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자원부(산자부)와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화해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과천 관가에서 화제다. 김영주 산자부 장관과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이 상대 부처 직원들을 대상으로 교차 강연을 하겠다고 나선 것. 이를 통해 서로 오해를 풀고 원활한 정책 조정을 이뤄 보겠다는 생각이다.산자부와 공정위는 ‘물과 기름’의 관계에 비유된다. 우선 업무부터가 그렇다. 산자부는 기업의 경영 활동을 도와주는 부처. 과거 상공부 시절부터 산업과 기업을 육성함으로써 나라를 부흥시키는 것이 산자부의 존재 이유다. 기업들은 현장에서 애로 사항이 발생하면 산자부부터 찾는다. 산자부는 기업이 굳이 찾아오지 않더라도 먼저 기업을 찾아가 “요즘 어려운 일이 없느냐”고 묻고 다닌다. 산자부 공무원 스스로도 ‘우리 부처는 조장 부처’라고 말한다.공정위는 부처명에 나타나듯이 공정 거래를 유지하는 책무를 맡고 있다. 담합이나 카르텔, 독과점 지위의 남용 등 각종 불공정 행위를 적발해 시정하고 더 나아가 이를 예방하는 것이 본업이다. 공정위는 ‘재계 검찰’로 불리는 그야말로 규제 당국이다.산자부와 공정위는 자존심도 대단하다. 산자부 공무원들은 과거 상공부 시절엔 경제기획원, 재무부와 함께 정부 조직 내 3대 부처라는 자부심을 갖고 일했다. 지금도 재정경제부와 함께 핵심 경제 부처라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다. 산자부 공무원들은 “예전엔 공정위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기도 한다. 공정위는 이제 과거와 세상이 달라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경제 성장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성장’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룰을 지키지 않고선 제대로 된 성장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공정위의 한 간부는 “이제 재경부 금융감독위원회 공정위 3곳이 새로운 기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장관·위원장 상대방 직원대상 교차 강연이런 이유 때문에 산자부와 공정위는 대립각을 세우고 싸우는 일이 많았다. 심할 땐 서로 “저기 때문에 일 못해 먹겠다”고 할 정도였다. 가장 가까운 사례가 지난해 말 진행된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개선 논의. 공정위는 경제력 집중 방지를 위해 출총제를 유지해야 할 뿐만 아니라 순환 출자를 규제하는 방안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자부는 출총제는 폐지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논리를 폈다. 출총제와 같은 사전 규제는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후 규제로 대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총제 논의는 상당 기간 겉돌다 재경부의 중재로 출총제를 유지하되 다소 완화하는 것으로 타협이 이뤄졌다.최근엔 석유화학 업계의 구조조정을 놓고 산자부와 공정위가 한판 붙을 기세다. 산자부는 지금 국내 유화 설비가 과다한 데다 2010년이면 중동과 중국에서 저가품이 쏟아져 들어올 공산이 큰 만큼 자율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국내 업체 간 인수·합병(M&A)을 통해 대형화를 도모해야 할 시점이란 얘기다. 업계는 이에 대해 현행 공정거래법 아래선 자율 구조조정이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국내 업체 간 M&A가 진행되면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데 이 경우 공정위의 기업 결합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업 결합 심사를 완화해 줄 필요가 있으며 산자부도 이에 상당 부분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법에 정해진 대로 하겠다는 입장이다.두 장관의 교차 강연은 이런 이슈에 대해 두 부처 간 협의가 진행되기 전에 마련되는 것이어서 원만한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강연은 김 장관이 먼저 시작한다. 15일 과천 3-4동 지하 대강당에서 공정위 간부 및 직원 200명을 대상으로 ‘산업정책과 공정거래정책의 조화’를 주제로 발표한다. 발표가 끝나면 공정위 공무원들과 허심탄회한 토론도 벌일 예정이다. 권 위원장의 강연은 같은 장소에서 22일 이뤄진다.과천 청사 내 다른 부처는 산자부와 공정위의 이 같은 시도를 긍정적 사인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 같은 협조 무드는 권 위원장과 김 장관의 오픈 마인드가 없었다면 기획조차 되지 못했을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권 위원장은 “자유무역협정(FTA) 시대엔 경쟁이 강조되는 만큼 관련 부처가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고 평소 강조해 왔다. 김 장관 역시 “권 위원장과 자주 만나는데 대화가 잘 된다”고 전했다. 과천 관가 내 오랜 앙숙이 이번 교차 강연을 통해 풀릴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