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아버지’는 자식에겐 소우주요, 하늘같은 존재일 것이다. 특히 내게 아버지는 ‘하늘’과 이음동의어이기도 하고 감히 ‘내 하늘’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일흔아홉의 당신, 우리 형제 6남매와 손자 손녀 열둘을 거느리신 아버님은 지금 50여 일째 중환자실에서 투병 중이시다. 어머니는 2년 6개월 전에 뇌출혈로 너무도 황망하게 세상을 떠나셨다.아버지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에 대해 먼저 말하고 싶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얘기지만, 당신은 평생 이부자리를 펴거나 갠 적이 없으시고, 밥상을 들지 않으셨고, 물론 설거지도 모르시고 부엌에는 아예 들어가지도 않으셨던 보수적이고 완고한 분이시다. 그런데 이처럼 철탑 같으신 당신이 어머님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이후 급격하게 노쇠 현상을 보이셨다. 매일이다시피 눈물을 보이시고 안 하던 노래를 부르셨다. 물론 노래도 당신이 만드신 어머님에 대한 애절한 송사다. “잘 가시오, 잘 가시오, 북망산천 그 어디메뇨. 훨훨훨… 나비처럼 날아, 여기저기 생전에 못 다한 나들이나 하시며, 편히, 편히 뉘시오….”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평생을 당신 위주로 사셨던 것이 한이 되셨는지 어머님 관 속에 세상에서 최고로 좋은 옷 두 벌을 따로 지어 넣으시라고 자식들에게 말씀하셨다. 상 예의상 두 벌을 넣는 법이 없다 하여 한 벌은 불태우고 한 벌만 따로 넣어 저승에서나마 어머님께서 나들이할 때 갈아입으시게 해드렸다.당신은 평생 집안일보다는 동네 일이 우선이셨다. 집안일은 어머님이 도맡아 처리하셨다. 아마 1970년대 초반부터인가 새마을운동이 시작될 때부터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실 때까지 10여 년을 새마을지도자로 정말 왕성하게 활동하셨다. 집안일은 완전히 뒷전으로 미뤄 두시고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동네일에만 몰두하셨다. 직함 또한 여러 개를 맡으셨다. 통장·청록계장·육성회장·정화위원장…. 정부로부터 훈장을 포함한 표창도 십수 차례 받으셨다. 특히 1974년에는 전국 최우수 새마을지도자로 선정돼 훈장과 포상금 500만 원을 받으셨다. 이 포상금으로 마을회관을 건립하고, 불도저 등을 빌려 개천을 일궈 논 2000여 평을 마을 공동 재산으로 마련하셨다. 물론 논에서 생산되는 소출은 각 가정에 고루 분배했고 암송아지를 3마리 사서 장학사업의 종자를 뿌리셨다. 가정이 어려운 집에 암송아지를 나눠줘 새끼를 낳으면 키운 사람이 주인이 되고 어미 소는 또 다른 어려운 이웃에게 돌려주는 식이었다. 십여 년이 지나서는 200여 마리가 되기도 했다.가장 감동적이었던 일은 아버님의 환갑 잔칫날 동네 200여 가구 주민들이 향나무로 만든 아주 고급스러운 감사패와 아버님 존함이 새겨진 양복을 지어 선물한 일이었다. 당시 시골 마을에서는 파격적인 일이었고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자식 6남매는 행여 당신의 행적에 누가 될까 마을에서 조신하게 생활했다. 이 모든 것이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내게 있어서는 산교육이고, 그 어떤 물질로도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당신은 우리 형제 6남매를 흠집 없이 성장시키셨다. 한때는 삼형제가 대학을 나란히 다니기도 했다. 내 자녀 둘도 수험생인데 솔직히 좀 버겁다. 돌이켜보면 농사 외에 특별한 소득도 없는 상황에서 얼마나 힘들게 학비를 마련하셨는지 그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지금, 당신은 병원 중환자실에 계신데 기력이 떨어졌다 회복됐다를 반복하고 있는 힘든 상황이다. 거의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회사 별 일 없냐? 아이들은 학교 잘 다니냐? 니는 몸 아픈데 없냐? 미라 어미(내 아내를 칭한다)는 허리 수술 후유증 없냐? 나는 괜찮다. 일부러 내려오지 마라…. 그래, 그래도 애들이 보고 싶구나”라고 말씀하신다. 당신의 일생을 감히 불효자인 내가 어찌 운운하랴. 돌아오는 주말에는 수험생 두 아이와 아내를 데리고 꼭 아버님을 찾아뵈어야겠다. 병원에 계시니 마당 넓은 시골집은 텅 비어 있겠지. 시간이 되는 대로 시골집에 가서 잡초도 뽑고, 당신의 빈방도 닦아드리고, 평소 하지 않던 걸레질도 좀 하고 싶다.글 / 조희길경주에서 태어나 경희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능률협회컨설팅 CS경영본부장, 한국능률협회 미디어총괄본부장을 역임한 뒤 현재 청호나이스 마케팅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