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세금으로 적자 보전 ㆍㆍㆍ개선안에 공무원 반발 거세
4년 가까이 끌어오던 국민연금 개정안이 이번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에 따라 이미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공무원연금의 개혁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은 당초 작년 말이 입법 시한이었다. 하지만 주무 장관 교체, 국민연금 타결 난항 등을 이유로 개혁 작업이 계속 미뤄져 왔다.공무원연금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 까닭은 바로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때문이다. 공무원연금은 불입액에 비해 받는 수익률이 국민연금의 2배 정도가 된다. 액수로 따지자면 30년 기준으로 공무원연금은 한 달에 200만 원 이상을 받고 국민연금은 100만 원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된다. 또 공무원 연금은 30년 기준으로 볼 때 퇴직 전 3년간의 월평균 소득을 기준으로 70%가량 받을 수 있는 반면, 국민연금은 40년을 내도 납입 기간 내 전체 평균 소득액의 50% 정도만 받을 수 있다. 가장 월급을 많이 받는 시기가 기준이 되니 금액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물론 특수직역연금인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과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다. 일례로 대다수의 공무원은 현행법상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퇴직 시 ‘퇴직금’이란 게 없다. 퇴직금의 3분의 1 정도 수준의 ‘퇴직 수당’만 있다. 퇴직금과 퇴직 수당의 차이를 바로 공무원연금이 채워주는 것이다.“공무원이 일반 직장인에 비해 월급을 조금 받는다”라는 이야기도 맞다. 김상호 관동대 경영학부 교수가 지난해 12월 14일 한나라당 주최 ‘공무원연금 관련 정책토론회’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7급 일반직을 기준으로 26세에 취직해 58세까지 만 33년간 일한 다는 가정 하에, 봉급만 보면 민간 직장인이 15억722만 원을 받는 반면 공무원은 14억2681만 원을 받는다. 퇴직금도 민간 직장인이 1억6431만 원으로 공무원(6075만 원)을 앞섰다.그러나 연금으로 들어가면 상황이 반전된다. 공무원이 퇴직 후 받는 연금총액은 6억1851만 원에 달하는 반면, 민간 직장인은 2억6252만 원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공무원과 일반 직장인의 봉급과 연금, 퇴직금까지 합친 ‘생애소득’으로 보면 오히려 공무원이 일반인을 훌쩍 앞선다. 공무원이 민간 직장인보다 평생 1억7200만 원(일반 직장인 19억3400만 원, 공무원 21억600만 원)을 더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공무원의 생애소득이 민간 직장인에 비해 많다는 게 ‘옳다, 그르다’의 가치판단 문제는 아니다. 일반 직장인보다 적은 월급을 받아가며 일하는 공무원들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또 그들의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서라도 안정된 노후를 보장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문제는 공무원이 일반인의 소득을 앞지를 수 있는 ‘비장의 무기’ 공무원연금이 이미 지난 2002년부터 적자라는 점이다. 또 공무원연금의 적자는 바로 국민들이 내는 세금에서 보전된다는 점이다. 공무원연금관리공단 관계자는 “지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전후로 명예퇴직자가 크게 늘면서 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며 “이를 보전하기 위해 정부가 적자가 발생하는 만큼 세금으로 채울 수 있도록 공무원연금법 69조항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행정자치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960년 도입된 공무원연금은 2006년 6700억 원의 적자를 냈다. 2010년엔 2조1430억 원, 2020년 8조9800억 원, 2030년 18조100억 원, 2040년 24조150억 원 등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적자를 기록하는 공무원연금에 정부 예산이 보전해주는 금액은 2003년 548억 원으로 시작해 2006년 8452억 원이 투입됐다. 올해는 9725억 원, 2008년엔 1조2442억 원, 2020년엔 무려 10조5656억 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공무원연금 보전액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는 분석에 따라 정부도 ‘손을 댄다’고 밝혔다. 공무원연금과 사정이 비슷한 군인연금, 사학연금 모두 마찬가지다. 그대로 뒀다간 재정적자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기 때문이다.공무원연금에 대한 개혁 작업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 1월에는 공무원연금제도발전위원회에서 ‘공무원연금제도 개혁 건의안’도 나왔다. 발전위 안에 따르면 신임공무원에 대한 연금 지급액은 국민연금 수준으로 낮추고, 대신 민간 수준의 퇴직금을 도입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방안이 채택되면 신임 공무원들의 연금 수익비는 지금의 3.9배에서 1.7배로 뚝 떨어진다. 퇴직소득(연금수령액+퇴직금)으로 계산하면 현행보다 31% 줄어든다.‘비슷하게 내고 적게 받는’ 정부안에 대해 공무원들의 반발이 컸던 건 당연한 결과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함,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등 공무원연금 가입자 단체들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연금 개혁을 막겠다”며 강한 저항을 보이고 있다. 애초에 공무원연금 계획을 잘못 세운 것은 정부인데 왜 공무원에게 부담을 전가하느냐는 주장이다.그렇다고 시민사회의 개선안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경실련 사회복지위원은 “개선안의 가장 큰 문제는 혜택을 받는 고위 공직자, 연금 수급자, 장기 근속자는 유리한 반면 혜택을 가장 적게 받는 단기 근속자, 신규 임용자에겐 불리하게 돼 ‘형평성’을 잃었다”고 꼬집었다. 건의안에 따르더라도 현직 공무원들 가운데 20년 이상 된 고참 공무원들의 연금 수익비는 여전히 3.5배 이상이다. 1988년 임용된 공무원이라면 퇴직 소득은 불과 3.7% 감소한다. 10~20년차 공무원의 연금 수익비도 2.3배 이상이다. 퇴직 소득은 13.3% 감소한다.김 교수는 또 “고위공직자의 경우는 산하기관에 재취업하는 게 공공연한 비밀 아니냐”며 “이들은 월급은 월급대로, 공무원연금은 공무원연금대로 받아간다”고 말했다. 연금이 ‘돈 많이 버는 사람이 적게 버는 사람에게 일정액을 나눠주는’ 사회복지 차원의 성격도 띠고 있음에도 오히려 고위직 공무원들만 배불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공무원연금 수급자 중 최고액인 550만7630원을 받고 있는 대법원장 출신 A 씨는 법률사무소에서 대표변호사로 근무했음에도 “추가 소득이 없다”는 이유로 연금을 전액 받고 있는 중이다.개선안이 국민들의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여주지도 않는다. 행정자치부 자료에 따르면 현행 방안대로라면 정부보전금액의 증감률은 2010년 현재의 93.4%로 잠깐 줄었다가 2020년 103%, 2030년 105.8%로 오히려 늘어난다. 2050년까지도 90%대를 유지하다가 가시적 성과는 73.1%로 줄어드는 2070년에나 가서야 나타난다.결국 현행 개선안은 정작 손을 대야 할 고위직 공무원은 그대로 두고 국민과 신임 공무원에게만 부담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김진수 교수는 이에 대해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하나는 국민연금처럼 공무원연금에 상한액을 두거나 연금을 지나치게 많이 받는 공무원의 연금 수준을 낮추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재취업한 고위직 공무원에 대해 연금을 일시 중지하는 연금일부정지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재취업한 고위 공무원의 경우 일반 국민과 마찬가지로 국민연금으로 옮기게 하는 방안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공무원연금관리공단 역시 비슷한 대안을 내놨다. 최재식 공무원연금연구센터 센터장은 “공무원연금 개선은 기초노령연금 등 국민연금 개혁이 마무리된 이후에 그에 따라 움직여야 할 것”이라고 전제한 뒤 “연금액이 많은 공무원들이 일정 액수를 떼서 연금기금을 확대 운용해 적자 폭을 줄이는 방법도 대안 중 하나”라고 말했다. 현재 공무원연금의 수익률은 33개 정부산하기금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인 연 7.4% 수준이다. 최 센터장은 “미국처럼 과세분을 기금으로 돌리거나, 오스트리아처럼 연금에서 1~2% 정도의 기금을 갹출하는 방법, 독일처럼 보수 인상분을 기금으로 마련하는 방법 등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