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고향은 충남 서천군의 아주 작은 시골마을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동네에서 농사일을 하시며 성장하셨고 결혼 후 1남 4녀를 두셨다. 어린 시절의 기억으론 무엇인가를 만드는 재주가 많은 분이셨다. 농사에 필요한 도구는 거의 직접 만드셨고 나에게 새총이나 장난감을 멋지게 만들어 주신 기억이 난다. 지금 느낌으로는 목수를 하셨어도 잘 하셨을 것 같다.그러나 5남매를 책임지셔야 하는 아버지는 농사일을 통해서는 자식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셨고 정든 고향을 떠나 새로운 일을 찾아야만 했다. 결국 필자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은 천안 부근에 터를 잡으시고 양계장을 시작하셨다. 사업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나자 우리 가족은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가끔 자살하는(?) 닭들 덕분에 한 달에 서너 번은 닭죽과 삼계탕을 먹을 수 있어 행복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동네에서 풀어놓은 개가 닭장에 들어와 닭들을 물어 죽였고, 결국은 빚을 지고 그 동네를 떠나야만 했다.아버지는 청년기에 기독교 신앙 속에서 성장하셨고 교회에서 어머니를 만나 결혼하셨다. 이 때문에 자녀들을 신앙 속에서 키우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 하지만 어린 시절 나는 불만이 많았다. 그렇게 많은 기도를 드리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 왜 하시는 일마다 잘 되지 않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부모님의 기도 덕인지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천안에서 다니던 동네 교회 목사님의 소개로 아버지는 기독교 선교 재단에서 일하실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그러나 박봉인 터라 5남매의 교육을 위해 어머니는 항상 일을 하셔야 했다. 7~8년 전에 일을 그만두셨으니까 아버지께 시집와 예순 넘어서까지 가정과 직장을 병행하신 셈이다.아버지는 유난히 어머니를 사랑하신다. 특히 자신이 못나 어머니를 평생토록 고생시켰다고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신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인지 모르지만 결혼 후 난 아내가 직장에 다니는 것을 완강히 반대했다. 다행히 아내도 집안 살림에만 관심이 있었다.아버지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별로 두려움을 가지지 않으신다. 또한 판단과 결정이 빠르신 것 같다. 농사일을 접고 양계장을 시작할 때도 그랬고 양계장이 망하자 서울로 이사하신 것도 그랬다. 잘살고 못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시고 그때그때의 판단과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하신다.초등학교 때의 잦은 이사로 환경 변화가 심했던 나는 성격이 내성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대학 진학 후엔 좀 더 밝고 활동적으로 바뀌었다. 학과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서클 활동도 열심히 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대학원 진학을 포기했지만 불만은 없었다. 열심히 돈을 벌어 어려운 가정 형편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생각에 취업을 했고 열심히 일했다.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재주 때문에 공학을 전공한 나는 주로 연구 개발 업무를 맡았다. 그 후 몇 번 회사를 옮겼고 2000년도에 조그만 회사를 세웠다. 물을 깨끗하게 정수하는 여과 필터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다. 그 사이 3명이던 직원은 60여 명이 됐고 매출도 80억 원을 넘겼다. 사옥도 준공했다.어릴 적 아버지를 좇아 자주 이사를 다니면서 항상 불만이 많았지만 나 역시 똑같은 길을 가고 있다. 결혼 후 6번 이사를 해야 했고 회사는 5번이나 터전을 옮겨야 했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것도 어쩌면 아버지의 영향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아버지의 손재주를 물려받았는지 몰라도 난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 왔고 지금도 새로운 무언가를 개발하고 있다.나이를 먹을수록 아버지를 닮아간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특히 아내는 말이나 행동이 아버지와 똑같다고 한다. 지금도 아버지를 보면 말씀이나 판단이 너무 신중해 답답하다고 느낄 때가 많은데 아내는 나도 마찬가지라고 한다.이제 ‘지금의 나의 모습은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라는 사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고 경험을 보고 자랐으며 습관과 생활철학을 배워 왔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보고 자란 대로 가르칠 테니 내 아이들은 나를 닮아 갈 것이다.글/ 최석림1967년생. 91년 인하대 생물공학과 졸업 후 스위스 카타딘 연구소와 웅진코웨이 환경기술연구소에서 근무했다. 2000년 수처리 전문 기업인 피코그램을 설립해 대표이사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