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번호 26, 원자량 55.85, 비중 7.85의 금속 원소. 바로 화학기호 Fe를 쓰는 ‘철’이다.단단하게 결합돼 가장 안정된 원자라고 평가받는 철은 인류 문명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다.철기시대 이후 철은 농기구과 무기로 시작해, 문고리 등 간단한 도구에 사용됐다.18세기에 이르러서야 철이 건축물의 주재료로 떠올랐다. 1779년 세계 최초의 철교‘아이언브리지’가 영국 콜브룩데일에 건립되며 토목 공사 재료로 철이 각광받게 됐다.‘철로 다리를 만든다’는 것은 당시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며근대화를 앞당긴 아이언브리지는 이후 ‘산업혁명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철의 산업화 시대’를 열었던 영국을 밀착 취재했다.콜브룩데일·런던·에든버러(영국)= 이효정 기자협찬=POSCO▷아이언브리지 찾아가는 길= 영국 런던 유스톤(Euston) 역에서 기차에 타면 2시간 30분~3시간 후 텔포드 센트럴(Telford Central)역 도착. 역 하차 후 택시를 타면 10분 뒤 아이언브리지에 도착. 기차 시간은 www.nationalrail.co.uk에서 확인 가능.인간이 철을 처음 만난 시기는 언제일까. 정밀한 기록의 부재로 아직까지도 철을 어떻게 발견해서 썼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다만 여러 상황으로 ‘철의 발견’을 미뤄 짐작하고 있다. 이 가운데 ‘산불설’과 ‘채광착오설’ 등이 있다.‘산불설’은 산불이 난 뒤 산에서 흘러내린 말랑말랑한 쇳덩어리(철괴 또는 해면철)를 보고 철의 존재를 알게 됐다는 가설이다. 인간이 처음 사용한 금속은 구리였다. 구리가 들어 있는 광석을 녹여 주조하는 과정에서 철광석을 청동의 원료인 동광석으로 착각, 용해로에 녹이다가 철을 발견했다는 설도 있다. 이게 바로 ‘채광착오설’이다.철의 첫 발견 자체는 불분명하지만 최초의 철기 개발은 ‘히타이트 제국’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기원전 1300년께 흑해의 남부 아나톨리아(현 터키) 지역을 통치하던 히타이트 제국은 철을 녹여 야금하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 히타이트인은 철로 농기구뿐만 아니라 무기도 만들었다. 이들이 아나톨리아를 장악한 대제국이 된 데에는 무엇보다 철로 만든 무기의 힘이 컸다. 히타이트 제국은 기원전 1190년께 서방의 침입으로 멸망당했지만 철야금 기술은 급속히 퍼져갔다. 서아시아 지방과 이집트, 이란 지역에 이어 실크로드의 초원 지대를 따라 중앙아시아, 중국, 우리나라에도 전파됐다. 곧 철을 잘 다루고 많이 확보하는 민족이 부국강병을 이루는 시대가 열렸다.철기 문화를 발판으로 현대 문명이 진화한 것은 18세기 산업혁명 영국에서다. 철기시대 이후 영국은 역사 깊은 철 생산 강국이었다. 영국에는 질 좋은 철광석이 대량 매장돼 있었다. 영국으로 이동한 켈트족은 전통적으로 대장장이로 알려져 있다. 중세를 거쳐 산업혁명 시대까지 철 개량의 대부분이 영국 기술자를 통해 이뤄졌다.철의 시대 초기에는 목탄(숯)을 연료로 선철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선철은 건축물의 부품과 장식, 기둥, 출입구의 인방보, 계단의 난간 등에 사용됐다. 하지만 목탄을 이용한 제철법은 용도에 제한이 있었다. 또 연료인 나무의 부족으로 한계에 부닥쳤다.그러던 중 1709년 영국 콜브룩데일(Coalbrookdale)의 에이브러햄 다비 1세(1678~1717)가 쇠를 녹이는 주연료로 목탄 대신 석탄을 사용했다. 광물성 연료인 코크스를 고로(용광로)에 사용하는 ‘코크스 제철법’을 개발, ‘선철’을 만들어 낸 것이다. 덕분에 보다 큰 고로 제작이 가능해졌다. 이어 화폐 주조기, 철로, 증기 기관 등을 만드는 데 필요한 철강을 더욱 많이 생산하게 됐다. 품질이 한층 향상된 철의 발명은 18세기 후반에 비롯됐다. 이 역시 1784년 콜브룩데일에서 이뤄졌다. 이 지역 제철소 직원이던 헨리 코트(1740~1800)는 끊는 쇳물을 휘젓는 방법(퍼들법)으로 ‘연철’을 만들어냈다. 콜브룩데일에서 다비가 ‘선철’을 선보였지만, 코크스로 제조된 선철은 인과 유황이 다량 함유돼 목탄철보다 품질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선철 시대에서 연철로 진화시킨 퍼들법은 정련법의 대혁명으로 일컬어질 정도다. 철의 역사에서 큰 전진으로 평가받는다. 퍼들법으로 정련한 철은 퍼들철 또는 연철로 불리게 됐다. 결국 연철은 주철, 선철을 밀어내고 건축 구조물에 본격적으로 쓰이게 됐다.연철 개발로 철 생산량은 획기적으로 증가했다. 사용 범위도 급진전됐다. 연철이 생산된 지 불과 40여년 만인 1825년에는 세계 최초의 철도인 ‘영국 스톡턴~다링턴 구간 철도’가 개통됐다. 기차를 달리게 한 것은 ‘철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조지 스티븐슨(1781~1848)이었다.영국 기술자는 ‘철의 마술사’영국은 철을 밑천 삼은 산업혁명을 자랑하듯 1851년 투명한 궁전 건축물인 ‘수정궁’을 전 세계에 선보였다. 런던 하이드파크의 전시장에서 세계 최초의 만국 박람회를 열면서 선보인 건축물이었다. 이 구조물의 제작자인 조지프 팩스턴은 돌과 벽돌 등 전통적인 소재가 아닌 유리와 주철, 연철만을 사용해 수정궁을 만들었다. 목조와 석조 건물만 봐왔던 유럽 다른 나라의 사람들은 감탄사를 절로 내뱉으며 세련된 스타일을 선보인 새 양식의 건축물을 구경했다. 수정궁은 결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철과 석탄의 시대를 맞이한 산업혁명의 선두주자 영국’을 상징하게 됐다.영국이 19세기 중반 세계 만국 박람회장에 수정궁을 선보였지만, 사실 철을 사용한 첫 구조물을 이보다 70년 정도 앞서 건립됐다.1779년 영국 콜브룩데일에 세워진 아이언브리지다. 번역하면 그대로 ‘철교’라는 의미인 아이언브리지는 세계 최초의 철교다. 보통명사가 고유명사가 된 경우다. 아이언브리지는 영국 슈롭셔 지방 텔포드의 콜브룩데일(Shropshire Telford Coalbrookdale)이라는 지역에 있다. 이 마을 인근에서 가장 큰 도시는 버밍엄이다. 텔포드는 버밍엄 뉴스트리트라는 역에서는 기차를 타고 30~40분 거리에 떨어져 있다. 텔포드에서 택시를 타고 10여분 가면 콜브룩데일에 도착한다. 이 지역은 콜브룩데일 대신 ‘아이언브리지 고지(Gorge: 골짜기, 협곡)’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다리 하나가 지역 이름까지도 바꾼 것이다.기자가 찾아간 콜브룩데일은 작고 조용한 마을이었다. 제철 공장의 가동 소리를 역사 저 멀리 뒤로 한 채 세번(Severn)강은 유유히 흘렀다. 한때 제철소와 고로로 산업화의 뿌리 역할을 했던 이 마을은 지금은 관광지로 개발돼 있다. 영국형 민박인 B&B(Bed&Breakfast)와 아기자기한 선물 가게, 식당이 아이언브리지 주변을 감싸고 있다.세번강 계곡에 걸쳐 놓은 아이언브리지 자체는 사실 그리 큰 다리는 아니다. 이 다리는 총길이가 42.7m(철제 부분 30.6m)이고 아치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이 지역 제철소 직원인 헨리 코트가 연철을 만들기 전이었던 만큼 다리 재료는 ‘주철’이었다.물동량 늘어 철교 건설 ‘아이디어’100m 달리기를 20초대에 주파하는 운동 신경이 그리 발달하지 않은 사람도 10~15초만 뛰면 다리 끝까지 건널 수 있는 규모다. 아담한 사이즈를 보이지만 철로 만든 세계 최초의 다리라는 점을 인정받아 198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아이언브리지 고지 박물관 신탁회사의 데이비드 드 한 교육담당 국장은 “18세기 중반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서 물동량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세번강은 유럽에서 물동량이 두 번째로 많은 곳이었다. 한 국장은 이어 “기존의 다리보다 훨씬 튼튼한 다리를 건설할 필요가 있었다”고 덧붙였다.당시 건축가 토머스 프리처드는 주철로 다리를 만들자는 의견을 냈다. 돌 또는 나무 다리에만 익숙해 있던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 프리처드의 주장은 허공을 맴도는 비현실적인 얘기로만 여겼다.이때 에이브러햄 다비 3세(1750~91)가 나타나 프리처드의 얘기를 현실로 만들었다. 다비 3세의 할아버지인 다비 1세가 18세기 초반 ‘코크스 제철법’을 개발한 뒤 다비 가문은 큰 부를 축적하게 됐다. 다비 1세의 아들인 에이브러햄 다비 2세(1711~63)는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아 철 정련 과정을 더욱 발전시켰다. 다비 2세는 증기 실린더의 원리를 처음 밝혀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처럼 ‘철의 명가’로 자리 잡은 가정에서 자라난 다비 3세는 가문의 기술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첫 철교 건설에 도전했다.다비 3세는 아이언브리지 건설을 위해 자신의 재산 3000파운드를 내놨다. 지금의 가치로 따지면 천문학적인 돈이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이런 다비 3세의 도전을 두고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결국 그는 1777년 11월 착공해 1779년 5월 철교를 완공했다. 소요된 철강은 378톤이었다.이후에도 다비 가문은 철로와 증기기관차, 강철 수도관 등을 연이어 개발하며 제철 산업 발전사에 큰 획을 그었다.<제국에서 유럽까지(From Empire to Europe)>라는 책을 집필한 <파이낸셜타임스> 기자 출신의 저자 제프리 오웬은 “영국의 발명자들이 철 제조 기술을 이끈 뒤 19세기 중반까지 영국은 가장 큰 철의 생산자이자 수출자였다”면서 “특히 ‘베세머 제강법’ 개발 이후 철은 보다 다양한 기계 제작에 쓰이며 폭 넓게 쓰이게 됐다”고 설명했다.‘베세머 제강법’은 헨리 베세머(1813~98)가 개발한 기술로 철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그의 존재로 강철이 탄생하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철과 연철이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초에 이르는 제1차 산업혁명의 씨앗이 됐다면, 강철은 제2차 산업혁명의 촉매제였다.‘베세머 제강법’은 생산성이 특히 높았다. 10톤의 철을 정련하려면 기존의 퍼들법으로는 3일이 걸렸다. 하지만 베세머법으로는 20분 만에 일사천리로 해결됐다. 그는 1860년대 셰필드의 제강 공장에서 베세머 제강법으로 조업을 시작, 거부로 떠올랐다. 1871년 영국철강협회 회장으로 취임했고 1879년에는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강철의 대량 생산으로 영국은 ‘대영제국’으로 발돋움했다. 강철로 만든 대포와 총으로 영국은 아시아, 아프리카를 정복했다. 식민지에는 강철로 만든 철로를 놓았다.아이언브리지는 세계 최초의 철교지만 주철로 제작됐다. 주철이 아닌 강철로 만들어진 다리도 역시 영국에서 가장 먼저 선보였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와 파이프(Fife) 지역을 연결하는 포스교(Forth Bridge)다. 1883년에 착공돼 1890년에 완공한 포스교는 2.5km의 길이를 자랑하며 긴 다리의 등장을 알렸다.기자 눈에 비친 스코틀랜드의 포스교는 117년의 역사를 지닌 다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붉은색 칠을 한 포스교 위로는 기차가 달리고 있었다. 강철로만 제작된 다리답게 오랜 세월이 지나도 견고성을 잃지 않았다. 5만4000톤의 철이 재료로 사용된 포스교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포스교 방문자 센터 홈페이지(www.forthbridges.org.uk)에서 확인할 수 있다.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기술자를 대거 보유한 덕에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영국의 철강 제조 분야가 총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1.5%에 못 미친다. 영국 철강 기업들은 1980년~90년대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거친 후 소수의 회사들만 남고 폐쇄된 상태다. 올해 초에는 영국의 철강 기업인 코러스가 인도 타타스틸에 인수당했을 정도다.김상욱 KOTRA 런던무역관장은 “고임금 등의 이유로 영국에서 철강 산업 등 제조업은 사양산업이 됐다”면서 “영국은 현재 금융 등 서비스 산업에 무게를 싣고 있다”고 설명했다.영국철강협회의 데이비드 어바인 회장은 “지난 10년간 전 세계 철강산업은 큰 변화를 맞아 인수·합병(M&A)을 통한 대형화가 대세가 됐다”면서 “제조업 비중이 낮아지고 있는 영국이 유럽의 탈공업화(deindustrialisation)를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이런 환경 속에서 영국의 철강 회사들은 틈새시장을 찾는 전략을 취해야 할 것”이라며 “항공우주, 자동차, 에너지 등으로 분야로 특화해 철 제품을 공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용어 설명쪾선철(銑鐵, pig iron)= 용광로에서 만든 고탄소철. 무쇠라고도 한다. 탄소 함유량이 1.7~4.5%다. 철의 원료인 탄소(C), 규소(Si), 망간(Mn), 황(S)이 들어 있다.쪾주철(鑄鐵, cast iron)= 주물용으로 사용되는 고탄소철. 탄소 함유량이 2% 이상이다. 탄소 외에 규소가 1∼2% 들어 있다. 용융점이 낮고, 거푸집 안에서 유동성이 좋아 주물용 금속으로 널리 이용된다.쪾연철(軟鐵, soft iron)= 탄소가 거의 들어 있지 않은 철(0.01% 이하). 무르고 전성(展性), 연성(延性)이 풍부하며 자성을 갖기도 쉽다. 반면 자기를 잃기도 쉽다. 연강 또는 뜬쇠라고도 불린다.쪾강철(鋼鐵, steel)= 탄소가 0.1~2% 들어 있는 철의 합금. 열처리에 따라 성질을 변화시킬 수 있어 기계 선박 건축물 등에 쓰인다.쪾코크스(cokes)= 석탄이나 석유에서 생산되는 탄소를 주요 성분으로 하는 고체. 코크스의 원료는 석탄(coal)이다. 철을 만들기 위해 철광석이 고로에서 환원 과정을 거칠 때 코크스의 탄소가 환원제 역할을 한다.INTERVIEW스티브 밀러 아이언브리지 고지 박물관 신탁회사 사장유적지 관리 ‘벤치마킹 모델’아이언브리지는 민간 기업이 운영 중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까닭에 정부가 관리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었다. 1967년 설립된 아이언브리지 고지 박물관 신탁회사(The Ironbridge Gorge Museum Trust)가 150여 명이 직원과 함께 문화유산을 관리하고 있다.이 회사의 전문경영인인 스티브 밀러 사장은 “유료 방문객 30만 명, 무료 방문객을 포함해 60만 명이 아이언브리지를 방문했고 연간 6만 명의 학생이 단체 견학을 온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영국 정부 또는 지자체에서 정기적인 예산을 받지 않는 독립채산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연 310만 파운드(57억 원)의 매출액을 올리고 있다. 이 가운데 절반은 박물관 입장료이며 40%는 박물관 관련 제품 판매, 10%는 기부금과 후원금이다.밀러 사장은 “아이언브리지는 영국 전통 유산 복권 펀드(Heritage Lottery Fund)와 유럽연합의 유럽 지역 개발 펀드(European Regional Development Fund)의 후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언브리지 고지 박물관 신탁회사는 10개의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밀러 사장은 “콜브룩데일 ‘철 박물관’, 다비 가문의 역사를 담은 ‘다비 하우스’,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빅토리아 시대를 재연한 ‘블리스트 힐 빅토리아 타운’ 등 각기 다른 성격의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버밍엄대와 합작회사를 만들어 버밍엄대의 전통 유산 관리학과(Heritage Management), 박물관 경영학과(Museum Management) 학생들을 교육한다”고 덧붙였다. 홈페이지(www.ironbridge.org.uk)에도 방대한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유적지 관리의 벤치마킹 모델이 되고 있다.INTERVIEW앤드루 그린 리버풀대 공과대학 박사철광석·코크스·석회 ‘풍부’… 철교 ‘탄생’영국 리버풀대의 앤드루 그린 박사(공과대학·재료공학)는 철강 교육 전문가다. 그는 국제철강협회(IISI)가 운영 중인 ‘철강대학’ 웹사이트(www.steeluniversity.org) 개발을 맡았다. 그린 박사는 “2004년 문을 연 웹사이트는 대학생, 대학원생, 철강업 종사자 등을 대상으로 철강 분야 이론과 기술을 무료로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세부 내용은 그린 박사팀 주관 아래 세계 유수 대학과 연구소의 철강 전문가들이 집필했다. 사이버 ‘철강대학’은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등으로 서비스되고 있다. 현재 한국철강협회는 한국어 번역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재료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린 박사는 리버풀대에서 1994년부터 일하고 있다. 아이언브리지를 수차례 찾았던 그는 “인간이 만든 세계 최초의 철다리인 아이언브리지를 ‘철강대학’ 웹사이트 철강의 역사 부분에 언급했다”고 말했다.그는 “철을 만들기 위해서는 철광석과 코크스, 석회가 필요하다”면서 “콜브룩데일이 석탄(coal), 시내(brook) 마을(dale)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는 만큼, 이 지역에는 철에 필요한 원료가 풍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덕분에 콜브룩데일에서 ‘코크스 제철법’과 철교가 탄생할 수 있었다”면서 “하지만 콜브룩데일의 철 제조 원료가 점점 고갈돼 가는 동시에 19세기 중반 베세머가 강철을 개발하며 철강 산업의 중심지가 콜브룩데일에서 영국 셰필드로 옮겨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