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나라’… 알짜 회사 수두룩 ‘극찬’

‘오마하의 현인(Oracle of Omaha)’ 워런 버핏은 도대체 무슨 마력을 가진 것일까.버핏이 운영하는 벅셔해서웨이는 해마다 5월 첫 번째 토요일에 정기 주주총회(주총)를 연다. 장소는 오마하에서 가장 큰 컨벤션센터. 26년 전 시작된 첫 주총엔 고작 12명만이 참석했다. 그것도 직원 주주가 전부였다. 그러던 것이 2005년엔 2만 명을 넘었고 작년엔 2만4000여 명이 몰렸다. 지난 5일 열린 올 주총엔 2만7000여 명이 모여 좌석이 모자라 별도 공간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주총을 관람하는 주주도 수두룩했다. 미국과 캐나다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날아온 주주도 올해 600여 명에 달했다.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주주들은 연호했다. 그의 모습이 먼발치에 보이기만 해도 환호성이 터졌다. 웃음과 정겨움, 그리고 흥, 과연 ‘오마하의 축제’였다. ‘자본주의의 산 교육장’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나기도 했다.버핏은 모르는 게 없었다. 세계정세와 자본 흐름은 물론 웬만한 나라의 경제 상황을 꿰뚫고 있다. 수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메모지 한 장 없이 유머와 살아 있는 예를 들어 자신의 판단을 늘어놓았다. 한국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벅셔해서웨이가 포스코 지분 4.0%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포스코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이에 대한 그의 시각은 “놀랄만한 나라, 놀라운 기업”이었다.한국기업 몰랐던 게 후회스러워사실 버핏은 한국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 그에게 한국은 그렇고 그런 나라였다. 그러나 6년 전 씨티그룹으로부터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보고서(기업당 1장짜리)를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세상에 이런 기업을 모르고 있었다니…”였다. 그는 바로 20개의 기업을 골라 투자했다. 기업 규모가 벅셔해서웨이의 기준(시가총액 1억 달러 이상)보다 작아 대부분 개인 돈으로 주식을 샀다. 그 뒤로 그는 매매를 계속했다. 이 과정에서 짭짤한 투자 이익을 봤으며 환율 하락으로 인해 환차익도 거뒀다. “어떤 종목을 샀느냐”는 질문에 “말하면 잘린다”면서도 “외환위기 때 왜 한국 기업을 보지 못했던지 후회스럽다”라는 말을 덧붙인다.포스코는 규모가 큰 만큼 벅셔해서웨이가 매입했다. 5년 전부터 사기 시작해 작년에 지분율이 4.0%(348만6006주)에 달해 연차보고서에 공개했다. 5억7200만 달러를 투자해 작년 말 현재 11억5800만 달러로 102%의 평가 이익을 내고 있다. 포스코에 대한 그의 예찬은 한국 주식을 보는 그의 시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마디로 “엄청난 기업이기 때문”이라는 것. “이런 놀라운 기업을 우리가 모르고 있었다는 게 후회스러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그는 “포스코는 효율적인 사업 구조와 뛰어난 지배 구조를 갖고 있으며 다른 무엇보다 기업 가치에 비해 저평가됐다는 점이 매력이었다”고 털어놨다. “철강 업종의 미래를 보고 산 것이 아니라 포스코라는 뛰어난 기업을 산 것이며 포스코 관계자를 한 명도 만나지 않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 같은 시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며 이에 따라 포스코 경영진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장기 보유할 방침임을 포스코에 통보했다고 한다.그는 한발 더 나아가 “한국 기업에 추가로 투자하는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소개했다. 기업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의 눈에는 여전히 ‘황금알을 낳는 한국 주식’이 수두룩한 것처럼 보였다. 버핏은 “한국은 분단과 전쟁을 극복하고 세계에서 놀랄 만한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라며 “우리는 한국을 사랑한다”는 ‘예찬론’을 늘어놓았다.버핏이 이 같은 생각을 가진 데에는 그의 평생 파트너이자 친구인 찰리 멍거 부회장의 영향이 컸다. “처음 한국 주식에 투자할지 여부를 놓고 고민할 때 투자하도록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준 사람이 멍거 부회장”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실제 멍거 부회장은 한국에 대해 버핏보다 훨씬 많이 안다. “어릴 적 캘리포니아 한인타운 근처에 살아 한국인의 근면함과 한국 기업 특유의 문화를 잘 알고 있다”는 멍거 부회장은 “한국과 한국인은 자랑스러운 대상”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이룬 성과에 보람을 가져야 한다”며 “앞으로 벅셔해서웨이가 한국에 어떤 투자를 해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고 말해 한국 투자를 늘릴 방침임을 시사했다.윤곽 드러나는 후계자 그룹버핏의 나이는 올해 76세다. 아직 건강하지만 작년부터 후계 구도를 짜는 데 바쁘다. 후계 구도는 대충 정해졌다. ‘비상임 회장-최고경영자(CEO)- 최고투자책임자(CIO)’ 등 3각 구도다. 지금은 버핏이 세 자리를 다 맡고 있다. 버핏 이후엔 세 자리를 분리한다는 구상이다. 벅셔해서웨이 특유의 기업 문화를 보전할 책임을 가진 비상임 회장엔 그의 아들 하워드 버핏(51)이 사실상 내정됐다. 버핏의 말에 따르면 “경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기업 문화만 유지하는 상징적인 존재”다.실제 경영을 책임질 사람은 CEO다. CEO도 이사회에서는 이미 정해졌다. 벅셔해서웨이의 73개 자회사 임원 3명 중 1명이라는 게 공식적인 발표다. 버핏은 “내가 오늘 죽으면 다음날 바로 신임 CEO가 선임돼 차질 없는 경영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해졌지만 공개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올 주총에서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실질적인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CIO다. 운용 자산이 1320억 달러에 달하는 돈을 굴려야 하는 세계 최대의 ‘큰손’이다. 버핏은 CIO 선정을 위해 지난 3월 공개 모집을 했다. 그 결과 세계에서 600여 명이 응모했다. 네 살짜리 아이도 응모하는 등 나이도 천차만별, CIO가 돼야 하는 이유도 각양각색이었다.버핏은 이들 중 3~4명을 CIO 후보로 선발할 계획이다. 이들에게 각각 20억~50억 달러의 자산을 맡겨 운용 성과를 테스트한 뒤 CIO를 최종 선정할 예정이다. 후보 3~4명은 올해 안에 선발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게는 많은 월급을 주지 않겠다는 게 버핏의 설명이다. 오히려 이전 직장에서보다 적은 월급을 주겠다는 것. 대신 투자 성과를 따져 그에 걸맞은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방침이다. 투자 성과를 따지는 기준은 S&P500지수다. 운용 수익률이 S&P500지수를 얼마나 뛰어 넘느냐를 보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어디에서나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만큼 굳이 벅셔해서웨이가 있는 오마하로 이사 오지 않아도 된다고 버핏은 말했다.가장 중요한 관심은 역시 기준이다. 버핏은 올 주총에서 “예상치 못한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첫 번째로 제시했다. 갈수록 금융 상품이 복잡해지고 시장이 글로벌화됨에 따라 이전과는 전혀 다른 위험이 나타날 수 있으며 한순간에 모든 성과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인식에서다. 가치 투자의 대가답게 리스크를 관리하는 능력을 첫 번째로 꼽은 셈이다.이어서 꼽은 기준은 장기적 성과의 꾸준함이다. 그는 “벅셔해세웨이의 운용 자산은 일반 펀드와 다르다”며 “최근 좋은 성과를 냈거나 우수한 두뇌를 갖춘 사람보다는 꾸준하고도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즉 장기 투자에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 후계자로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내로라하는 펀드매니저보다는 자신의 의중에 맞는 사람을 찾고 있다는 얘기다.그는 구체적인 자질로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능력과 정서적 안정감을 갖춰야 하며 사람과 기관투자가들의 행동 양식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쉽게 말해 자신과 똑같은 ‘또 다른 워런 버핏’을 찾고 있다는 것. 아울러 “주식보다는 채권이나 통화 등에 대한 투자 노하우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피력해 후계자가 갖춰야 할 자질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어쨌거나 조만간 CIO 후보가 가시화되는 만큼 과연 ‘제2의 워런 버핏’이 나올지 지켜보는 것도 즐거운 일일 것 같다.하영춘·한국경제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