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지 않으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죠’

국내 최대 수입 명품 의류 업체인 권기찬 웨어펀패션하우스 회장(56). 그는 ‘지루한 것’과 ‘재미없는 것’을 참지 못한다. 그가 최근 몇 년 새 수십m 절벽 아래로의 번지점프, 스카이다이빙, 높이 3776m의 일본 최고봉 후지산 정상 등반을 한 것도 이런 튀는 행동의 예다. 그는 머지않아 에베레스트 등반에도 나설 예정이다. 약 5400m 높이의 베이스캠프 최고 지점까지 오르겠단다. 6195m 높이의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등정도 도전 목록에 들어 있다.그가 이런 모험에 나서는 것은 ‘튀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지론을 실천하고 직원들에게 도전정신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다. 권 회장은 평생을 튀는 행동으로 살아왔고 이를 사업에 접목했다. 경북중과 대구고를 다닐 때 남들 같으면 군것질할 용돈을 아껴 미제 중고 청바지나 색다른 구제품 티셔츠를 사서 입었다. 대학 시절에는 머리에 기름이 자르르 흐르도록 ‘포마드’를 바르고 다니기도 했다.스스로 이런 튀는 행동을 ‘허영끼’라고 부른다. 권 회장은 “내 자신의 허영끼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명품 의류를 접하게 됐고 패션 산업 종사자들이 밀라노나 파리에 가지 않고도 다양한 패션 정보를 국내에서 얻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한다.패션에 대한 그의 지론은 간단하다. ‘패션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회사명도 창업 당시부터 웨어펀(wear+fun)이다. 그룹 이름도 웨어펀패션하우스다.권 회장은 “제가 들여온 옷을 입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업하는 보람을 느낀다”고 설명한다. 그가 운영하는 업체는 모두 5개사. 웨어펀인터내셔널, 웨어펀코리아, 펀서플라이 등 패션 관련 3개사와 최근 창업한 엔터테인먼트 업체 등 2개 회사다.이 가운데 웨어펀인터내셔널은 아이그너, 소니아 리키엘, 바슬러 등을 수입하는 업체다. 아이그너는 독일 지성의 명품이라 불리는 브랜드로 행운의 ‘A’자 말발굽 로고로 유명하다. 소니아 리키엘은 ‘니트의 여왕’으로 불리는 프랑스 유명 패션디자이너이자 그의 브랜드명이다. 바슬러는 삶의 여유와 멋을 즐길 줄 아는 중장년층을 위한 독일의 패션 브랜드다.웨어펀코리아는 겐조 베르사체 헤로즈 제품을 수입하는 업체다. 이탈리아 브랜드인 베르사체는 패션, 홈 컬렉션, 호텔 등에 이어 최근 첨단 기술 투자 그룹인 태그그룹과 손잡고 첨단 인테리어를 갖춘 고급 전용 제트기의 디자인과 제작을 함께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경쾌하고 생기발랄하며 화려한 색채로 활짝 피어 있는 꽃무늬가 고유한 패턴인 겐조는 장미꽃과 자연의 화가로 불리는 디자이너다. 펀서플라이는 이들 제품의 유통과 물류를 담당하는 회사다. 웨어펀패션하우스의 지난해 총매출은 약 500억 원, 이 가운데 모기업인 웨어펀인터내셔널의 매출은 약 300억 원이다.공연·미술전시·외식 사업에도 도전장권 회장은 최근 몇 가지 신규 사업에 진출했다. 몇 해 전 영국 런던에서 뮤지컬 〈맘마미아〉를 본 뒤 문화적 충격을 받아 설레는 마음에 며칠 밤잠을 이루지 못했던 그는 수년간 고심한 끝에 최근 공연 기획 업체를 인수해 ㈜더블류앤펀엔터테인먼트를 출범시켰다.“20여 곡의 노래와 서너 차례의 무대 교체, 그리고 출연한 배우들의 옷값에만 투자한 저예산 뮤지컬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맘마미아〉를 보고 왜 우리는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지 못할까. 이게 바로 내가 해야 할 사업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더블류앤펀엔터테인먼트 역시 튀는 공연을 할 예정이다. 예컨대 오는 9월 세계적인 카운터테너인 안드레아 보첼리를 초청해 공연할 계획인데 그냥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라 뒤에서 무용을 한다든지, 미술 작품을 전시한다든지 해서 이색적인 모습을 보여줄 계획이다.권 회장은 “공연 예술을 통해 여유와 편안함, 그리고 뭔가 색다른 재미를 줄 생각”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도 격조가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가 회사의 사명으로 추구하는 것 가운데 ‘휴’의 가치를 문화와 연결하는 대목이다.그는 또 영국의 왕실 납품 백화점으로 유명한 헤로즈로부터 2년 전 한국 내 사업권을 획득해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 지하 1층 푸드홀에 헤로즈홀을 운영하고 있다. 헤로즈로부터 수입한 차와 여러 상품들을 판매하는 코너와, 헤로즈차와 커피를 서비스하는 티홀, 또 패스트리 베이커리 등의 세 가지 아이템을 결합해 한 공간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전에 헤로즈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 것이다. 이 모델은 이미 다른 동남아 국가에도 전파되고 있다. 헤로즈 사업의 확대와 외식 사업 본격 진출을 위해 ‘헤로즈 앤 푸드펀’ 사업팀을 최근 발족시켰다. 곧 서울 청담동에 헤로즈 카페테리아를 개설할 예정이며 헤로즈 브랜드로 다양한 라이선스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또 내추럴델리라는 식품 브랜드를 인수해 가맹점을 모집하는 등 외식 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내추럴델리는 유기농 건강식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회사다. 권 회장은 “단순한 델리의 개념을 벗어나 최고급의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고 소비자를 위한 세심하고 정성스러운 준비를 통해 건강한 먹을거리 문화에 공헌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한다.그의 사업 열정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화랑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는 기업 중 하나인 다국적 기업 ‘오페라갤러리’와 합작 투자해 ㈜오페라갤러리코리아를 설립했다. 서울 청담사거리 ‘네이처 포엠’ 빌딩 1층에 100평 규모로 오는 8월 ‘오페라갤러리 서울’을 개관할 예정이다. 파리 런던 베니스 뉴욕 마이애미 싱가포르 홍콩에 이어 서울에 8번째로 오페라갤러리가 들어서며 9번째는 두바이, 10번째는 모스크바가 예정돼 있다.오페라갤러리는 세계의 명품 패션 거리에 위치하는 게 특징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패션 거리 청담동에 자리할 ‘오페라갤러리 서울’은 해외 현대미술을 실시간으로 국내에 선보임으로써 한국 소비자들이 패션을 즐기며 동시에 미술에 대한 안목을 높일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으로 권 회장은 기대하고 있다. 그는 “오페라갤러리가 미술품 경매 사업에 나설 경우 자연스레 오페라갤러리 서울도 이 사업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권 회장은 미술 애호가다. 최근 이전한 서울 청담동 사옥 지하 1층에 자신과 회사 임원들, 또 지인들이 모여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를 꾸몄다. 이 갤러리는 그림을 사고파는 일반 갤러리가 아니라 그가 모은 250여 점의 작품들을 3~4개월에 한번씩 바꿔 전시해 회사 임직원들의 문화 지수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를 졸업한 권 회장은 종합상사와 건설업체를 거쳐 1986년 웨어펀인터내셔널을 설립해 패션 의류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탈리아 브랜드와 수입 판매 계약을 맺고 의류 수입에 나섰다. 그는 90년대 초 사업 방향을 ‘문화’와 ‘펀’으로 정하고 의식주미휴(衣食住美休)의 가치에 문화와 즐거움을 보태 소비자들이 질 높은 삶을 추구하게 만드는 것을 회사의 사명으로 정했다. 그 뒤 이 방향으로 사업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의는 패션 의류, 식은 먹을거리, 미는 미술 관련 사업, 휴는 레저 엔터테인먼트를 의미한다. 이 가운데 아직 주에 관한 사업만 시작하지 못했는데 거창한 건축이 아니라 주거생활을 편안하면서도 아름답게 할 수 있는 해비타트 상품이나 인테리어 등의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요즘 들어 기업인들이 디자인과 미,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웰빙에 대해 부쩍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권 회장은 이미 15년 전에 이를 사업 방향으로 확정하고 준비해 온 것이다. 문화와 재미라는 토대 위에 고객의 눈과 귀와 코와 입을 즐겁게 해주려는 그의 ‘허영끼’가 어디까지 확산될지 궁금해진다.약력: 1951년생. 75년 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 졸업. 86년 웨어펀인터내셔널 창업. 2001년 명품 수입업협회 회장(현) 및 연세대 경영대학원 졸업(석사). 2006년 경원대 경영대학원 박사 과정(현). 수상;2004년 무역의 날 대통령표창. 2006년 프랑스 국가공로훈장 기사장 수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