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외식·식품 업계는 쇠고기 격전장이나 다름없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되면서 호주·뉴질랜드 등 수입산과 한우의 3파전이 전개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가격 하락세와 그에 따른 소비량 증가다. 싼 가격이 주무기인 미국산 쇠고기에 맞서 기타 수입산은 물론 한우마저 가격을 낮추는 모습이다.실제로 수입산 쇠고기 가격은 지난해보다 7.6% 하락(2006년 7월 기준, 통계청), 10년 만에 가장 큰 낙폭을 보였다. 이뿐만 아니라 한우와 돼지고기 가격도 각각 3.8%, 9.4% 떨어졌다. 미국산 쇠고기가 국내 육류 시장 전반에 강력한 가격 인하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방증이다.반면 가격이 떨어지자 소비량이 큰 폭으로 늘고 있다. ‘비싸서 못 먹던’ 수요가 일제히 일어나면서 외식 시장에선 ‘쇠고기가 대세’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프랜차이즈 업계에선 쇠고기를 주재료로 한 새 브랜드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같은 값이면 삼겹살, 치킨 대신 쇠고기를 먹겠다는 소비자가 늘면서 이와 관련된 업계가 고전하고 있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치가 쇠고기 시장 저변 확대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미국산 쇠고기 검역에서 뼛조각이 발견돼 검역이 중단되는 등 잡음이 계속되고 있지만 판매량에는 별 영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쇠고기 소비량이 집중된 지난 추석 성수기 전후에도 대형 할인점, 재래시장 등에서 미국산 쇠고기 소비가 증가세를 이어갔기 때문이다.신세계 이마트는 지난 8월 27일 한 달여 만에 검역이 재개된 이후 주말 평균 10~12톤가량의 미국산 쇠고기를 판매하고 있다. 이는 8~10톤 수준인 한우 판매량을 웃도는 수준이다. 인기 부위는 냉장 ‘진갈빗살’과 냉장·냉동 ‘척아이롤’로 로스 구이나 불고기용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마트 서울 용산점 관계자는 “삼겹살 대신 쇠고기로 가족 파티를 하려는 이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홈플러스 역시 검역 재개 이후 주말 평균 2톤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해 검역 중단 이전 수준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도매시장에서도 판매량 증가세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미 10여 개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가 미국산 쇠고기 전문점을 런칭하고 선점 경쟁에 뛰어든 상태다. 강병오 FC창업코리아 대표는 “과열 우려가 나올 정도로 많은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쇠고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그 영향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미국산 쇠고기 전문점 사업을 가장 먼저 시작한 브랜드는 ‘오래드림’. 숯불갈비 전문점을 해 오다 지난 5월 미국산 쇠고기를 주메뉴로 리뉴얼한 후 4개월 만에 가맹점 40개를 새로 개설했다. 이 회사는 미국에서 쇠고기를 직수입, 본사 공장에서 가공해 가맹점에 공급하고 있다.행복추풍령이 런칭한 ‘소가미소’ 역시 빠른 속도로 가맹점을 늘려가고 있다. 이미 60여 개 점포를 확보하고 연말까지 100호 점을 돌파한다는 계획이다. 이 회사 김선권 사장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외식 시장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면서 “저렴한 가격에 고품질 쇠고기를 공급해 승기를 잡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호주산 쇠고기를 주로 취급하던 브랜드들은 전환을 모색 중이다. 호주산으로 쇠고기 전문점 사업을 해 온 ‘우스’는 품질과 가격적 측면을 고려해 조만간 미국산으로 주메뉴를 바꿀 계획을 세우고 있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우 진영에서는 발걸음이 바빠졌다.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유통 단계를 줄이고 마진을 낮추는가 하면, 지역 축제 등을 통해 해당 지역 한우를 싼 값에 선보이기도 한다.농협 목우촌은 유통 단계와 마진을 축소해 주목받고 있다. 목우촌이 런칭한 프랜차이즈 한우 전문점 ‘웰빙마을’에선 1+등급 이상의 한우 등심 200g을 1만6000원에 공급한다. 경매로 유통 단계를 줄이고 접객 서비스를 최소화해 부대비용을 줄인 게 가격 인하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지자체가 팔을 걷어붙이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 경북 안동에서는 최근 안동한우불고기 축제를 열고 안동 한우 거세육 1등급 600g을 3만3000원, 불고기 600g을 1만3000원의 낮은 가격에 공급했다. 부산 기장군도 저렴한 가격에 쇠고기를 즐기고 농촌 문화 체험과 ‘철마 한우불고기 축제’를 열었다. ‘참숯과 한우의 절묘한 만남’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축제 기간에는 철마 한우와 지역 농수산물이 20% 할인된 가격에 판매돼 호응을 얻었다.한우 대중화를 선언하고 300g을 8000원(황소)에 판매하는 업체도 등장했다. 지난 8월 13일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에 문을 연 토종 한우 전문점 ‘주천 섶다리마을 다하누촌’이 주인공이다.최계경 다하누 회장은 “사육, 도축, 판매의 전 과정을 자체 해결해 한우 시장에서 붙는 400% 이상의 유통 마진을 없애고 15%만을 마진율로 책정했다”고 말하고 “6단계의 과정을 줄여 직거래로 판매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다하누 가맹점이 밀집돼 있는 주천 다하누촌은 정육점과 고깃집을 접목한 ‘토종 한우 정육점형 식당’ 20여 개로 구성돼 있다. 고기를 사서 식당으로 이동, 상차림 값 2500원(1인당)만 내면 맛있게 구워 먹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채소를 공급하는 현지 농가들도 제값을 받아 일석이조 효과라는 평이다.이 회사는 10월 12일부터 3일간 한우 축제를 열 계획이다. 한우 불고기 무료 시식회, 송아지 우유 먹이기 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돼 있다. 섶다리 마을을 한우의 메카로 특화한다는 게 축제의 목적이다.한편 명품 전략으로 고급 수요를 집중 공략하겠다는 전략도 나왔다. 한우 생산자 단체인 한국한우협회는 ‘진짜 한우’를 판매하는 업소에 대한 인증제를 도입해 신뢰도 높이기에 나섰다. 강원도 횡성의 횡성 한우, 충북 보은의 황토 한우, 상주축협의 상감 한우, 충남의 한우 브랜드 토바우 등은 지자체 주도로 거액을 투자해 ‘명품 한우 브랜드’로 육성되고 있다.조용하던 시골 마을이 천지개벽했다.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장터에 자리 잡은 다하누촌은 지난 8월 문을 연 이후 주말이면 2000명이 몰리는 명소가 됐다. 불과 몇 달 사이 벌어진 변화다.‘대박’은 8월 11일 오픈한 정육점 1곳, 식당 6곳에서 시작됐다. 토종 한우를 300g에 8000원(황소)에 공급하자 수많은 외지인이 다하누촌에 몰려들었다. 수용 한계를 넘어설 정도로 고객이 몰리자 정육점과 가맹 식당도 2배 규모로 늘었다. 8개의 가맹점이 추가로 개업을 준비하고 있어 앞으로도 다하누촌은 확대될 전망이다.경천동지할 변화는 이곳 토박이인 최계경 NH그룹 회장(사진)의 ‘작품’이다. 그는 “고향 장터의 상점들이 고깃집으로 변신해 큰 매출을 일으키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다하누촌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들은 주천 장터 터줏대감들이다. 다하누 도가점을 운영하고 있는 장숙희 씨는 120년 전통의 막걸리 양조장을 하다 간판을 바꿔 달았다. 이뿐만 아니라 주천 기름집, 상하이 중화요리, 27년 전통의 평창쌀상회, 주천양은상회 등이 ‘다하누촌’으로 변신했다. 서울에서 보험회사 부지점장을 했던 황인호 씨는 손님으로 다하누촌을 방문했다가 아예 가족을 데리고 이사해 가맹점을 열었다. 장터에 점포가 부족하자 읍내 도로변으로 다하누촌이 확장되고 있을 정도다.최 회장은 10월부터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 전국을 대상으로 가맹점 모집에 나설 계획이다. 내년까지 전국에 50개 다하누촌을 만든다는 게 그의 포부다.박수진 기자 sjpark@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