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오일쇼크가 터지고 다음 해인 1980년. 라디오에서는 ‘제7광구’라는 기괴한(?) 제목의 가요가 흘러나왔다. “나의 꿈이 출렁이는 바다 깊은 곳/흑진주 빛을 잃고 숨어있는 곳/제7광구 검은 진주 제7광구 검은 진주….” 가사도 요상했다.그 당시 한국인들의 가슴엔 공통적인 ‘판타지’가 있었다. 바로 ‘산유국의 꿈!’이다. 지긋지긋한 가난도 석유 한 방으로 모두 털어낼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정난이라는 여가수가 부른 ‘제7광구’라는 노래는 이런 판타지의 배경음악이었다.지난 6일 중국의 최대 석유회사인 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CNPC)는 톈진 앞바다의 보하이만(발해만)에서 추정 매장량 10억2000만 톤의 초대형 유전을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중국 신문들은 일제히 1면 머리기사로 ‘중국 유전 탐사 사상 40년 만의 경사’라고 흥분했다. 한국의 1년 원유 수입량(1억2000만 톤·2006년 기준)의 10배에 달하는 규모이니 입이 벌어질 만도 했다.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기사가 또 외신을 탔다. 이번 주인공은 캄보디아. 2년째 캄보디아 해안을 헤집고 다니던 미국의 거대 석유기업 셰브런이 엄청난 매장량의 유전을 캄보디아 남쪽 해안에서 발견했다는 소식이었다. 훈센 캄보디아 총리의 들뜬 메시지도 곁들여졌다. “2~3년 내에 오일 머니가 유입돼 경제 부흥에 이바지하게 될 것입니다.”그러나 <뉴욕타임스> 등 일부 외신은 이런 ‘석유 대박’ 기사를 전하며 ‘석유의 저주(oil curse)’라는 문구를 조심스레 끼워 넣었다. 산유국의 꿈에 젖어 있는 이들 나라의 국민들에겐 생뚱맞은 소리였다. 석유가 나온다는데 웬 저주. 하지만 석유를 발견한 많은 나라에는 축복이 아니라 불행이었다. 나이지리아와 차드, 카자흐스탄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나라에서는 석유가 발견되고 난 뒤 가난의 골이 더욱 깊어졌고 빈부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네덜란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세기 중반 이후 네덜란드 경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아이로니컬하게도 네덜란드 인근 북해에서 막대한 천연가스가 발견됐던 1960년대였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더치 디지즈(Dutch Disease)’라고 이름 붙였다. 요즘 들어서는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오히려 천연자원이 부족한 나라보다 못사는 현상을 통칭할 때 이 말을 쓴다.‘더치 디지즈’와 ‘석유의 저주’는 경제학적으로 이렇게 설명된다. 석유와 같은 천연자원을 많이 수출하면 외화 유입이 크게 늘어 환율이 떨어지고, 환율이 떨어지면 외국의 수입품 가격이 싸지고 국산품 가격은 상대적으로 비싸져 국내 산업이 몰락한다는 논리다.그러나 이보다 더 핵심적인 원인은 지도층의 부패에 있다. 특히 캄보디아와 같은 저개발국은 상황이 심각하다. 이미 정부 건물은 스리슬쩍 외국인 손에 넘어갔고, 킬링필드 유적지의 영업 허가권은 일본 기업 소유다. 앙코르와트 유적의 입장료 수입도 개인 주머니로 들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오일 머니가 국민 후생을 위해 투입될 것이라고 장담하긴 힘들다. 훈센 총리 등 캄보디아 지도층은 이런 지적에 펄쩍 뛰지만 아직도 정확한 석유 매장량과 오일 머니 규모에 대해서는 자세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캄보디아 경제연구소의 속 하치 소장은 “지도층이 변하지 않으면 기껏 얻은 석유가 캄보디아를 삼켜버릴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국제투명성기구(TI)에 따르면 캄보디아의 투명성지수는 조사 대상 163개국 가운데 151위로 최하위권이다.지도층의 부패 못지않게 잘살아보려는 의지가 상실되는 것도 큰 문제다. 석유가 나오면 국민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아 석유에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임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오히려 나빠진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고액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의 상당수가 10년을 버티지 못하고 모두 파산 상태에 이르거나 가족이 예전보다 더 불행해졌다는 조사 결과와 같은 맥락이다.‘제7광구’에서 유전이 발견되지 않은 덕에 한국이 그나마 2만 달러 문턱에 다가서게 됐다고 하면 지나친 억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