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자원부가 차분해지고 있다. 산자부 공무원들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가 ‘미래’ ‘2015(2015년 비전)’ ‘선진 ○강’ ‘첨단’ 등에서 ‘현재’ ‘점검’ ‘애로 해소’ ‘구조개선’ 등으로 바뀌고 있다. 장밋빛 미래 설계를 위한 구호성 아젠다가 현실에 바탕을 둔 실무 행정 용어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산자부 공무원들 스스로도 침착한 분위기가 정착돼 가고 있다고 전한다.산자부가 올 들어 이처럼 변화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 우선은 올해가 참여정부 마지막 해라는 점이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정권 마지막 해엔 새로운 정책이나 사업을 시작하기보다는 여태껏 벌여 놓은 일들을 정리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 관행이다. 하지만 이는 산자부 만의 일이 아니다. 다른 경제부처도 마찬가지다.산자부 공무원들은 오히려 선장의 교체가 결정적인 이유라고 설명한다. 산자부 지휘봉을 정치인 출신의 정세균 장관에서 전통 경제 관료인 김영주 장관이 올 1월 넘겨받으면서 확 달라졌다는 얘기다. 정 전 장관은 정치인답게 재임 기간인 지난해 주로 큰 그림을 그려 왔다. 하지만 김 장관은 관료답게 ‘매사 불여튼튼’을 모토로 섬세하게 정책을 진행해 나가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타결된 이후 김 장관은 직원들에게 당장 수출이 늘거나 생산이 증대하는 등의 홍보에 신경 쓰지 말고 지금부터 산업 구조를 선진화해 나가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주문했다.국무조정실장이었던 그가 장관으로 내정된 1월 초. 그는 ‘공 비 총’(공보관, 비서관, 총무과장 등 장관의 최측근 3인)을 제외하고 긴박한 보고 현안이 없는 한 국·실장이 찾아오는 것을 금지했다. 공연히 얼굴 도장을 찍으러 왔다 갔다 하느니 기업체 관계자를 한 사람 더 만나고, 밀린 서류를 한 장 더 읽으라는 얘기다.들뜬 분위기 가라앉히고 일하는 분위기 정착그렇다고 김 장관이 산자부 업무에 별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다음은 팀장으로 승진한 지 얼마 안 되는 한 실무자의 전한 자신의 일화. “3월 중순께였던 것 같아요. 좀 나른한 날이었는데 갑자기 장관님한테서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장관님이 구체적인 몇 가지 수치를 문의하셔서 일순간 당황했습니다. 장관들이 초보 과장한테 직접 전화하는 일은 거의 없거든요.”김 장관은 산자부 그 어느 공무원보다 하루를 먼저 시작한다. 그는 새벽 5시께 일어나 자택인 서울 거여동의 한 교회에 가서 새벽기도를 드린다. 과천 집무실에 도착하거나 조찬 간담회 등에 참석하는 시간은 대략 7시∼7시 반. 각종 회의 참석을 위해 이동하는 중간에도 실·국뿐만 아니라 팀(예전의 과)단위 업무까지 꼼꼼히 챙긴다.그는 이른바 ‘워커홀릭(일중독)’의 한 사람이다. 일요일에도 김 장관은 출근한다. 일이 많아 일요일에도 업무를 보고 있는 실무자들과 토론도 하고 협의도 한다. 누가 열심히 일하나 감시하거나 일요일에 출근하지 않는 직원들을 질책하기 위해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자신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다음 한 주를 깔끔하게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이러한 김 장관의 스타일 때문에 산자부 공무원들이 피곤해 하거나 가라앉아 있는 것은 아니다. 김 장관은 업무를 챙기듯 직원들도 챙긴다. 일요일 출근 시간이 오후 4시인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일요일 오전 골프나 등산 등을 즐기는 것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골프는 대개 오전에 필드에 나가 오후 1∼2시면 끝나 남은 일을 처리하러 청사에 들어오는 시간이 4시다. 이보다 더 빨리 가면 직원들을 괴롭히는 일이라 생각하는 그다. 일요일에 나오지 않은 사람은 찾지도 않는다.김 장관은 최근 “불필요한 일을 제발 버려라”고 직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e메일이나 메신저를 통해 보고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고 복도에서 보고하기 위해 대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굳이 대면 보고할 일이 있더라도 1장짜리로 핵심만 얘기하라고 한다. 회의도 가급적 30분 내로 끝내고 국회에 대기하는 공무원도 실·국당 1명으로 줄이라고 얘기한다. 대신에 당면 과제인 한·미 FTA 후속 대책 마련, 지식 서비스 산업 육성 대책 마련, 체계적 에너지 전략 수립 등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김 장관의 바람대로 산자부가 움직여 줄지 귀추가 주목된다.박준동·한국경제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