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하이 신구 개발 적극 나서…인천 경제 자유구역 10배크기

“중국 최초 주식 장외시장 개설, 중국 개인의 해외 주식 투자 허용, 위안화와 달러 교환이 자유로운 역외 금융시장 개설, 중국 토종 벤처캐피털 육성, 에어버스 조립 생산기지, 중국 최대 보세구역 지정, 고속철도 건설….” 중국 경제의 한 단계 도약을 도울 이들 조치들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베이징에서 한 시간 거리의 톈진에서 추진되거나 이미 진행 중인 실험들이라는 것이다.중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 북상 중이다. ‘톈진 빈하이 신구’의 개발을 두고 중국 전문가들은 이렇게 전한다. 1980년대 선전, 1990년대 상하이에 이어 톈진이 중국 경제 제3의 성장 엔진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얘기다.중국 개혁 개방의 설계사 덩샤오핑이 최초의 경제특구로 지정한 조용한 작은 어촌 선전은 개방의 전도사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장쩌민 전 공산당 총서기가 키운 상하이의 갈대밭 푸둥은 마천루가 빽빽이 들어선 빌딩 숲으로 변모했다. 후진타오 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염전(鹽田)이 즐비한 톈진을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육성하겠다고 나섰다.후 주석은 2005년 10월 공산당 제16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 회의를 1주일 앞두고 톈진의 빈하이 신구를 방문한 자리에서 “베이징-톈진-허베이성 벨트를 기반으로 빈하이 신구를 육성해 환발해만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 동북3성으로 뻗어나가 동북아시아를 향한 현대적인 신흥 지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어 중국 공산당은 제16기 5중전회에서 톈진 빈하이 신구를 푸둥과 동등한 수준으로 육성하기로 결정하고 이듬해인 2006년 4월 국무원(중앙정부)이 빈하이 신구를 종합개혁시범구로 지정했다. 1984년 12월 국무원이 14개 국가 급 개발구 중 하나로 톈진경제기술개발구(TEDA)를 지정하면서 시작한 톈진 개발이 날개를 단 것이다. TEDA는 면적이 40㎢에 불과하지만 빈하이 신구는 TEDA를 포함한 톈진항 보세구 다강구 등 톈진의 3대 행정구를 아우르는 지역으로 2270㎢에 이른다. 인천 경제자유구역의 10배 이상 크기로 톈진시 국내총생산(GDP)의 43%를 차지하고 있다.톈진 빈하이 신구는 후 주석이 내세우는 ‘과학적발전관’과 ‘조화사회건설’이라는 새로운 정치 이데올로기의 실험 무대라는 평을 듣고 있다. 낙후된 지역을 키움으로써 균형 발전을 촉진하는 것은 물론 에너지 소모와 환경오염이 적고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산업과 금융 및 서비스 산업을 집중 육성하고자 하는 후 주석의 경제 개발 방향의 전초기지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이다. 톈진 개혁 실험의 성공은 중국 경제 개혁의 성공 여부를 짐작할 수 있는 잣대가 될 것이라는 얘기도 그래서 나온다. 톈진의 변화에서 중국의 미래를 읽어야 한다는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2270㎢ 규모에 달하는 톈진 빈하이 신구에서는 이미 천지개벽이 이뤄지고 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의 11차 5개년 기획 기간에 5000억 위안을 쏟아 붓는다는 게 정부의 발표였지만 실제로는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인프라 개발의 3분의 1이 환경 보호에 할당되는 등 중국 지도부가 강조하는 환경 친화적 경제 건설의 표본으로 떠오르고 있다.톈진의 천지개벽은 금융과 물류를 비롯한 서비스업과 첨단 제조업 육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상하이를 제치고 금융 개혁 시범지구로 지정된 톈진에서는 이미 새로운 금융 실험이 진행 중이다. 류밍캉 은행감독관리위원회 주석은 톈진 빈하이 신구에 금융특구를 조성해 외국계 은행에 일종의 프리 패스인 ‘녹색통도(綠色通道)’를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자본시장 개방 역사의 이정표로 평가받는 중국 개인의 해외 주식 직접 투자를 톈진 지역에서부터 시행하기로 한 것이나 장외 주식시장을 이르면 연내 톈진에 개설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이 토종 벤처캐피털 육성에 나서면서 톈진 빈하이 신구 개발에 투자할 10개가량의 벤처캐피털을 먼저 인가하기로 한 것도 마찬가지다.물류 허브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톈진 빈하이 국제공항은 활주로가 1개에서 3개로 늘어난다. 톈진시는 26억 위안을 들여 1개의 활주로는 올해 안에 깔고 나머지 1개는 2015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증축이 끝나면 여객 수송 능력이 2005년 연간 110만 명에서 560만 명, 화물 운송 능력도 연간 10만 톤에서 50만 톤으로 크게 확충된다.톈진항은 남항의 일부와 동항 건설을 2010년까지 완료해 컨테이너 처리 용량을 지난해 595만 TEU에서 연간 1200만 TEU급으로 2배 이상 확충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특히 톈진의 둥장항 일대에 중국 최대 규모의 보세구역이 건설된다. 국무원이 지난해 상하이 양산항에 이어 두 번째의 보세항구 구역 설립을 비준한 것. 둥장항은 톈진 동북부에 인공적으로 조성한 반도 형태의 항구로 면적이 10㎢로 양산항보다 크다. 둥장항 건설에는 양산항에 적용했던 우대 혜택이 그대로 주어진다.철도 인프라도 크게 개선된다. 톈진과 베이징 사이에는 현재 1시간가량 걸리는 2개 고속철도 노선이 있지만 베이징올림픽 개막 전인 내년 6월에는 30분으로 단축한 새 고속철도가 달리게 된다. 금융과 물류뿐만 아니다. 톈진은 5년 내 1990억 위안을 들여 20개의 현대식 서비스 산업 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금융 물류는 물론 여행 지식 창조 산업 서비스 아웃소싱 등이 중점 육성 대상으로 선정됐다. 올해 초 서비스 아웃소싱 사업 발전 촉진 계획을 마련한 톈진시는 1억 위안 규모의 서비스 아웃소싱 사업 발전 기금도 조성한 상태다. 정보 인력관리 재무관리 물류 AS 등 각종 서비스부문 아웃소싱 우수 기업을 선정해 자금 지원과 세제 혜택을 줌으로써 톈진 경제에서 차지하는 서비스 산업 비중을 40%에서 2011년까지 45%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첨단 산업 육성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톈진 국제공항 신설 활주로 아래쪽에 접한 60만㎡에는 110명 탑승용 에어버스 여객기 A320 조립 공장 건설이 한창이다. 1970년에 설립된 에어버스가 유럽 이외에 지역에 생산기지를 세우는 것은 처음이다. 지난 5월 착공된 이 공장은 내년 8월부터 조립을 시작해 2009년 6월 첫 조립 비행기를 출고할 예정이다. 2011년부터는 연간 44대를 생산할 계획이다.에어버스로서는 급성장하는 중국 항공기 시장 개척에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중국으로서는 국가 핵심 프로젝트로 정한 대형 항공기 개발에 필요한 기술을 축적할 수 있게 됐다. 중국이 개혁 개방 이후 추구해 온 전형적인 시장환기술(시장과 기술을 교환) 정책의 또 다른 사례인 셈이다. 이미 톈진은 지난해 1억 대의 휴대폰을 생산해 세계 휴대폰 생산의 10분의 1을 차지할 만큼 첨단 생산기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글로벌 500대 기업 가운데 152개 사가 이미 입주했다. 도요타자동차는 2010년까지 톈진 공장의 생산 능력을 연간 100만 대로 확충한다는 계획이다.톈진 빈하이 신구 개발은 중국뿐만 아니라 인접한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 크다. 특히 톈진 공항과 항구가 동북아 허브로 부상하게 되면 인천국제공항과 부산항의 동북아 허브 전략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과의 경쟁과 보완을 이룰 새로운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또 중국 내 다른 지역에 비해 금융업의 진입 장벽이 낮고 서비스 산업 육성 노력이 크다는 점에서 우리 금융 기업이나 서비스 기업에는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한국 자본이 톈진에 세운 아로마골프장은 승마장을 비롯한 종합 레저 단지로 키운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톈진이 양적인 성장에서 질적인 성장으로 궤도 수정을 하고 있는 중국에서 외국 기업이 새로운 승부수를 띄울 최적지로 떠오르고 있다.오광진·한국경제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