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주가 ‘출렁’… 베이비붐 세대 ‘힘’

미국과 일본은 인구 변화가 자산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좋은 사례다. 인구 구조 측면에서 한국보다 미국은 10년, 일본은 25년가량 선행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거나 앞으로 겪게 될 엄청난 변화들이 본질적으로 이들 나라에서 10년, 25년 전에 벌어진 상황과 유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미국의 베이비 부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6년부터 65년까지 20년 동안 태어난 7800만 명의 인구를 가리킨다. 반면 한국의 베이비붐은 6·25가 끝난 직후인 1955년부터 1963년까지 9년 동안 나타났다(816만 명). 한국과 미국의 인구 구조 변화에 10년의 시차가 발생한 이유다.모든 걸 바꿔 놓은 ‘마법의 손’일본의 전후 베이비붐은 이보다 기간이 더 짧다. 1947년부터 49년까지 불과 3년 동안 유지됐을 뿐이다. 흔히 ‘단카이(團塊) 세대(680만 명)’로 불리는 바로 그 세대다. 하지만 일본의 경제 및 자산 시장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들보다는 일본 제국주의의 전성기인 1930~39년 태어난 2148만 명의 인구 집단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을 ‘1차 베이비 부머’라고 하면 단카이 세대는 ‘2차 베이비 부머’에 해당한다. 일본의 1차 베이비붐이 시작된 30년을 기준으로 보면 꼭 25년 후 한국에서 베이비붐이 시작됐다는 계산이 나온다.이러한 시차는 흔히 ‘쌍봉 세대’로 불리며 경제 활동이 가장 왕성한 40~50대의 인구 비중이 정점에 다다르는 시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일본은 1990년, 미국은 2005년, 한국은 2015년 전체 인구에서 쌍봉 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최고치를 기록한 다음 점차 하락한다. 이제 관심은 이들 베이비 부머의 등장과 함께 자산 시장에서 벌어진 대격변의 소용돌이로 모아진다.인위적인 인구 억제 정책이 동원되지 않은 미국의 베이비붐은 1946년 시작돼 무려 20년 동안 이어졌다. 조지 부시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과 스티븐 스필버그가 1946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첫 주자들이다. 이들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시작해 나이를 먹는 매 단계마다 미국 사회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이들의 탄생과 함께 1950년대 기저귀 산업이 처음 등장했다. 10대가 된 베이비 부머는 프렌치프라이드에 열광하며 1960년대 패스트푸드 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었다.모든 것을 바꿔놓는 이들의 ‘마법의 손’의 위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출해 목돈을 손에 쥐면서 처음에는 자동차나 가전제품 같은 내구재를 사들이던 베이비 부머들은 곧이어 주택 구입에 나서게 됐다. 이전에 볼 수 없던 거대한 인구 집단의 엄청난 주택 수요로 1970년대 미국의 부동산 시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때 1970~80년대 미국의 부동산 붐을 불안한 눈길로 보고 있던 경제학자가 있었다. 바로 경제학 교재의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맨큐의 경제학>을 쓴 하버드대 그레고리 맨큐 교수였다. 그의 의문은 단순했다. 베비비붐 세대의 주택 수요가 끝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맨큐 교수는 1989년 논문에서 1970~80년대 미국의 집값 상승은 베이비 붐 세대의 신규 주택 수요에 원인이 있다고 분석하고, 이들의 수요가 점차 줄어들면서 실질 주택 가격은 20년 후인 2007년 47% 폭락할 것이라는 불길한 전망을 내놓았다. 결과적으로 맨큐 교수의 걱정은 기우로 그치고 말았다. 올해에도 미국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다.주식시장의 경우도 극적이긴 마찬가지다. 40대에 접어든 베이비붐 세대는 예금 금리가 하락하자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 주식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미국 주식시장은 1985년 이후 장기 상승세를 이어갔다. 1985년 뮤추얼 펀드가 미국의 가계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에 불과했지만, 2000년 그 비율은 10%까지 치솟았다. 전체 인구에서 40~60세 인구 비중의 변화와 실질 S&P500지수의 움직임은 그대로 겹친다.문제는 베이비붐 세대의 대규모 은퇴라는 새로운 변수다. 미국 베이비 부머의 첫 주자인 1946년생들이 지난해 60세 정년을 맞이했다. 앞으로 매년 400만 명가량이 이 대열에 합류한다. 그동안 상당수 베이비 부머들은 주식, 채권 등에 투자해 은퇴를 대비해 왔다. 이제는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를 처분해야 하는 시기가 된 셈이다. 이들이 자산을 팔아치우기 시작하면 자산 가격은 대폭락할 가능성이 높다. 매물을 받아줄 뚜렷한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는 이들에 비해 너무 숫자가 적고, 연기금은 이들에게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오히려 주식을 팔아야 할 처지다. 바로 ‘자산 시장 붕괴론’의 시나리오다. 베이비 부머들이 1980~90년대 주가를 끌어올렸던 것처럼, 이제는 이들이 자산 가격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예측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40~50%의 주식 가격 폭락을 예상하기도 한다.단카이 세대 퇴직에 불안보다 기대감 커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관련한 미국의 불안감은 상당 부분 일본의 경험에서 유래한다. 일본 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은 1990년 충격적으로 무너져 내렸다. 이와 함께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의 고통이 시작됐다. 1990년은 바로 1차 베이비붐 세대가 60세 정년을 맞기 시작한 첫해이자, 40~50대 ‘쌍봉 세대’의 비중이 정점을 기록한 해다. 엔고를 가져온 1985년 플라자 합의, 실패한 금리 정책, 지나친 투기 열풍 등 다양한 분석에도 불구하고 인구 구조 변화가 1990년 버블 붕괴의 근본 원인일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1차 베이비붐 세대의 사회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1950년부터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갔다. 특히 1980년 중반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일제히 급등했다. ‘도쿄를 팔면 미국 전체를 살 수 있다’고 하던 시절이었다.1990년 ‘악몽의 해’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주식시장도 유례없는 활황을 연출했다. 1980년대 말 일본 주식시장의 시가 총액은 미국을 추월했다. 세계 자본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1%에 달할 정도였다. 1985년 1만5000을 밑돌던 닛케이225지수가 1989년 말에는 4만을 돌파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금리를 올리자 상황은 돌변했다. 일본 주식시장은 1929년 미국의 대공황 때보다 훨씬 큰 폭으로 추락했다. 1992년 7월 1만5000 밑으로 떨어졌고 그 이후 하락을 거듭해 2003년에는 8000선마저 무너졌다.최근 일본은 또 다른 시험대에 들었다. 2차 베이비 부머인 680만 명의 단카이 세대가 올해부터 60세 정년을 맞기 때문이다. 이들은 1차 베이비붐 세대 2148만 명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47~49년생까지로 세 연령대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더구나 이들은 전후 일본의 고도 성장을 이끈 주역들이다. 또한 이들은 이전 어떤 세대보다 부유하다. 일본의 단카이 세대는 2004년 기준으로 130조 엔가량의 개인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뿐이 아니다. 향후 3년간 이들에게 지급될 퇴직금 규모만 해도 약 47조 엔에 달한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50%에 맞먹는 수준이다.흥미롭게도 단카이 세대의 대량 퇴직을 맞은 일본의 분위기는 불안감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들이 보유한 막대한 자산이 어디로 향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들떠 있는 분위기다. 단카이 세대는 1960년대 고도 성장기를 이끌어 왔다는 자부심이 강하고 이전 고령 세대에 비해 생활을 즐길 자격이 있다는 의식이 강하다. 노년층을 겨냥한 의료 관련 시장은 2002년 56조 엔에서 2010년 75조 엔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단카이 세대들이 은퇴 후 주택 리모델링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전체 주택시장에 활력을 불어 넣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