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진짜 바닥 쳤나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봄꽃 소식과 함께 찾아왔다. 지난 4월 통계청,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이 내놓은 지표 가운데 소비자 기대, 가계 수입, 신용카드 사용액 등이 ‘회생’의 메시지를 가득 담아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많은 연구자들이 “예상보다 빠른 경기 회복”을 점치며 입을 모았다.5월 들어 기대감을 만발하게 하는 지표들이 추가로 나오기 시작했다. KDI가 지난 5월 10일 내놓은 ‘2007 상반기 경제전망’ 보고서는 낙관론에 불을 댕긴 계기가 됐다. 이 보고서는 1분기 4.0%였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분기 4.4%, 3분기 4.5%, 4분기 4.7%로 하반기로 갈수록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6년 1분기 6.3%를 정점으로 하락했던 성장률이 둔화 추세 완화에 이어 앞으로는 완만하나마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이다. KDI는 또 “내수와 관련된 서비스 생산이 완만하게 개선되고 있고 투자 증가세가 이어지면서 소비도 증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책 경제연구소가 ‘경제가 되살아나고 있다’며 앞장서서 희망가를 부른 셈이다.한국은행도 동참했다. ‘1분기 실질 GDP’ 자료를 발표하면서 “1분기에 경기 저점을 통과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의견을 내놨다. 더불어 국내총소득(GDI)은 전년 대비 3.5~3.6%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5월 11일엔 코스피지수가 종가 기준으로 사상 첫 1600을 돌파하며 최고치 행진을 시작했다. 4월 11일 1500 돌파 이후 꼭 1개월 만에 1600 고지를 넘은 것이다. 이 ‘사건’이 강력한 경기 회복 신호로 추가됐음은 말할 것도 없다.이처럼 한국 경제호는 현재 순항 중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수많은 지표들이 ‘맑음’ 또는 ‘갬’ 표시를 하고 있다. 특히 소비, 설비투자, 고용률 등의 지표는 보는 이로 하여금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할 정도다.소비 관련 지표부터 보자. 경기, 생활 형편, 소비 지출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를 나타내는 소비자기대지수는 1년 만에 처음으로 100을 넘겼다. 심리뿐만 아니라 실제 소비를 나타내는 지표도 뚜렷한 상승선을 그리고 있다. 신용카드 사용액은 지난 3월 20조5670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2.1%나 증가한 데 이어 4월에도 20조679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6.2% 늘었다. 입학 및 졸업 특수로 통상 4월보다 3월의 카드 사용액이 많은 것을 감안하면 예사로운 신호는 아니다.흔히 ‘경기 바로미터’로 이용되는 사무용 건물의 공실률 추이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감정원이 1분기 서울 강남 마포 여의도 강북 도심 등 4대 권역의 10층(연면적 3000평) 이상 주요 업무용 빌딩 150동을 표본 조사한 결과 공실률은 2.16%로 2003년 4분기(2.74%) 이후 처음으로 2%대로 떨어졌다. 반면 임대료는 강남권의 경우 전기 대비 3.5% 오른 평당 529만 원으로 조사됐다. 업무용 빌딩 시장이 달아오른다는 것은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해석되곤 한다.지표와 현실 ‘따로 또 같이’기업의 설비 투자 역시 바람직해 보인다. 설비 투자 증감은 내수에 직간접적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 동향이 늘 관심거리다.우선, 증가세가 뚜렷하다. 2002년 23조7000억 원 수준이었던 설비 투자 규모가 2006년 46조9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1분기의 경우 설비 투자 증가율이 11.2%에 달했다. 특히 은행의 기업 대출 가운데 상당액이 설비 투자 자금으로 투입되고 있다는 점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의 기업 대출 증가액 가운데 설비 자금 용도로 대출된 금액은 5조9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은행권 대출→ 설비 투자 확대→ 생산성 확대→ 수출 강화 및 내수 경기 진작의 선순환을 기대할 만하다.설비 투자 증가는 기업 구조조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에 대해 KDI 임경묵 연구위원은 최근 ‘재무 구조조정 측면에서 살펴 본 최근의 설비 투자 추세’ 보고서를 통해 “기업들의 재무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서 설비 투자가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 연구위원은 “설비 투자 증가율이 2001~02년 연속 마이너스를 보이다 2003년 32.8%로 올라선 이후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기업들의 수익 증가세만 유지되면 설비 투자는 안정적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진단했다.고용률과 실업률 지표 또한 나쁘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 통계청이 조사한 4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취업자는 2352만 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27만8000명(1.2%) 증가했다. 고용률 역시 60.2%로 전년 동월 대비 0.1%포인트 상승했다. 반면 실업률은 3.4%로 전년 동월 대비 0.1%포인트 하락했다. 이 수치는 일본의 4.1%보다 낮은 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서도 최저 수준이다.그러나 콧노래를 부르는 지표만 있는 것은 아니다. 5월 한국 경제 부활의 기대감에 제동을 거는 ‘사실’들이 적지 않다. 한층 더 우려스러운 것은 밝은 지표로 낙관론에 힘을 싣는 소비, 설비 투자, 고용률 및 실업률에서 모순 또는 상반되는 통계들이 나와 있다는 점이다.먼저 유통 업체 매출 추이를 보자. 신용카드 사용액 증가 등 소비 지출 상승세와 달리, 대형 마트와 백화점은 2개월 연속 매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산업자원부 통계에 따르면 올 4월 대형 마트의 매출은 전년 대비 5.5% 감소했고, 백화점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2.3% 감소했다. 특히 대형 마트는 가전 문화 제품을 제외한 전 부문에서 매출이 감소했고 백화점은 명품과 아동 스포츠를 제외한 전 부문에서 감소세를 나타냈다.소득 부문에서는 양극화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상위 20%와 하위 20% 간 격차를 나타내는 소득5분위배율 추이를 보면 2003년 7.23배에서 올 1분기에는 8.4배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격차가 점진적으로 벌어지는 모양새였지만 올 들어 급격한 양극화가 두드러지고 있다.설비 투자 증가 지표에도 적지 않은 모순이 숨어 있다. 설비 투자는 크게 늘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생산은 그에 못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1분기 설비 투자 증가율은 11.2%로 두 자릿수이지만 기업들의 생산 증가율은 3.3%에 그쳤다. 경기 상승을 미리 예상해 투자를 집행하는 기업들의 평소 움직임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고용률 및 실업률 또한 속내에 다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고용률의 경우 상승세가 확실하지만 그 이유는 50~60대 취업자가 늘었기 때문이라는 게 통계청의 분석이다. 정작 20~30대는 2.0% 이상의 감소를 나타냈고 청년 실업률은 7.6%로 지난해 4월에 비해 0.4% 하락하는 데 그쳤다. 게다가 4월 취업자 증가수인 27만8000명은 정부의 일자리 창출 목표 30만 명에 8개월째 미달하는 수치다.즉 고용률과 실업률이 겉으로는 안정적인 수치를 나타내고 있지만 젊은층의 고용 환경에는 별 변화가 없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최근 상반기 대기업(공기업 포함) 공채 경쟁률은 평균 116 대 1에 달했고 200 대 1이 넘는 곳도 적지 않았다.분명한 것은 현재 한국 경제가 과거와는 다른 희망을 품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통계 지표들이 우상향으로 방향을 잡고 전진 중이다. 간혹 모순이나 오류가 발견되는 지표는 선·후행의 시간차, 통계조사 대상의 차이, 대내외 변수에 의한 것인 경우가 많다. 실업률의 경우 대학원 진학 등 구직 포기자가 통계상 실업자에서 제외되고, 대기업 중소기업 일용직 구분 없이 조사하기 때문에 실제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또 설비 투자의 경우 새 지폐 발행에 따라 1분기에 은행 ATM 교체 수요가 많았던 게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상승 유지정책 필요한 때’그렇다면 실제 현장 경기는 어떨까. 공통점은 희망을 걸어볼 만하다는 것이다. 유통업의 경우 5월 들어 소폭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산자부 최근 통계는 마이너스 매출을 나타내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다. 특히 백화점 명품 소비가 큰 폭으로 늘어 향후 전체 소비 증가세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명품 부문 매출이 매월 15~20% 정도 불어나고 있다.경기 등락에 큰 영향을 받는 외식업은 대형 패밀리레스토랑을 중심으로 회복세가 엿보이고 있다. 주류 판매는 상승세가 뚜렷해 맥주의 경우 전년 대비 8.4% 증가세를 보였다. 이 밖에 여행 및 레저, 가전제품, 자동차 등 소비 경기와 직결되는 품목들은 모두 소폭 상승세 또는 못해도 현상 유지하는 상태다. 여기에 소비자기대지수 상승과 가계 수입 증가에 대한 기대감까지 더해 앞으로 소비 부문은 증가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내수와 외수가 균형 잡힌 성장 기조를 보이고 있다”면서 본격적인 경기 회복의 시작에 동의했다.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드문 경우지만 경기가 옆으로 횡보하는 L자형 추세나 잠시 회복되다 다시 침체되는 더블딥 추세의 가능성도 숨어있다. 아직 본격적인 경기 회복을 자신하기엔 펀더멘털이 약하다는 지적이다.정부의 ‘경기 부활 자화자찬’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는 5월 들어 〈국정브리핑〉 등을 통해 “2003~04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인위적인 경기 부양을 하지 않고 중장기적 구조조정을 통한 체질 강화에 주력한 결과 내수가 정상 궤도에 복귀했다”는 등의 자평을 내리고 있다. 이에 대해 한 경제 전문가는 “일련의 지표들을 무조건 회복 신호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면서 “체감 지표와의 차이, 거시경제 지표의 개선 원인 등을 찾아내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qsjpark@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