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금리 뒷걸음… 채권 ‘상대적 매력’
인구 구조 변화와 이것이 정치, 사회, 경제 각 분야에 미칠 영향 및 대응 방안이 전 세계적으로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 각국에서 유럽식의 복지 정책이 퇴조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인구 구조의 변화를 맞이하게 되면서 개인적인 차원의 투자와 이를 통한 노후 대비 문제가 크게 관심을 끌고 있다. 즉,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른 실물 경제 및 자본시장의 변화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사실 인구 구조의 변화는 인구의 수, 연령 분포, 성비 등 다양한 개념을 포괄한다. 그리고 각각의 변화는 모두 투자 의사 결정에 중요한 정보다. 하지만 국내적으로 볼 때 앞으로 다가 올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역시 저출산에 따른 인구의 정체 또는 감소와 고령화라고 할 수 있다.인구 감소, 고령화로 실질 잠재성장률 하락그렇다면 국내에서 나타날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경제와 자본시장, 즉 개인적인 투자 환경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 것인가. 필자는 투자 환경의 변화 중 채권으로의 자금 흐름이 가장 중요한 변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첫째,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국내 투자를 위축시키고, 나아가 실질 잠재성장률 수준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크다. 생산을 할 수 있는 노동력이 줄고, 국내 저축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질 잠재성장률 하락은 결국 해당 국가의 기대수익률 하락, 즉 실질금리 하락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반면 실질 기대수익률의 하락은 자산 가격의 하락을 동반할 가능성이 높다. 즉, 채권 보유가 여타 자산 보유에 비해 유리해진다는 얘기다.이와 관련해 최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유럽의 경우 인구 고령화로 인해 현재 2.1% 수준의 실질 잠재성장률이 2050년께 1.2%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둘째,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장기적으로 안전하고 고정적인 수익을 내주는 자산, 즉 장기 채권 수요를 증대시킬 것이다. 고령층의 경우 일반적으로 재산 형성이 마무리된 상황이기 때문에 무리한 투자를 하지 않는 경향이 많다. 생활비 충당을 위해 주기적이고 예측 가능한 수입이 보장되는 자산을 선호하게 된다는 얘기다. 결국 고령층의 수요 증대와 함께 장기 채권 가격은 꾸준하게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셋째, 고령층이 늘어나는 시기 동안 연금 자산의 증가에 따라 채권 수요가 커질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줄어든 생산 가능 인구가 고령화되는 시기가 도래하면 다시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향후 20년 동안에는 해당 계층이 노동 가능 시기부터 납부한 연금 자산이 계속해서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축적된 연금 자산은 상당 부분 안정적이고 고정적인 수익을 내 주는 장기 국채에 투자될 것으로 판단된다.물론 연금 자산의 증가는 장기 채권뿐만 아니라 주식, 부동산, 해외 자산 등 여타 자산에 대한 수요도 증대시킬 것이다. 특히 국내 연금은 지금까지 주로 국내 채권 투자에 집중돼 왔기 때문에 자산 배분의 변화 과정에서 주식이나 부동산, 또는 기타 대안적인 투자가 늘어나 채권 투자가 상대적으로 부진할 수 있다. 지난 2년만 보더라도 채권으로부터 다른 자산으로의 배분 변화 현상이 뚜렷하게 관찰된다.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부동산이나 주식, 해외 자산 모두 안정성 측면에서는 국내 채권에 못 미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선 부동산의 경우에는 인구 감소에 따른 수요 감소와 고령화에 따른 소득 정체로 인해 물가 상승 이상의 가격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내적으로 보면 베이비 붐 세대가 198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중반에 각각 수요 붐을 일으켰지만, 이들이 고령화될 경우 수요 붐은 재현되기 어렵다. 다만, 자산 축적의 분화에 따른 양극화로 일부 지역의 부동산 가격만 강세를 나타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선별적인 투자만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주식의 경우에도 조심스럽다. 자산 배분 변화에 따른 개인들의 주식 보유 비중 확대나 장기 투자 대안으로서의 주식 가치 재평가 현상이 일정 기간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겠지만,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오히려 늘려 놓은 주식 비중이 매물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지금 베이비 붐 세대가 매입한 주식은 이들이 고령화됐을 때 오히려 매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안정 지향 고령 계층의 채권 수요 커질 듯한편, 해외 자산 투자는 환율 변화의 불확실성에 노출돼 있다. 물론 인구 감소 및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금융자산 축적에 대비한 국내 투자 기회가 사라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해외 투자는 계속 투자자들의 관심거리로 남아 있을 것이며 전체적인 규모도 늘어날 것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높은 국가의 자산에 대한 국내 수요는 꾸준하게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와 이머징 마켓의 대규모 저축으로 요약되는 글로벌 불균형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환율 불확실성은 쉽게 가시기 어렵다.넷째, 저출산·고령화에 따라 진행될 투자 장기화의 가장 큰 위험 중 하나인 인플레이션 위험을 헤지하는 데 있어서도 채권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특히 글로벌 경제는 지난 20년간 중국 인도 등 저임금 노동력 국가에 대한 아웃소싱을 기반으로 낮은 물가를 향유해 왔는데, 이제는 그 효과가 줄어드는 모습이다. 소득이 늘어난 국가들의 수요가 원자재 등의 가격 상승 압력을 높이고 있고, 임금 상승 압력도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한편 이 경우에는 일반적인 고정금리 채권보다 인플레이션 헤지에 효과적인 물가 연동 채권이 상대적으로 관심을 끌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인플레이션 헤지 방법에 물가 연동 채권 매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건비, 자재비 상승이 즉각적으로 반영되고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커질 때 비 보유자의 매수 욕구가 급격하게 살아나는 부동산 역시 인플레이션 헤지를 위한 수단으로 선택될 법하다. 하지만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인구 감소 및 고령화 추세는 부동산 가격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서의 부동산의 매력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이처럼 여러 측면에서 국내 채권, 특히 장기 채권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 시대에 가장 알맞은 투자 대상으로 여겨진다. 실질 기대수익률이 하락할 때 원금 가치가 오히려 상승하고 자산의 성격이 고령화 세대의 성향과 지출 패턴에 적합하며 동 세대의 모여진 자금이 주로 쓰일 만한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혹시라도 나타날 수 있는 인플레이션에 대해 헤지할 수 있는 방법도 있으니, 채권 자산에 대한 선호는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물론 인구가 줄고, 고령 인구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정부의 재정 적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재정 적자 규모가 커지면 그만큼 채권 발행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만약 채권 발행이 수요 증가를 압도하는 상황이 나타난다면 지적한 여러 가지 하락 압력에도 불구하고 채권 금리가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금리가 오르면 낮은 금리에 사 놓은 채권의 가치는 떨어지게 마련이다.또한 저축률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해외로 자금이 빠져 나갈 경우 원화 가치 하락과 함께 일시적인 금리 상승 국면이 도래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경우가 발생한다면 우리 정부는 자금 유출을 막고, 해외로부터의 자금 유입을 유도하기 위해 통화·재정정책상 금리 상승을 유도할 것이다.하지만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나타나는 장기적인 금리 하락 추세 하에서 이러한 요인들에 의한 금리 상승은 일시적일 가능성이 크다.결국 우리나라 인구 구조의 변화는 앞으로 자본시장 내에서 국내 채권의 위상을 제고할 가능성이 크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인구 구조의 변화가 진행될 기간 동안 채권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최석원·한화증권 채권전략팀장 swchoi@koreastock.co.kr©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