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의 통찰력, 독서로 키웁니다’

사무실의 한쪽 벽을 채우고 있는 그의 서가에 꽂혀 있는 책엔 일관성을 찾을 수 없다. 최고경영자(CEO)의 책장답게 경제 경영서의 비중이 높기는 하지만 언뜻 보아도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실용서 등도 절반 정도는 돼 보인다. 기자에게 불쑥 꺼내 보인 책은 <슈퍼바이크스(Superbikes)>였다. 세계의 명품 오토바이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50세 생일에 혼다의 골드윙을 타고 내달려보는 게 꿈입니다. 그런데 주위의 만류가 하도 강해서 이뤄질지 모르겠네요. 자동차도 좋아하지만 오토바이는 보다 직접적인 맛이 있어서 좋습니다. 몸으로 속도를 느낄 수 있죠. 감각의 크기가 다르다 할까요.”정보기술 전문 업체인 한국이엠씨컴퓨터시스템즈(이하 한국이엠씨)의 김경진 사장의 첫 느낌은 자유롭다는 것이었다. 오토바이를 그리워하는 것도 그렇지만 책을 고르는 데에도 구애가 없다. 읽기도 많이 읽는다. 미국 본사에까지 소문이 난 다독가다. 그가 내민 잭 웰치의 (한국어판 제목은 ‘위대한 승리’)이란 책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책의 안쪽 페이지엔 잭 웰치의 친필 사인이 선명했다. 본사에서 전 세계의 이엠씨 직원 가운데 능력 있고 책 좋아하는 사람에게 한 권씩 나눠준 책이란 설명이다. 한국이엠씨는 김 사장 취임 이후 매년 15%의 역동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워낙 바빠 책 읽을 시간이 별로 없어요. 최근 1년 동안 구입한 책을 세어보니 한 90권 정도 되더군요. 그중 60권가량을 완독했죠.”요즘 읽은 책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말콤 글래드웰의 <블링크>였다. 몇 가지의 요인만을 가지고 분석한 결과를 통해 의사 결정을 하면 오류의 가능성이 높으며 보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선 종합적인 통찰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에 뜻을 같이 한다. 제한된 자료에 얽매여 ‘장고 끝에 악수’를 두느니 한순간의 통찰로 갈 길을 정하는 게 낫다는 설명이다.“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스스로 어떤 느낌이 들 때까지 열심히 생각합니다. 몇 가지 사실에 얽매이지 않고 최대한의 변수들을 고려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확신이 듭니다. 직원들에게도 가능한 한 모든 감각과 인지능력을 동원해 보다 넓고 깊게 생각하고 결정하라고 당부하곤 합니다.”김 사장에게 독서는 통찰을 위한 도구다. 통찰이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수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능력이며 독서는 수련의 한 방법이다. 특히 거시적인 트렌드에 대해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김 사장은 강조한다. 큰 흐름에 거스르는 결정을 피하기 위해서다. 제레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 같은 책이 그런 책들이다.“물론 경제 경영서를 자주 읽지요. 참 좋은 얘기가 많아요. 하지만 책의 아이디어를 실천하기란 현실에서 거의 불가능합니다. 시간이 부족하고 환경과 사람이 다르잖아요. 그래도 열심히 읽습니다.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워도 많이 읽으면 경영의 요체가 내면화되고 결정적인 순간 ‘통찰’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그렇다면 김 사장이 얻은 ‘경영의 요체’는 무엇일까. ‘사람’이었다. 기업과 조직, 이익을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좋은 사람을 구하고 그 인재가 날개를 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CEO의 임무란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책의 주제도 ‘사람’이다. 톰 피터스의 <인재>는 그런 면에서 적지 않은 힌트를 주는 책이라고 김 사장은 권한다.김 사장의 관심 분야는 종잡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경영 외에 한 가지를 고르라면 단연 ‘미학’을 꼽는다. 오죽하면 <경복궁 근정전>이라는, 근정전의 수리 일지를 담은 책까지 완독하고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를 가까이 두고 열독할까.“은퇴를 하면 목공이 되고 싶어요. 나무로 장난감을 만드는 장인 말입니다. 실제로 틈틈이 배우기도 했고 만들어보기도 했죠.”가구전시회나 고건축전시회 등 관련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관한다는 김 사장. 왠지 나무 냄새가 날 듯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