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 펀드’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름이 조지 소로스였다. 1992년 영국 파운드화가 달러 대비 과도하게 평가되고 있다고 본 소로스는 맹렬하게 파운드를 매도해 달러를 구입했고, 영국 중앙은행은 소로스가 뱉는 파운드화를 매입해야 했다. 영국은 당시 유럽환율조정체제(ERM)에 가입돼 있었기 때문에 파운드화의 가치를 유지해야 했다. 조지 소로스의 투기적 공세를 계속 막아낼 만큼 외환 보유액을 보유하지 못했던 영국 정부는 결국 유럽환율조정체제로부터 탈퇴했고 파운드화는 폭락했다. 이 과정에서 소로스가 벌어들인 돈은 하루에만 10억 달러(당시 1조 원 상당)에 이르렀다.1990년 대 초반 헤지 펀드 비즈니스의 대부분은 외환 차익 거래였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외환 거래는 헤지 펀드 비즈니스 전체의 11%에 불과하다. 최근 급격하게 증가한 비즈니스 분야가 ‘헤지 펀드 행동주의(Hedge Fund Activism)’다. 기업 지배 구조와 기업 경영권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타깃 기업을 위협하고 주가를 높여 이익을 챙긴다.지난 5년간 미국 주식시장에서 헤지 펀드가 상장기업 주식의 5% 이상 지분을 보유해 경영권을 위협한 사례가 155건 발생했다. 이 가운데 90%는 지난 3년간 행해졌다. 주목할 것은 타깃 기업의 60%인 93개 기업이 헤지 펀드의 요구를 수용했다는 점이다.최근 네덜란드 ABN암로은행과 영국 바클레이즈은행의 인수·합병(M&A)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국민은행의 대주주이기도 했던 ABN암로가 바클레이즈은행에 의해 M&A를 당하게 됐다. 영국 로열스코틀랜드은행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이 바클레이즈은행이 제시한 가격보다 높은 인수가를 제시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ABN암로의 주인이 누가 될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ABN암로은행이 간판을 내리게 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유서 깊은 은행의 간판을 내리게 만든 원인 제공자는 영국의 헤지 펀드 ‘더칠드런스인벤스트먼트 펀드(The Children’s Investment Fund: TCI)’다. TCI가 ABN암로의 주식 1%를 인수한 후 ABN암로 경영진에게 ABN암로은행의 분할 매각을 요구했기 때문이다.주식 1%를 가지고 그렇게 위협을 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TCI는 얼마 전 도이체뵈르제(독일증권거래소)의 지분 5%를 인수한 후 지분 3%를 보유한 미국의 헤지 펀드 아티쿠스 캐피털(Atticus Capital)과 공동으로 도이체뵈르제의 최고경영자(CEO)와 이사 2명을 퇴진시킨 전력을 가진 헤지 펀드다. 이들은 8%의 지분으로 정기 주주총회(주총)에서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확보하는 괴력을 보여주었다.헤지 펀드가 적은 지분으로 타깃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은 헤지 펀드와 기관투자가가 상호 연대하기 때문이다. 헤지 펀드가 5% 내외의 지분을 확보하고 주주 행동을 벌이면 기관투자가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기관투자가는 각종 법규 때문에 적극적인 주주 행동을 벌일 수 없었다. 영국 <더 타임즈>는 “그들(헤지 펀드) 없이 우리(기관투자가)는 목적을 이룰 수 없을 것”이라는 기관투자가 펀드매니저의 말을 전한다. 또한 주총이 임박해지면 미국의 기관투자가서비스(ISS)는 헤지 펀드의 주주 행동주의를 지지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상당수의 기관투자가들이 ISS의 권고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한다.실제로 소버린은 SK㈜ 주식의 14.99%를 보유했지만 2004년 주총에서 42.6%, 2005년 주총에서 38.2%의 의결권을 확보했다. 칼 아이컨과 스틸 파트너스는 KT&G 주식의 6.59%를 확보했지만 2006년 주총에서 47.9%를 우호지분으로 끌어들였다. 한국은 40%에 육박하는 주식을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어느 나라에서보다 헤지 펀드가 행동을 개시할 경우 타깃 기업의 경영권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이 때문에 무엇보다 헤지 펀드의 최근 행동 양태를 주목하고 그 대응책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자본시장통합법 안에 의하면 새로운 주식 대량 보유자의 등장을 알 수 있게 하는 5% 공시 룰이 다소 강화되는 내용이 들어 있다. 하지만 이것도 법이 통과된 이후 1년6개월이 지나야만 발효된다는 점에서 미흡하다. 5% 공시 룰의 엄격한 적용과 미흡한 부분 보완을 위한 현행 증권거래법의 즉각적인 개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김용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ykim@seri.org1960년 강원 거진 출생. 88년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96년 영국 런던 정경대 국제정치경제학 박사. 2002년 동아일보 기자. 2004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