기가 침체(recession)에 빠질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주택 경기가 침체의 늪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한 것은 경기 우려에 아랑곳하지 않고 주가는 상승 나래를 펴고 있다는 점이다. 다우지수와 S&P500지수는 나란히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글로벌 증시의 동반 강세를 주도하고 있다.교과서대로라면 경기가 나빠지는 조짐이면 주가도 하강 곡선을 그려야 맞다. 아무리 주가는 미래를 반영한다고 하지만 경제성장률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침체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면 눈치라도 보는 게 순서다. 그런데도 주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경기 침체는 없다고 확신하는 분위기가 곳곳에 배어 나온다. 오히려 지긋지긋했던 서브프라임 파문이 끝나고 있다는 안도감마저 피어오른다.그렇다면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데도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글로벌 증시의 동반 강세를 선도하고 있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지난 8월 초 서브프라임 파문이 덮쳤을 때 뉴욕 증시를 비롯한 글로벌 증시는 잔뜩 움츠러들었다. 도대체 피해액을 가늠할 수 없었던 탓이다. 1998년의 롱텀캐피털 사태나 2001년의 엔론 사태 때에는 그래도 피해자가 명확했다. 피해액도 가늠할 수 있었다. 비록 엄청난 파문에 파르르 떨었으나 핵심 문제만 해결되면 안정감을 되찾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그러나 서브프라임 파문은 달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은 차치하고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다른 채권에 섞이면서 도대체 믿을 채권이 하나도 없다는 불안감이 확산됐다. 피해자도 무슨 양파 껍질 벗기듯이 늘어났다. 미국에 국한된 것도 아니었다. 유럽에서, 호주에서, 아시아에서 피해자가 속출했다. 그것도 한꺼번에 나오는 게 아니라 두더지처럼 여기저기서 나타났다.서브프라임 파문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주체는 다름 아닌 미 투자은행들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직접 취급한 은행도 상당수다. 대부분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투자은행들의 손을 거쳐 자산담보부증권(MBS)으로 다시 태어났다. 상당액은 투자은행들이 직접, 또는 출자해 만든 헤지 펀드가 인수했다. 이들은 입을 모아 “피해가 얼마 안 된다”고 외쳤지만 시장은 믿지 못했다. 투자은행들이 서브프라임 관련 채권의 평가를 제멋대로 해 부실을 감추고 있다는 의혹도 싹텄다.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실제 투자은행들의 피해는 상당했다. 씨티그룹은 지난 1일 3분기 순이익이 서브프라임 파문으로 전년 동기보다 60%가량 감소할 전망이라고 발표했다. UBS도 3분기 중 6억9000만 달러의 손실을 볼 전망이라고 밝혔다. 피해액이 현실화되면서 해당 회사는 부산을 떨었다. 찰스 프린스 씨티그룹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당장 경질설에 시달렸다. 메릴린치의 채권운용담당 대표는 즉각 경질됐다.그런데 주가는 정반대의 양상을 나타냈다. 씨티그룹과 UBS가 3분기 부정적 실적 전망을 발표한 1일, 다우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유는 ‘드디어 불확실성이 걷혔다’는 것. 금융회사들의 타격이 예상보다 크기는 하지만 손실액이 확정됨으로써 피해액이 얼마나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잦아들었다. 증시가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이 해소됨으로써 주가는 역설적으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미 노출된 악재는 더 이상 악재가 아닌 셈이다.◇경기 침체란 성장률이 2분기 연속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경기 침체 확률은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지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 의장은 “내년 미 경기 침체 확률이 50% 미만”이라고 말했다. 비록 50% 미만이라고 강조했지만 연초 30%에서 상당히 높아졌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침체 확률이 50%를 넘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상당수 월가 전문가들도 침체 확률이 30% 이상으로 높아졌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이들의 침체 가능성을 경고하는 것은 역시 주택 경기 침체 때문이다. 주택 경기는 악화일로다. 기존 주택 판매 실적이나 신규 주택 판매 실적 모두 7년 만에 최저다. 2분기 주택 가격은 16년 만에 최대로 하락했다.주택 경기가 문제가 되는 것은 소비와 고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다. 집값이 내리면 ‘역(逆)부의 효과(reverse wealth effect)’가 나타난다. 소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고용에도 치명적이다. 건설 경기 위축은 관련 업종 종사자들을 일터에서 내쫓는다. 모기지 등의 업종에서는 벌써부터 감원 작업이 한창이다. 미국 고용인 8명 중 1명은 주택 경기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줄잡아 100만 명이 주택 경기 침체로 일자리를 잃을 것이란 전망도 상당하다. 고용도 역시 소비에 영향을 준다. 소비는 미 경제 성장의 70%를 차지한다.그런데도 증시는 이런 논리를 애써 모른 척한다. 오히려 좋지 않은 경제 지표를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높이는 신호라며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경제 지표가 좋지 않으면 FRB가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릴 것이기 때문에 증시에는 도움이 된다는 시각이다.언뜻 보면 억지 같은 이런 시각엔 ‘경기 침체란 없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첫 번째는 소비와 고용 사정이 괜찮다는 점에서다. 소비 둔화 조짐은 보이지만 아직 수치로 증명되지는 않았다.고용 사정도 마찬가지다. 지난 8월 비농업부문 신규 취업자 수가 4000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줬지만 이는 통계의 오류로 밝혀졌다. 오히려 8만9000명 증가한 것으로 수정됐다. 9월 신규 취업자 수도 11만 명이나 늘었다. 주택 관련 업종의 일자리가 줄고 있지만 탄탄한 기업 실적 덕분에 다른 부문의 일자리가 늘고 있으니 경기 침체는 없다는 믿음을 가질 만도 하다.두 번째는 수출 호조다. 원인은 역시 달러화 약세다. 달러화 약세로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 지난 9월 무역 적자는 576억 달러로 전달의 592억 달러보다 줄었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경상적자 비중도 6%대에서 5.5%로 낮아졌다.미국 기업들의 해외 부문 매출도 증가세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올 해외 부문 매출액이 국내부문 매출액을 사상 처음으로 웃돌 전망이라고 밝혔다. 이러다 보니 기업들의 실적이 쉽게 둔화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확고하다. 월가에서는 미 500대 기업의 3분기 순이익 증가율을 3.9%로 예상하고 있다. 전 분기에 비해 상당히 둔화된 수준이다. 그러나 실제 실적이 전망치를 3~4%포인트 웃돌았던 점을 감안하면 괜찮을 것이란 믿음이 견고하다.세 번째는 금리 인하 가능성이다. FRB가 통화 정책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인플레이션 압력이다. 그 지표는 개인 소비 지출(PCE) 물가 상승률이다. 이 물가 상승률을 2% 이내로 억제하는 것이 FRB의 목표다. 그런데 지난 8월 PCE 물가 상승률은 1.8%로 낮아졌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엷어진 만큼 추가 금리 인하 여지가 그만큼 넓어졌다. 특히 지난 9월 한번 금리를 내린 것은 추가 인하 가능성을 의미하고 있어서 경기가 정말 침체에 빠질 기미가 보이면 FRB가 금리 인하를 통해 막아줄 것이란 기대감이 상당하다.시장에서 형성된 결론은 이렇다. ‘물론 경기가 둔화되고 있다. 그러나 수출 호조와 기업들의 해외 매출 증대로 쉽게 침체에는 빠지지 못할 것이다. 더욱이 FRB가 여차하면 금리를 내려 침체를 막아 줄 것이다’는 것이다.그렇지만 경계론도 만만치 않다. 한마디로 지금 주가는 현실 이상으로 올랐다는 점에서다.증시는 미인 투표라고 한다.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아도 시장참가자들이 좋다면 주가는 오르게 돼 있다. 따라서 어느 날 갑자기 주가가 급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경기 침체 가능성’은 미래다.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발생하지 않을 것’이란 가능성에 베팅한 시장 참가자들의 움직임을 보면 실제 경기 침체가 올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하영춘·한국경제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