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팰리스·은마·한양 ‘경매 내몰려’

경매 물건 수가 늘어나 투자 대상이 많아지는 것은 부동산 경기가 침체기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매 정보 제공 업체인 지지옥션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강남구에 나온 아파트 경매물건은 22건으로 한 달 전(9건)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문제는 낙찰가율도 77.8%(2월)→54.6%(3월)로 떨어졌다는 점이다. 물건 수가 늘어나더라도 낙찰만 잘된다면 큰 문제가 없는 법인데 최근 돌아가는 상황은 전형적인 불황기에 나타나는 모습이다. 같은 기간 서초구(12건→38건), 송파구(4건→11건)에서도 공통적으로 경매 물건이 늘어나고 있다. 요즘 법원 경매시장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지난 2~3년간 콧노래를 불렀던 투자자들의 쓰라린 실패 사례가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다.오는 5월 22일 본원 경매 12계에서 입찰이 진행되는 대치동 은마아파트부터 살펴보자. 은마아파트는 지난 몇 년간 강남 집값의 바로미터 역할을 했던 곳이다. 매물이 나오기가 무섭게 거래돼 왔기 때문에 법원 경매시장에서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됐다. 정부가 그동안 이중, 삼중의 규제 그물망을 쳐 놓은 것도 따지고 보면 은마아파트를 위해서라는 분석이 있을 정도로 부동산 정책 당국에서 볼 때 은마아파트는 ‘악의 축’과 같았다.그런 은마아파트가 경매에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뉴스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아파트가 단순히 은행 이자를 연체해 경매로 넘어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모 씨는 34평형인 이 아파트를 지난 1981년부터 소유해 오다 2002년 3월 15일 2억1000만 원을 받고 이모 씨에게 전세로 내줬다. 당시 이 씨는 전세로 이 집을 계약하면서 집주인 유 씨로부터 전세권 설정을 허락받았고 이후 이 씨는 유 씨 집에서 2년 더 계약을 연장해 4년간 살았다. 문제는 지난해 3월 이 씨의 전세 계약 기간이 만료된 이후부터 발생했다. 이 씨는 계약 기간이 만료됐으니 집주인 유 씨에게 당연히 전세금 반환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유 씨는 이 씨의 전세금 2억1000만 원을 제때 반환해주지 못했고 결국 이 집은 지난해 8월 경매 신청됐다.매매, 전세 가릴 것 없이 호황을 누리던 은마아파트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인근 중개업소에서는 계속된 참여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원인을 돌린다. 대치동 T공인 관계자는 “정부가 지난해 3·30대책을 발표하면서 사실상 은마아파트 재건축은 물 건너갔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면서 “이때부터 전세, 매매할 것 없이 물량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비로열층을 중심으로 세입자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부동산 정보 제공 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은마아파트 34평형의 전셋값은 올 1월 3억 원을 최고점으로 현재는 2억7500만 원으로 주저앉은 상태다.현재 이 물건(34평형)은 지난 4월 17일 신건(감정가 10억9000만 원)에 입찰됐지만 단 한명도 응찰하지 않아 오는 5월 22일 8억7200만 원에 다시 입찰된다. 그러나 평균 매매값이 10억 원 이하로 내려간 상태이기 때문에 한 번 더 유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경매 폭풍 앞에서는 재건축 아파트도 예외는 아니다. 청담동 한양아파트는 현재 일 대 일 재건축이 진행 중인 곳으로 올림픽대로와 영동대교와 인접해 있다. 한양아파트는 재건축을 위해 주민들이 모두 이전한 상태로 5월 초 관리처분 총회를 앞두고 있다. 동호수를 결정짓는 관리처분 총회는 재건축의 마지막 단계. 이 아파트는 ‘GS청담 자이’로 재건축되며 오는 2010년 사업이 완료될 계획이다.재건축 아파트가 경매에 나온다는 것은 강남 아파트 시장이 예전만 못하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18평형인 이 아파트 2동 000호는 지난해 10월 임모, 최모 씨가 2억2000만 원을 돌려달라며 경매를 신청하면서 법원 경매시장에 모습을 보였다. 감정가는 5억3000만 원, 실거래가는 4억7500만~5억7000만 원이다. 하지만 강남 주택시장이 전체적으로 침체일로를 걸으면서 지난 3월 열린 입찰에서 유찰된 채 2회차로 넘어간 상태다. 입찰일은 5월 3일로 감정가에서 20% 떨어진 4억2400만 원에 다시 부쳐질 예정이다. 청담동 K공인 관계자는 “이 아파트는 지난해 초반만 해도 시세가 6억 원을 상회할 정도로 강세를 보였지만 지금은 5억 원 초반대에 매물을 내놔도 매수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경매 물건이 늘어나게 되면 가시방석인 곳은 다름 아닌 채권자일 것이다. 대출금을 변제할 능력이 없어진 채무자는 말할 것도 없지만 여러 번 유찰될 경우 채권자도 자칫 빌려준 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 요즘 늘어나고 있는 강남 아파트 시장을 바라보는 금융권의 심정이 이와 비슷하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을 바라보며 최대 80%까지 담보대출을 해줬던 금융권엔 요즘과 같은 상황이 악몽처럼 느껴질 것이다.금융권 ‘부실채권’ 걱정 늘어송파구 문정동 올림픽훼미리타운 231동 000호(32평형)를 예로 들어 보자. 2005년 6월 이 아파트를 구입한 이모 씨는 이듬해 5월 B은행으로부터 7억5800만 원을 대출받았다. B은행은 이 씨에게 이 돈을 빌려주고 대출금의 120%인 9억1000만 원을 설정했다. 그러던 이 아파트는 지난해 12월 A캐피털에 의해 경매가 신청됐다. 이 아파트의 감정가는 9억 원. 그러나 2월과 4월 열린 입찰에서 모두 유찰되면서 5월 14일 열리는 3차 입찰을 기대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여러 번 유찰되면서 입찰가는 5억7600만 원까지 내려간 상태다. 3차 입찰에서 2차 입찰가(7억2000만 원)를 웃돌지 못할 경우 돈을 빌려줬던 B은행은 본전도 건지기 힘들게 됐다.경매 물건이 늘어나게 되면 올림픽훼미리아파트 사례와 같이 대출 원금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함께 늘어날 수밖에 없다.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318동 물건을 예로 들어 보자. 감정가가 17억 원인 53평형의 경우 현재 한 차례 유찰된 13억6000만 원에 5월 7일 입찰이 진행된다. 권리 관계를 살펴보면 C은행이 2000년 11월 5억8500만 원을 대출해 줬으며 2004년 7월 A상호저축은행이 6억2000만 원을 추가로 대출해 줬다. 두 금융사의 대출 금액을 합치면 12억5000만 원. 만약 2회차까지 유찰된다면 A상호저축의 손실은 불가피하다. 서초구 잠원동 대림아파트 0000호(49평형)도 D은행이 11억9600만 원을 대출해 준 상태에서 경매로 넘겨졌다. 감정가는 16억 원이며 이미 한 차례 유찰돼 감정가에서 20% 깎인 12억8000만 원에 다시 부쳐질 예정이다. 지금 분위기로는 3회차까지 유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관련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B상호저축은행 관계자는 “매매, 전셋값이 떨어지면서 대출금 관리에 비상이 걸린 상태”라며 “경매시장마저 냉각된다면 상당한 대출금 손실이 예상된다”고 우려를 표시했다.법원경매 관계자들은 최근 경매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는 물건들은 지난해 5월부터 강제 경매 신청될 물건이라고 말한다. 결국 지난 수년간 계속된 정부의 주택시장 안정 대책이 결국 시장 위축을 불러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지지옥션 강은 홍보팀장은 “총부채상환비율(DTI) 시행이 강남 주택시장엔 크나큰 악재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최근 발생하고 있는 강남지역 유망 아파트의 경매시장 출현은 서막에 불과하다. 시간이 갈수록 주택시장 침체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경매 물건 증가는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 영선합동법률사무소 황지현 실장은 “경매시장은 일반 매매시장보다 3개월 앞서기 때문에 앞으로는 물건 수가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현재 법원 경매시장에서는 여의도 시범, 방이동 올림픽선수기자촌, 서초구 잠원동 대림, 도곡동 진달래, 서초동 삼풍아파트와 ‘부의 상징’으로 불리는 도곡동 타워팰리스도 2건이나 입찰에 부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