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머노믹스(Womenomics)’라는 신조어가 화제다.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미래 경제의 키워드로 우머노믹스를 언급한 데 이어 지난 4월 ‘우머노믹스가 되돌아오다(Womenomics revisited)’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우머노믹스는 여성(women)과 경제(economics)를 합친 용어다. 여성의 경제 활동이 늘어나면 더 부유한 세상에서 살 수 있다는 의미에서 쓰이고 있다. 실제로 세계경제포럼(WEF) 조사 결과 남녀가 평등한 나라일수록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높았다.골드만삭스 역시 여성의 취업률이 남성과 같은 수준으로 올라가면 미국의 GDP는 현재보다 9%, 유럽은 13%, 일본은 16% 더 상승할 수 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아울러 유엔의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는 “남녀 차별로 여성들의 경제 활동 기회가 줄어들어 발생하는 손해가 연간 420억∼470억 달러”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여성이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해 생기는 손실도 연간 160억∼300억 달러에 이른다고 덧붙였다.이처럼 여성이 경제를 이끌어가는 거대 축이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여성 CEO가 증가하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 ‘포천 선정 500대 그룹’ 중 CEO를 포함한 여성 임원의 비율은 1995년 8.7%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10년 후인 2005년에는 16.4%로 두 배 뛰어 올랐다.여성 CEO의 숫자만 늘어난 것은 아니다. 해외 굴지의 글로벌 기업에 여성 CEO가 취임한 사례가 부쩍 잦아졌다.오길비&매더의 셸리 라자러스, NBC 유니버설의 베스 컴스톡, 베인&컴퍼니의 오릿 가디시, 디즈니 미디어 네트웍스의 앤 스위니 등이 회사를 이끄는 대표적인 여걸들이다. 최근에는 복사기 제조 기업인 제록스에도 우르술라 번스가 사장으로 임명되면서 ‘여풍’이 더욱 거세게 불었다.아울러 펩시의 여성 CEO 인드라 누이는 ‘2006년 세계 최고의 파워 우먼’이라는 평까지 얻어냈다. 지난해 말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이 발표한 ‘2006년 세계를 움직인 재계 여성 50인’ 2위로 선정된 것이다. 취임 이후 회사의 실적을 크게 개선, 능력을 인정받아서다.국내에도 300만 중소기업의 38%에 이르는 115만 개가 여사장을 둔 기업이다. 이들 여성 기업에 고용된 직원만 300만 명을 육박한다. 이들이 경영하는 기업은 일반 기업에 비해 내실 면에서 앞서 있다. 여성 기업체의 평균 부채비율은 49%로 일반 기업의 평균인 150%에 비해 크게 낮다. 자기자본비율 역시 62%로 일반 기업의 36.5%에 비해 1.5배 이상 높다.여성 기업이 크게 늘어난 것은 1990년대 들어서다. 학력과 경력, 열정과 뚝심으로 무장한 여성들이 업계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남편 대신 가장 역할을 한 ‘생계형 창업’도 여성 기업의 수를 늘리는 데 한몫했다.여성 기업인 가운데에는 여성 특유의 ‘립스틱 리더십’을 보이며 두각을 나타낸 사람이 적지 않다. 섬세함과 꼼꼼함, 부드러움을 남성과는 또 다른 경쟁력으로 삼아 여성의 파워를 보여 나갔다.중소기업 CEO 38%가 여성하지만 아직까지 여성 CEO의 갈 길은 멀다. 일단 115만 여성 중소기업의 평균 매출액은 미미한 편이다. 여성 CEO들은 ‘판로 개척’과 ‘자금 조달’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지적하곤 한다. 남성과 똑같이 비즈니스를 하려 해도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여전해서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조차 남편의 상환보장을 요구받을 때가 많다.아울러 아직까지 대기업, 거대 금융기업의 수장을 맡은 여성 CEO는 찾아보기 어렵다. 애경그룹의 장영신 회장과 현대그룹의 현정은 회장 정도가 대기업의 여성 대표다. 하지만 이들도 자력으로 기업의 최고직에 올라간 것은 아니다. 남편의 타계로 기업을 승계한 경우다.국내 대기업에는 CEO는커녕 여성 임원의 비율 자체가 4%로 매우 낮은 상황이다. 매년 7만~8만 명의 대졸 이상 여성 인력이 배출되지만 출산과 육아 등이 이들의 유리 천장 깨기를 막고 있다.안윤정 여경협 회장은 “어린 자녀를 둔 기혼 여성의 경우 육아를 커리어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곤 한다”면서 “이런 이유로 협회 차원에서 ‘어린이집과 보육원 창업’에 특히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안 회장은 이어 “중소기업을 이끄는 여성 기업은 남성에 비해 ‘판로 개척’이 쉽지 않다”면서 “조달청의 공공구매 물량 가운데 5%를 여성 CEO가 경영하는 기업에 할당하는 ‘5% 의무계약 규정’을 법제화하기 위해 뛰고 있다”고 덧붙였다. ‘5% 의무계약 규정’은 일부 해외 국가에서는 자리 잡은 법규다.정부 정책도 중요하지만 여성 CEO 스스로가 비즈니스의 목표를 보다 크고, 넓게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IMF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노무법인을 이끌어 온 김형아 하이에치알 사장은 “최근 여성 기업체의 화두는 사업을 어떻게 하면 잘 할까가 아니다”면서 “어떻게 하면 리딩 컴퍼니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김 사장은 이어 “여성 CEO는 보통 리스크 헤징 경영을 잘한다”며 “하지만 단기 정책 위주인 경우가 많아 보다 장기적인 성장 지향적, 전략적인 비즈니스 계획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10년간 사업을 지속해 온 프로모션 기업 메타프로의 강을순 사장은 “경기가 좋지 않은 요즘과 같은 시점에는 차별화된 ‘경쟁력’에 남다른 신경을 써야 한다”면서 “여성 기업체의 경우 특히 회사의 문을 열었다는 데 안주하지 말고 사업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지속성’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