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전문에서 글로벌기업으로 ‘점프’

서울 인사동은 그 자체가 박물관이다. 한지공예와 목공예 문방사우 전통가구들이 진열돼 있는 이곳은 항상 관광객들로 붐빈다.지난 4월 28일 토요일 오후. 이날은 더욱 북적댔다. 주말 날씨로는 오랜만에 화창했기 때문이다. 안국역에서 인사동으로 들어서는 초입 우측 마당에서 수천 명의 관객들이 숨을 죽인 채 바이올린의 가냘픈 선율을 감상하고 있었다. 고결한 음색의 비올라와 깊은 맛의 첼로가 어우러진 이날 현악 4중주 연주회는 대성산업이 본사 앞마당에서 연 것이다. 대성산업은 지난 2005년부터 봄과 가을 주말에 ‘해피스 문화축제’라는 이름으로 이 행사를 해오고 있다.최근 들어선 브라보중창단의 남성 중창을 비롯해 오카리나앙상블, 가브리엘브라스의 금관악기 연주, 남성 합창 등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무료입장일 뿐만 아니라 팝콘과 솜사탕 풍선 음료가 공짜로 제공된다. 운이 좋으면 경품으로 푸짐한 선물도 받을 수 있다.대성산업은 역사가 오래된 회사다. 광복 직후인 1947년 5월 10일 창업했으니 올해로 환갑을 맞았다. 그렇다면 누구나 이 회사가 무슨 사업을 하는지 알만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 과거에 연탄 업체였다는 사실 말고는 사업 내용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이 드물다.까닭은 두 가지다. 우선 사풍이 너무 조용하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 회사를 알리는 일이 거의 없다. 창업자인 고 김수근 회장이나 그 장남인 김영대 회장(65·서울대 법대 행정학과 졸업) 역시 잘 나서지 않는다. 음악회도 회사를 알리기보다는 문화를 통한 나눔의 차원에서 실시하는 것이다.또 돌다리를 최소한 10번 이상 두드려 본 뒤에야 건널지 말지 결정하는 보수적인 경영을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역사가 60년이나 됐지만 매출 규모는 그룹 전체로 1조2000억 원을 약간 넘는 정도다. 모기업인 대성산업의 매출이 8328억 원(지난해 기준, 당기순이익 361억 원)으로 전체 그룹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종합에너지·건설·기계가 3대축하지만 저력이 있는 회사다. 48년 연속 흑자를 기록해 왔다는 점이 이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1976년 증권시장에 상장한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주주들에게 배당을 실시해 왔다. 보수적인 경영은 특히 외환위기 때 빛을 발했다. 덩치가 큰 업체들이 줄줄이 무너지거나 적자에 시달렸지만 대성산업은 이때도 흑자를 기록했다. 외환위기 훨씬 이전부터 오랫동안 부채 비율을 100% 미만으로 유지해 온, 탄탄한 재무 구조와 안정적인 경영 덕분이다.또 하나는 1000만 평이 넘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알짜 기업이라는 점이다. 일부러 땅을 산 게 아니다. 과거 연탄 사업을 위해 탄광을 개발하고 서울 변두리에 연탄공장과 저탄장을 세우다보니 확보하게 된 부동산들이다. 문경 새재에 800만 평의 땅이 있고 서울 변두리에도 곳곳에 부동산을 갖고 있다. 신설동 신도림동 등지의 땅들이 이제는 해당 지역의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진가를 나타내기 시작했다.강점은 위기 관리 시스템이다. 정광우 대성산업 사장(65)의 특기가 바로 위기 관리 능력이다. 김영대 회장과 대학 동기 동창인 그는 서울대 법학과 졸업 후 제일은행에서 25년 동안 근무하면서 부행장 겸 영업추진본부장으로 퇴직할 때까지 주로 국제금융 업무를 담당해 왔다. 런던지점장과 국제금융부장을 거치며 자연스레 국제 감각과 위기관리 경험을 축적했다. 특히 금리 환율 등 경제 지표 분석 및 예측 능력이 뛰어나다.이에 따라 2002년 대성그룹에 합류한 뒤에도 그룹 내 위 기요소는 없는지 파악하고 미리 대처하는 일을 중점 추진해 왔다. 2004년 대성산업 사령탑을 맡은 뒤에는 글로벌화와 장단기 리스크 관리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안정 속의 성장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대성산업은 연탄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의 사업부문은 주력 분야인 종합에너지를 비롯, 건설 및 기계 등 3대 사업군으로 이뤄져 있다. 국내에선 채탄 사업이 중단된 터라 연탄 생산은 호주산 석탄으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석유가스 사업이 회사 매출의 약 58%, 건설 사업이 약 30%를 점하고 있다. 석유가스 부문은 전국 60여 개에 이르는 직영 주유소 및 충전소 운영을 통한 사업이다. 증기 및 전기 생산 공급, 열병합과 공업가스까지 에너지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각종 유압 기계와 첨단 기계류도 생산 판매한다.정 사장은 “에너지를 바탕으로 한 다각화와 글로벌화가 회사의 경영 방침”이라고 말한다. 에너지의 경우 경험이 많이 축적돼 있는 만큼 이를 토대로 재도약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그는 “그동안 고체 액체 기체 전기에너지 등 에너지의 모든 분야를 섭렵해 왔다”고 설명한다. 고체 에너지는 연탄, 액체는 석유, 기체는 가스를 일컫는다. 열병합발전소를 통해 증기와 전기를 생산 공급하기도 한다. 특히 오산에서 운영하고 있는 열병합발전소는 효율이 일반 화력발전소에 비해 훨씬 뛰어나다고 덧붙인다.유전과 가스전을 발굴하는 해외 자원 개발에 적극 나서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그동안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감내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광구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미 카타르와 리비아 베트남 광구는 성공적으로 개발돼 배당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현재 참여하고 있는 광구 개발 사업은 13건이다. 연내에 3~4건에 대해 추가로 투자할 예정이다.중국서 열병합발전소 건설 검토중국 사업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10년 이상 시장 조사를 해 왔다. 이 사업은 김 회장이 직접 챙기고 있다. 대성산업은 중국 내 지방정부 및 현지기업과 접촉하며 우선 열병합발전소 건설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해외 사업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올해를 아예 ‘글로벌 경영의 원년’으로 삼았다.정 사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국제화가 급진전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 내수 사업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며 “필요하면 기업 인수·합병을 통해서라도 다각화와 글로벌화에 나서겠다”고 밝힌다. 그는 “태양광과 바이오디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 덧붙인다.또 하나의 주력 분야는 건설이다. 지난 1989년 건설사업부 발족 이후 2000년부터 아파트 재건축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매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아파트 브랜드인 ‘유니드(YOU NEED)’와 상가 및 주상복합 아파트 브랜드인 ‘스카이렉스(SKY REX)’로 재건축, 재개발 및 건축 시장에서 중견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신도림동의 1만 평의 부지에 주상복합, 오피스, 호텔, 컨벤션센터 등을 갖춘 연면적 10만 평 규모의 대형 복합 타워를 착공할 예정이다. 또 인천 용인 대구 울산 등지에서도 활발하게 사업에 나서고 있다.대성산업의 자회사로는 대성산업가스 대성쎌틱 대성C&S 한국캠브리지필터 대성계전 대성나찌유압공업 등이 있다. 대성산업가스는 산소 질소 아르곤 등 일반가스와 반도체 및 LCD공정용 특수 가스를 공급하고 있다. 대성쎌틱은 가스보일러 전문 업체이며 대성C&S는 대형 세탁소, 호텔 병원 등에서 사용하는 산업용 세제를 전문적으로 만들고 있다. 한국캠브리지필터는 반도체 공정과 제약회사 등에서 사용하는 산업용 필터를, 대성계전은 가스 미터기와 적산열량계 유량계 등을, 대성나찌유압공업은 유압 밸브와 공압 밸브를 생산하고 있다.대성그룹은 인재 양성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공익 사업으로 ‘해강대성장학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농아원, 홀트아동복지회 등을 대상으로 한 사회복지사업과 ‘서울챔버콰이어’를 통한 문화 예술 후원 등 베푸는 경영도 실천하고 있다.정 사장은 “사업 다각화와 글로벌화도 토대는 투명 경영과 정도 경영”이라며 “지난 2005년 윤리 경영을 선포하고 이와 관련된 사이버 교육 과정을 개설한 것도 임직원과 협력사 및 고객 모두를 위해 정도 경영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이를 강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약력: 1942년 충남 예산 출생. 61년 중동고 졸업. 65년 서울대 법학과 졸업. 77년 제일은행 런던지점 과장. 93년 제일은행 국제금융부장. 2000년 제일은행 부행장 겸 영업추진본부장. 2002년 대성산업가스 고문. 2003년 오산에너지 사장. 2004년 대성산업 대표이사 사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