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가 ‘싱긋’…명품 소비 ‘와우’

유통 업계에서 경기 회복의 조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재래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백화점, 할인점, 인터넷몰 등 업태를 막론하고 ‘달아오르고 있다’는 분위기는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매출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폭이지만 신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 회복의 영향이라고 보기엔 미흡하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백화점 5월 판매 ‘좋네’유통업 중에서 경기가 회복되면 가장 먼저 매출이 오르기 시작하는 업태가 백화점이다. 이용 고객이 중산층 이상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비에 대한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판매하는 제품도 생활필수품보다 의류, 화장품, 가전 등이 주류여서 경기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는다고 할 수 있다.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 등 대형 백화점의 매출은 올 들어 서서히 상승세를 타고 있다. 1~5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5% 정도 신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연초엔 명절 특수가 전년에 비해 컸다. 현대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연말부터 좋은 분위기가 형성되다가 1~2월 선물 시즌에 큰 폭의 매출 신장이 있었다”며 “특히 갈비나 곶감, 굴비 등 선물용 식품의 매출이 전년에 비해 10% 이상 늘어났다”고 말했다.하지만 연초의 ‘좋은 분위기’는 4월까지 지속되지 못했다. 지난해 수준이거나 감소하는 모습이었다. 지난해 4월은 쌍춘년 효과로 혼수용품이 불티나게 팔리며 매출이 껑충 뛰었지만 올해는 이렇다 할 성장을 나타내지 못했다는 설명이다.백화점의 매출 신장을 이끌고 있는 품목은 ‘명품’이다. 20대 여성들의 명품 소비가 증가하면서 큰 폭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매월 15~20% 정도 매출이 불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50~60대의 소비 증가도 전에 없던 현상이다. 고객 수와 구매량 모두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사교육이나 주택 대출 등으로 소비 여력이 적어지고 있는 30~40대에 비해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어서 새로운 소비 주도층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업계는 분석한다.백화점 경기를 판단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 알려진 남성 정장의 매출은 제자리걸음 상태다. 대신 넥타이나 지갑 등 소품의 판매가 많아졌다. 여성용품도 마찬가지다. 의류 매출은 변화가 없지만 가방, 지갑, 모자 등은 잘 팔리고 있다. 이와 관련, 롯데백화점의 임형욱 과장은 “의류보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소품으로 자신을 꾸미고자 하는 욕구를 채우고 있는 것”이라며 “외환위기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큰 폭은 아니라도 매출이 늘고 있는 만큼 경기 회복의 수혜를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할 수도 있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속단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5% 정도의 매출 신장은 경기 회복의 효과라 하기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임 과장은 “매출 곡선이 매월 들쭉날쭉하는 파도 모양을 그리고 있어 본격적인 경기 회복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며 “매출 신장이 5% 이상 지속적으로 유지돼야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소한 7월까지 5% 이상의 판매 신장이 이어져야 경기 회복을 점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할인점, 때 이른 더위 ‘고마워’할인점 업계의 상황도 백화점 업계와 비슷하다. 적더라도 매출이 꾸준히 늘어나며 전체적으로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는 것. 이마트의 경우 1분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 정도 불어났다. 롯데마트의 경우 신규 점포 오픈 효과로 15% 정도 판매량이 증가했다. 하지만 기존점을 기준으로 하면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4월 매출이 주춤한 것도 백화점 업계와 다름없었다. 이마트는 지난해 수준에 머물렀고 롯데마트는 1~2% 정도 매출이 감소했다. 5월 들어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는 점도 닮았다.할인점은 흔히 불황일수록 호황을 누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비를 줄이려는 고객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때도 할인점 업계는 고속 성장을 이어갔다. 이렇게 보면 할인점 업계의 매출 신장은 경기가 더욱 나빠지는 신호로 읽힐 수도 있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할인점의 매출 신장은 주로 매장 수가 늘어난 데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다.반대로 할인점의 매출 신장에서 경기 회복의 조짐을 읽을 수 있다. 할인점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식품 매출은 종전 수준을 유지하는 반면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의류, 잡화, 생활용품의 판매량은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마트의 이순주 과장은 “생활필수품을 주로 파는 할인점에서 경기의 영향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며 “하지만 비 생활필수품 매출이 증가하는 것을 보면 경기 회복이 있는 것 같다”고 조심스레 점쳤다.5월 들어 할인점 업계의 매출은 4월의 부진을 말끔히 씻어내고 있다. 선물용품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신학기에 많이 팔리다가 4월 이후 판매량이 뚝 떨어지는 패턴을 보인 컴퓨터의 판매가 늘었다. 일찍 찾아온 더위도 할인점 업계의 5월을 들뜨게 하는 요인이다. 과일, 빙과류, 맥주, 냉면 등 여름 품목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5월의 판매 신장을 경기 회복의 전조라 여기기엔 시기상조라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선물용품이 잘 나간다는 것은 소비자들의 지갑이 두툼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경기 회복의 영향이라고 판단하기엔 미흡하다는 것이다.신세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월 매출 목표는 지난해보다 20%가량 많은 1조 원 수준”이라며 “20%는 아니라도 최소한 두 자릿수의 성장이 유지돼야 경기 회복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날씨 효과가 사라지는 8월 이후까지 매출이 늘어나야 경기 회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온라인 쇼핑몰 업계도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다. 지난해 13조 원가량이었던 전체 시장 규모가 올해 15조~17조 원으로 늘어날 것이라던 연초의 전망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는 평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경기 회복의 영향이라고 보기는 쉽지 않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경기 회복과 상관없이 전자상거래는 성장하는 산업이기 때문에 시장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G마켓의 최재준 과장은 “연초에 전자제품의 매출이 예상을 상회했고 여성 의류의 매출은 매월 30~40% 정도 늘어나는 등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지만 경기의 영향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며 “실제 판매자들의 경우 오히려 경기 회복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체감 경기 회복은 좀 더 기다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