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구매 5% 여성기업에 할당해야’

“30여 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여성경제인협회는 ‘도약의 단계’를 맞이했습니다.”지난 1월 새로 취임한 안윤정 한국여성경제인협회(이하 여경협) 회장은 ‘혁신’에 초점을 맞췄다.국내 패션 업계 대표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안 회장은 1975년 ‘앙스모드’를 설립했다. 국내외 각종 패션쇼를 이끌며 1993년 문화체육부장관상, 1994년 섬유의 날 상공부장관상, 1997년 여성경제인의 날 국무총리상 등을 받았다.1970년대부터 여경협 회원으로 활발히 활동해 왔던 안 회장은 선거를 통해 임기 3년의 5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국내 최대 여성 기업인 단체인 여경협의 회원은 1700여 명에 이른다. 연간 약 100억 원(일반 및 특별회계 포함)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여경협은 경제 5단체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여경협 회장은 아울러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 등 굵직한 대외 직책까지 맡게 된다.여경협의 현황을 간략히 소개하신다면.한국여성경제인협회는 여성기업지원에관한법률에 의거해 설립된 특별법인입니다. 여성 기업의 활발한 활동과 여성 창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국경을 초월한 디지털 시대에 114만 여성 경제인들이 국가 경제의 축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1977년 한국여성경제인실업회로 설립인가를 받은 뒤 1980년 한국여성경제인연합회로 개칭했습니다. 그 뒤 1999년 지금의 이름인 한국여성경제인협회로 설립인가(중소기업청 제99-8호)를 받았습니다. 20여 년간의 연합회 시절을 청산하고 새롭게 협회를 창립한 겁니다. 이제 협회로 출발한 지 8년째를 맞이했습니다.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면서 경제 단체로서의 면모를 갖췄습니다.5대 회장에 취임 후 강화할 부분은 무엇입니까.협회를 명품 브랜드화할 계획입니다. 협회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기업 활동에 프리미엄이 되고 경쟁력 확보의 원천이 되도록 만들겠습니다. ‘여성은 왠지 약하다’는 인식을 바꿔나가 여성에게 일을 맡기면 ‘믿을 수 있다’는 신뢰감을 심어주려 합니다. 아울러 여성 기업인을 위한 경영연구소를 설립하겠습니다. 실체는 있지만 아직까지 활동이 많지 않은 전문화 분권위원회 또한 재정비해 여성 기업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 사업을 강화할 겁니다. 벤처, 건설, 정보기술(IT), 디자인 등 전문과 분과위원회를 더욱 활성화시키려 합니다. 위탁 사업인 여성 창업 지원 사업 또한 업그레이드돼야 합니다. 현재 여경협은 여성에게 창업 업무를 교육하는 ‘실전창업스쿨’과 파티플래너, 웨딩플래너, 인터넷 쇼핑몰 등 ‘전문분야 창업 강좌’ 등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여경협은 여성 창업자를 위해 전국에 14개의 여성비즈니스지원센터를 설립했습니다. 창업 인큐베이터의 역할을 하며 창업자의 회사가 별도의 사무실을 갖고 독립할 때까지 지원하고 있습니다.경영연구소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여경협 회원과 전문가로 구성된 컨설팅팀을 구성해 경영연구소를 설립할 계획입니다. 여성 기업인에게 필요한 정책을 연구하고, 이를 다채롭게 지원하는 곳입니다. 40, 50, 60대 연령층의 1세대 여성 기업인은 사실 본인에게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도 모른 채 기업 경영을 해 왔습니다. 1세대 여성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생계형 사업’을 하게 된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본인의 의지로 사업을 시작한 경우도 물론 있지요. 하지만 남편을 여의고 사업을 물려받는 등 전업주부로 있다가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로 경영에 뛰어든 여성 기업인이 많습니다. 본인의 전공이나 적성과는 관계없이 경영 전선에 나오게 돼 하루하루를 숨 가쁘게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이와 같은 여성 기업인들은 본인의 애로 사항이 무엇인지조차 되돌아 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여성 CEO에게 꼭 필요한 정책을 여경협 주최로 연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공공 구매 5% 여성 기업 할당’을 주장하고 있는데요.조달청의 공공 구매 물량 가운데 5%를 여성 CEO가 경영하는 기업에 할당하는 ‘5% 의무 계약 규정’을 법제화하기 위해 뛰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법규는 일부 해외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공공 구매 시 여성 기업 제품을 우선 구매하도록 권고 사항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제조항이 아니어서 유명무실합니다. 여성 기업인들은 사업할 때 자금과 판로 문제가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판로 확보를 위해 조달청의 공공 구매 중 5%를 여성 기업 제품으로 구매하도록 제도로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역차별 문제도 있는데, 여성 기업을 도와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여성 기업은 주로 후발 업체가 대다수입니다. 후발이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사회적 약자인 겁니다. 늦게 나와 후발일 뿐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도와달라는 겁니다. 우리나라 여성의 저력과 끈기는 대단합니다. ‘억척’이라는 단어를 쉽게 떠올릴 수 있지 않습니까. 아울러 기업 경영을 할 때 투명성이 여성 기업인의 장점입니다. 현재 사회에서 활약하고 있는 남성 가운데 이들의 어머니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교육을 시켰거나 여동생이나 누나의 뒷바라지로 공부를 한 분이 적지 않을 겁니다. 과거 여성의 희생으로 올라선 남성분들이 뒤늦게 나온 여성에게 양보하면 어떻겠습니까. 국내 300만 중소기업 중 115만 개가 여성이 경영하는 기업입니다. 중소기업 가운데 36~38%가 여성 CEO에 의해 운영되지만 매출로 따지면 여성 기업은 아직까지 미미합니다. 여성 기업인이 회사를 세우며 씨를 뿌려 놓은 토양에 각종 정책으로 물을 줘서 싹을 피우자는 얘기입니다.여성 창업 지원의 업그레이드를 언급하셨는데,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입니까.특히 ‘어린이집과 보육원 창업’에 주안점을 둘 생각입니다. 국내에는 고학력이지만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주부가 많습니다. 이들 고학력 여성이 영유아 관련 교육을 일정 시간 이상 받은 뒤 보육 자격증을 받게 하는 제도를 신설했으면 합니다. 소규모의 어린이집을 창업해 원장으로 활동하게 하는 겁니다. 유아교육 업계와 학계의 반대에 부닥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아교육을 전공하지 않은 고학력 여성이라도, 자녀를 직접 키워봤기 때문에 준전문가에 가깝습니다. 이들에게 유아교육을 학습시켜 전문가로 키워낸다는 구상입니다. 물론 유아교육을 전공한 교사를 일정 비율 이상 쓰도록 제도를 보완할 필요는 있습니다. 본인의 자녀 또는 손자·손녀를 키우면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면 효율적이지 않겠습니까. 자기 집이나 아파트 단지의 비어 있는 노인정 관리실을 개조해 어린이집으로 만드는 겁니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다른 집 아이들을 키워주면 어린이집을 창업한 여성에게도, 보육 문제로 고민하는 맞벌이 부부에게도 ‘윈윈(win-win)’입니다. 아울러 혼자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나 손자·손녀를 맡아주는 할머니 가운데 1주일에 한 번도 외출할 수 없다고 토로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린이집을 창업해 교사를 고용하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대표이사로 있는 ㈜사라는 10년 전 어린이집을 열었습니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며 주부들의 보육시설 창업 아이디어를 내게 됐습니다.취임 후 4개월간 올린 성과를 꼽으신다면.공약 사항으로 내세웠던 ‘애경사 도우미’ 제도를 정착시켰습니다. 회원들의 경조사에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습니다. 서로 돕고 격려할 수 있는 여경협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여경협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애경사 도우미 제도만큼 실질적인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얘기를 자주 듣고 있습니다. 아울러 온·오프라인 네트워크에 열린 정보 마당을 구축해 가고 있습니다. 여경협 홈페이지에 ‘협회장에게 바란다’는 메뉴를 신설, 회원들이 손쉽게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일반 회원의 의견을 수렴해 협회 정책에 반영할 방침입니다.약력: 1947년생. 69년 이화여대 독문과 졸업. 74년 이화여대 교육학과 졸업(석사). 84년 이화여대 산업미술대학원 디자인과 졸업(석사). 86년 ㈜사라 설립, 대표이사(현). 2000년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 이사(현). 2006년 대한 복식디자이너협회(KAFDA) 회장(현). 2007년 1월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