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용인 중대형 ‘급매물도 안 팔려’
“더 빠지면 정말 곤란해요. 집값 급락에 충격 받은 집주인이 한둘이 아닙니다.”과천시 부림동 K공인 손모 대표는 “동네가 집값 쇼크에 빠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 9억5000만 원까지 올랐던 주공8단지 31평형은 최근 7억6000만 원에 급매물이 나오면서 순식간에 2억 원 가까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과천에서 오랜만에 선보이는 새 아파트로 4월 말부터 입주에 들어가는 중앙동 래미안 11단지의 경우 33평형을 9억5000만 원 이하에도 살 수 있다. 불과 5~6개월 전만 해도 12억 원 이하로는 물건을 찾을 수 없었던 곳이다. 중앙동 D공인 관계자는 “비로열층은 9억 원대 초반에도 구할 수 있다”면서 “입주가 시작되면서 층, 향에 따라 가격 차별화가 시작된 데다 분양권 프리미엄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아파트는 4월 입주를 시작하는 전국의 새 아파트 가운데 프리미엄이 가장 많이 형성된 곳으로 조사된 바 있다.서울 강남 못지않은 집값 하락세가 수도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서울 강남 재건축아파트를 중심으로 촉발된 하락 도미노가 수도권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몇년간 급상승을 이뤘던 남부 수도권에선 큰 폭의 급락이 이어지고 있다. 과천, 용인 등지의 중대형 평형들은 1억~2억 원 하락이 ‘기본’이라고 할 정도다. 현지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하락세가 뚜렷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며 “시세보다 몇 천만 원 싼 급매물이 나와도 거래가 바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일시적 1가구 2주택 매물 쏟아져과천과 용인은 수도권에서 가장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는 지역 가운데 하나다. 두 지역 모두 ‘강남권’으로 분류되면서 몇 년 사이 투자 수요가 크게 몰렸다. 특히 교육 등의 목적으로 이주한 일시적 1가구 2주택자들이 비과세 기간 만료를 앞두고 서둘러 매물을 쏟아내고 있다. 이에 따른 매물 적체와 주택 담보대출 강화에 따른 매수세 단절이라는 요인이 크게 작용, 최근의 집값 급락세를 연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용인은 일부 지역에서 ‘매물이 넘친다’고 할 만큼 급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상현동 신봉동 성복동 등지에선 가격이 뚝 떨어진 매물이 적지 않다. 동백지구 죽전지구 등 택지개발지구도 다르지 않다. 중개업소마다 용인 전역에서 접수된 매물들이 쌓여있는 상황이다. 반면 거래가 거의 없다 보니 호가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신봉동 LG자이 2차 60평형의 경우 지난해 말 11억 원이었던 로열층 가격이 최근 9억8000만 원으로 떨어졌다. 비로열층은 9억 원 이하에서도 매물을 찾을 수 있다. 성복동 LG빌리지 2차 49평형은 올 초 7억3000만 원선이었던 가격이 최근 6억8000만 원으로 떨어진 상태다. 평형이 클수록 하락 폭도 커서 92평형의 경우는 로열층이 올 초 15억 원에서 14억 원으로 1억 원이 떨어졌다.신봉동 S공인 최모 대표는 “서울 강남에 살면서 수지 쪽에 집을 사 둔 이가 꽤 많다”면서 “양도세 중과를 피하려다 보니 강남보다는 용인 집을 팔고 싶어 하기 때문에 매물이 계속 쌓이고 있다”고 밝혔다. 최 대표는 또 “2월 초 내놓은 55평짜리 한 아파트는 3개월 만에 처음 내놓았던 호가보다 7000만 원이 낮아졌다”면서 “매도자는 초조해하면서 집값을 계속 낮추는데, 정작 매수세는 입질 정도만 할 뿐 실제 거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중소기업 임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우영 씨(가명)도 이와 비슷한 처지다. 용인에 살다 지난해 분당으로 이사한 그는 죽전지구의 39평 아파트를 지난해 말 6억7000만 원에 내놓았지만 아직 팔지 못하고 있다. 김 씨는 “그동안 서너 차례 집을 보고 간 사람이 있었을 뿐”이라면서 “그나마 3월 이후엔 아파트를 사겠다는 사람은커녕 집 구경을 하자는 이도 없다”면서 “며칠 전 중개업자가 6억 원 이하로 내놓으면 임자가 나설지도 모르겠다고 하더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반면 분당, 일산 등 신도시와 경기 일부 지역은 보합세 또는 미미한 움직임만 일고 있을 뿐 급락 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분당에서는 간혹 기존 가격에서 5% 정도 떨어진 급매물이 나오고 있지만 거래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야탑동 부원공인 최노식 대표는 “매도자와 매수자가 원하는 가격의 차이가 너무 커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매수자는 작년 초 오르기 전 가격을 원하고, 매도자는 시세에서 3000만~4000만 원 정도를 낮춰 급매를 의뢰한다”고 밝혔다.예를 들어 로열층 시세가 7억 원인 야탑동 장미현대 31평형의 경우 급매를 원하는 매도자가 시세보다 5000만 원 싼 6억5000만 원에 물건을 내놓지만 매수자 측이 원하는 가격은 6억 원이라는 이야기다. 최 대표는 “오르기 전 시세로 급매가 나오면 연락하라는 수요자가 꽤 있지만 매도ㆍ매수 희망 가격 차이를 좁히기가 어렵다”면서 “그렇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수요가 탄탄하고 가격 저지선이 굳건해 급락 현상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일산도 분당과 다르지 않은 분위기다. 중소형 아파트는 가격 움직임이 거의 없는 가운데 40평형 이상 중대형 위주로 간혹 급매물이 출시되는 정도다. 주엽역 인근의 강선마을, 문촌마을을 주로 거래하는 M공인 김모 대표는 “올 초부터 기존 시세에서 5000만~6000만 원 싼 중대형 매물들이 늘기 시작했다”면서 “32평형의 경우 호가가 5억5000만 원선이지만 실제 거래되는 급매물 가격은 4억5000만 원선”이라고 밝혔다.이처럼 수도권과 신도시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은 호가와 실제 거래 가격의 차이가 1억 원 안팎으로 크게 벌어진다는 것과 거래가 극도로 부진하다는 것이다. 특히 ‘급매물’에 대한 시각이 확 달라졌다. 시세보다 3000만~5000만 원 싼 급매물이 나오면 중개업자조차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적극적인 매수세는 고사하고 ‘더 내려라’는 주문이 붙는다. 매수자 측에서 ‘더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커 웬만큼 싼 급매물이 아니고선 대접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바로미터로 삼을 거래 케이스가 없어 정확한 시세 체크가 어려운 것도 요즘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산 M공인 김모 대표는 “기존 시세보다 1억 원 내려앉은 급매물만 간간이 거래되는 상황이라 정확한 ‘시세’라는 게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한편 거래량이 확 줄다 보니 지역 중개업소도 운영난에 허덕이는 곳이 늘고 있다. 수도권, 신도시 현장에서 만난 중개업자들은 열이면 열 모두 “4개월 이상 적자 운영 중”이라고 입을 모았다. 부원공인 최 대표는 “올해는 봄 전세 특수조차 없어 경영난이 심각하다”면서 “주변 중개업소 대부분이 비슷한 상태”라고 말했다. 일산 M공인 김 대표 역시 “근근이 버티고 있다”면서 “주변 경쟁 업소 1~2군데는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