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트 프린트·스포티즘의 화려한 부활

올 봄 패션은 전 세계적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1980년대로 돌아갔다.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1980년대의 다양한 문화적 영향을 그들의 런웨이에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386세대의 추억 속에서나 존재하던 코드들이 다시 새롭게 부활하고 있어 필자를 흥분시키고 있다. 이 시대 가장 강력한 소비의 주체가 된 386세대는 자신들이 다시 젊어질 수만 있다면 지갑을 여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이 젊었을 적 혹은 어렸을 적의 향수를 되살릴 수 있는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둔다. 이미 386의 영웅이던 〈로보트 태권브이〉가 31년 만에 최근 극장가에 디지털 개봉하면서, 개봉 11일 만에 44만 명 돌파라는 386세대의 놀라운 소비 저력을 보여줬으며, 2월에는 다시 〈록키 발보아〉라는 영화를 통해 실베스터 스탤론도 돌아온다고 하며, 한 케이블 채널 드라마에서는 〈플래쉬 댄스〉의 제니퍼 빌즈를 다시 등장시키며 1980년대의 스타나 영화, 음악 등은 총체적으로 재조명을 받거나 다시 재창조돼 386세대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30년 기준으로 트렌드 돌아와1986년 ‘스잔’이라는 노래로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가수 김승진의 앞머리를 앞으로 내려 일자로 자른 밥 헤어스타일, 같은 해 ‘도시의 삐에로’라는 노래를 들고 나와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던 미소년 가수 박혜성의 빨강, 파랑 노랑의 총 천연색 슈트, 지금 들어도 요새 노래 같은 모던한 가수 나미의 현란한 ‘메탈릭’ 스타일, 매서운 눈가의 스모키한 짙은 화장과 현란한 댄스의 김완선. 우리는 아직도 그들을 가슴으로 생생히 기억한다. 당시 미국에 마돈나, 보이 조지, 마이클 잭슨, 신디 로퍼 등이 있었다면 우리에겐 그들이 바로 1980년대의 젊음을 대표하는 우리의 ‘토종 팝 아이콘’이다.2007년 2월, 길거리를 돌아다녀보거나, 또는 패션 잡지들을 좀 더 자세히 돌아보라. 우리들의 추억 속에서만 존재하던 이 1980년대의 패션 아이콘 스타일이 지금의 신세대들 사이에서조차 부지불식간에 다시금 재해석되고 또 적극적으로 복제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우리에게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1980년대의 사회 배경과 패션을 가장 잘 알고 이해하기 쉬운 우리 386세대 남성들에게 지금의 이 패션의 흐름은 그 누구보다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코드가 아닌가. 바로 이 때야말로 답을 이미 알고 있는 386 남성들이 가장 멋지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패션의 주기를 크게 보면 30년 기준으로 그 트렌드가 주기적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볼 수 있다. 2000년부터 최근 몇 년까지만 해도 패션은 1950년대 혹은 1970년대의 장식적이고 우아한 로맨티시즘이 풍미했지만, 올해부터는 그러한 로맨티시즘은 눈에 띄게 사라지고 있다. 특히 남성복에 있어서는 절제된 영국풍의 브리티시 스타일을 모티프로 한 트래디셔널(전통적) 스타일과 경쾌한 뉴 스포티즘이 대세이니 버버리나 폴 스미스 같은 영국 브랜드에 남성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제 올 봄부터는 대부분의 한국 남성들은 현란한 꽃 프린트 대신 단정하고도 말쑥해 보이는 아주 착한 남자의 스타일이 돼 버릴 조짐이다.그러면 1980년대의 패션 코드를 2007년 봄과 여름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본격적으로 알아보도록 하자. 우선 그 첫 번째로 원색의 팝 아트적인 컬러가 키워드임을 기억하자. 2007년도 봄 여름의 컬러를 보면 블랙과 화이트는 계속 베이식 컬러로 이어질 전망이나, 이를 받쳐주는 악센트 컬러 면에서는 로맨티시즘 시대의 강세였던 파스텔 톤보다는 강한 원색 계열의 컬러풀한 색상들이 대대적으로 유행할 전망이다. 1980년대 박혜성과 김승진의 원색 슈트처럼 채도 100%의 색상 제안은 아마도 1980년대의 팝 컬처(Pop culture)의 영향이 다시 재해석된다고 말 할 수 있겠다. 최근 인사동 ‘갤러리 쌈지’와 쌈지길 전관에서 보여줬던 ‘Wake up Andy Warhol-쌈지, 앤디워홀을 만나다’라는 전시와 서울대 미술관의 ‘앤디워홀 그래픽전’만 보더라도 팝 아트의 영향은 이제 외국의 일만이 아니다.로맨티시즘 가고 절제미 부상이번 시즌 세계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라프 시몽이 주도하는 질 샌더는 바로 이러한 영향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채도, 순도 100%의 색상들의 니트 또는 재킷들을 마치 앤디 워홀에게 영광스럽게 바치기나 하는 것처럼 런웨이 위에 자극적으로 컬러의 향연을 선보이고 있다. 그 외에도 디 스퀘어드(D SQUIRED) 등 여러 디자이너 브랜드에서도 강한 원색 컬러의 의상들이 많이 선보이고 있다. 다만 현란한 색상과는 대조적으로 재단과 디테일 면에서는 매우 간결하고 미니멀한 절제미가 돋보여 1980년대의 오리지널 패션 코드보다 훨씬 정제되고 고급스러워질 전망이다. 따라서 현란한 색상을 선택해도 보수적인 한국 남성들에게도 별 걱정은 없을 것이다.컬러 외에도 도트 프린트(일명 땡땡이)의 경향은 1980년대의 또 다른 코드를 엿볼 수 있는 증거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여성들의 의상에서만 볼 수 있었는데 이번 봄부터는 남성들의 캐주얼 의상에서부터 그 도트 프린트의 바람을 서서히 느낄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이 유행의 원조는 바로 1980년대의 인기 팝스타 보이 조지다. 영국 그룹 ‘컬처클럽’의 리드 보컬인 보이 조지는 그 당시부터 지금의 크로스 섹슈얼에 해당하는 룩으로 당시 군부 정권의 한국 사회에 충격을 던져 줄 만큼 그 영향력이 대단했다. 그의 도트 프린트 셔츠와 스타일을 이번 시즌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에서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세계적인 브랜드 루이뷔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그가 자신의 라인에서는 팝 아트적인 1980년대의 흐름을, 현존하는 디자이너 중에서 그 누구보다도 가장 일찍 몇 년 전부터 이미 선보여 왔고 이번 시즌 그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1980년대의 영향을 받아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경향 중에 또 하나는 경쾌한 스포티즘의 부활이다. 흔히 스포티즘이라 하면 스포츠 룩을 평상복처럼 편안하게 활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2006년의 스포티즘이 라코스테나 프레디 페리의 테니스 룩과 같은 정직함에 그 테마가 있었다면, 2007년형 뉴 스포티시즘의 메뉴는 단연 복싱과 야구다. 서론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 학창시절의 영웅이었던 ‘록키’ 영화가 부활하고 하지원과 임창정 주연의 <일번가의 기적>에서 하지원은 권투를 하는 여자다. 우연의 일치일지는 몰라도 올해 아디다스는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 라인이 출시돼 힙합과 접목된 새로운 개념의 복싱 룩이 대대적으로 히트할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복싱 퀸인 그의 딸 라일라 알리(Laila Ali)도 연일 해외 패션 잡지의 단골 모델이다. 이에 뒤질세라 최근 국내 유명 남성 패션 잡지의 화보는 온통 복싱이라는 테마로 도배를 하고 있다. 복싱 외에도 우리가 어렸을 적에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던 베이스볼 점퍼도 386세대를 다시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다만 30년의 세월을 통해 멋지게 그리고 더욱 고급스럽게 업그레이드 돼서 말이다. 예를 들어 디오르 옴므는 실버 광택의 소재로, 구찌는 화이트 타프타의 미래적 소재로 성인들의 베이스 볼 점퍼를 선보이고 있다.마지막으로 1980년대 패션 코드를 리바이벌한 중요한 코드는 바로 1980년대식 착장법에 관한 스타일링이다. 셔츠 속안에 반소매 옷을 겹쳐 입는다든지 또는 그 반대로 셔츠 위에 티셔츠를 겹쳐 입는 레이어드 스타일링 법이 그 대표적인 예다. 다만, 2007년에는 재킷 위에 패딩 조끼를 입는다든가 하면서 상식을 뛰어 넘는 독특한 레이어드 룩이 추가 됐다. 버버리 또는 랄프로렌의 턱시도 안에 후드 티를 입고 메탈릭한 벨트를 차고, 명품 구두가 아닌 디자이너 브랜드의 골드 컬러 스니커즈를 매치해 마치 1980년대의 록밴드와 같은 스타일로 연출해 보는 것도 올 시즌 디자이너들이 선보이는 남성복 캐주얼의 한 제안임을 알아두자. 따라서 올 봄에 쇼핑할 때는 보색의 티셔츠를 두 개씩 짝을 지어 구입해 때로는 같이, 때로는 따로 입어도 좋을 듯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착장법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더욱 편하게 익숙해져 점차 확고한 스타일의 한 장르로 남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황의건·(주)오피스에이치 대표이사 h@office-h.com1994년 호주 매커리대 졸업. 95~96년 닥터마틴·스톰 마케팅. 2001년 홍보대행사 오피스에이치 설립. 각종 패션지 지큐·앙앙·바자 등에 칼럼 기고. 저서에 샴페인 에세이 〈250,000,000버블 by 샴페인맨〉이 있음.